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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에 대하여②

  • 오흥녕 기자
  • 입력 2025.11.06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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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1513)의 양쪽에 공문십철’이 자리하고 있다.


윤상철 대유학당 대표(철학박사)


지난 기사 ‘<특집>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에 대하여’ (지면신문 제1149(2025.10.15.) 1-2, 인터넷판 http://www.cfnews.kr/coding/news.aspx/14/1/101750)에 이어 10의 종사 내용에 대해 설명한다.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고 평가받는 열 명의 인물들로서 흔히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고 불리며, 논어를 열심히 읽어본 이라면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어디서 많이 본 느낌과 대략적인 개성 및 성격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2. 10철의 종사(十哲從祀)

종사(從祀)’ 또는 종향(從享)’배향(配享)’보다 한 단계 낮은 사람들을 모신 것이다. 제사의 주인공과 배향하는 사람에게서 약간 떨어져서 양쪽으로 배열된다.

10철이 학문도 높고 공로도 크지만 공자님이나 4대 성인(복성공 안자·종성공 증자·술성공 자사자·아성공 맹자)보다는 못하므로 격식의 차이를 둔 것이다.

나라 현종(玄宗, 재위 712-756) 개원(開元) 연간(713-741)에 안자 아래 증자를 배향케 하고(자사자와 맹자는 1대 제자가 아니므로 뺐다), 10철을 선정하여 제향하게 했는데 이 때 72제자와 후대의 22현인의 형상도 벽에 그리게 하였다.

10철에 대해서는 왕조 또는 왕이 추구하는 유교의 성격에 따라 종사를 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였다.

주자의 석전도’이다.


예를 들어 주자(朱子, 1130-1200)의 석전도(釋奠圖)’에서는 10철은 물론 72제자도 보이지 않는데 선성 아래에 4성을 종사하고그 밑에는 수리역학이기론심성론주자학으로 발전해 갔던 사상적 맥락을 고려해 송대의 선현 일곱 분만 종사했다.

공자님은 선성(先聖) ’으로 호칭되고제일 위쪽(북쪽)에 단독으로 모셔졌으며형상을 그린 초상화를 위패 대신 사용했다.

오른쪽 중간에는 종이 위패에 안씨(顔氏안자), 증씨(曾氏증자), 공씨(孔氏자사자), 맹씨(孟氏맹자)의 4(四聖)이 ()’ 호칭으로 종사되었다.

그 아래 1열의 소(, 살아있는 사람이 봤을 때 오른쪽)는 염계(濂溪주돈이(周敦頤, 1017-1073)), 1열의 목(, 살아있는 사람이 봤을 때 왼쪽)은 명도(明道정호(程顥, 1032-1085)), 2열의 소는 이천(伊川정이(程頤, 1033-1107)), 2열의 목은 강절(康節소옹(邵雍, 1011-1077)), 3열의 소는 온공(溫公사마광(司馬光, 1019-1086)), 3열의 목은 횡거(橫渠장재(張載, 1020-1077)), 4열의 소는 연평(延平이통(李侗, 1093-1163)) 등 일곱 현인이 종이 위패에 ()’로 호칭되어 종사됐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 소목제(昭穆制)에 대해 잠깐 짚어 보면, 가운데 제일 위쪽(북쪽)에 주인공을 모시고, 주인공을 기준으로 해서 왼쪽은 '()'이고, 오른쪽은 '()'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신위를 바라 볼 때는 오른쪽이 이고 왼쪽이 이 되는 것이다. 소목제에서는 주인공이 제일 위상이 높고, 소와 목에서는 소가 더 위상이 높다.

그림에서 보면 제일 높은 분이 태조이므로 북쪽의 한 가운데에 모시고, ‘고조를 소의 첫 번째 자리에, ‘증조를 목의 첫 번째 위치에, ‘를 소의 두 번째 자리에, ‘를 목의 두 번째 자리에 모셨다. 소목제로 신위를 배치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문묘, 서원, 사당 등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됐으며, 지금도 여전히 대부분의 장소에서 여기에 맞춰 신위들이 배열되어 있다.


1) 10철의 서열 배치

공자님과 가깝게 앉은 사람이 서열이 높되왼쪽과 오른쪽에 있어서는 (이하 모든 왼쪽과 오른쪽을 살아있는 사람 기준으로 구별한다오른쪽이 더 높은 서열이며제일 위에서부터 덕행과언어과정사과문학과의 순으로 소와 목을 구별하며 5열을 내려온다.


[그림 2-1] 오른쪽 위로부터 비공 민손(費公 閔損), 설공 염옹(薛公 冉雍), 여공 단목사(黎公 端木賜), 위공 중유(衛公 仲由), 위공 복상(魏公 卜商) 5인이 배열되어 오른쪽에서 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철저히 소목제(昭穆制)를 따른 배치이다.


[그림 2-2] 왼쪽 위로부터 운공 염경(鄆公 冉耕), 제공 재여(齊公 宰予), 서공 염구(徐公 冉求), 오공 언언(吳公 言偃), 진공 전손사(陳公 顓孫師) 5인이 배열되어 왼쪽에서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역시 소목제를 따른 배치이다. 특히 맨 아래에 위치한 전손사(颛孫師)의 직위를  '진공(陳公)'이라고 표기한 점이 서울 문묘 성균관과 전국 234개 향교의 대성전에서 '영천후(穎川侯)'라고 표기한 부분과 완전히 다르다.


덕행과(德行科)

덕행과는 민손(閔損, 자건(子騫)), 염경(冉耕백우(伯牛)), 염옹(冉雍, 중궁(仲弓)), 전손사(颛孫師, 자장(子張))의 4인이다.

1열 오른쪽에 민손, 1열 왼쪽에 염경, 2열 오른쪽 염옹의 3인이 종사되었고, 전손사는 제일 마지막으로 10철 종사가 되었으므로 (제일 서열이 낮은) 5열 왼쪽에 배치되었다.

언어과(言語)

언어과는 재여(宰予, 자아(子我)), 단목사(木賜, 자공(子貢))의 2인이다.

2열 왼쪽에 재여, 3열 오른쪽에 단목사가 종사되었다.

정사과(政事)

정사과는 염구(冉求, 자유(子有)), 중유(仲由, 자로(子路))의 2인이다.

3열의 왼쪽에 염구, 4열의 오른쪽에 중유가 종사되었다.

문학과(文學)

문학과는 언언(言偃, 자유(子遊)), 복상(卜商, 자하(子夏))의 2인이다.

4열의 왼쪽에 언언, 5열의 오른쪽에 복상이 종사되었다.

그러므로 10철의 서열은 민손(비공/동쪽:), 염경(운공/서쪽:), 염옹(설공/동쪽:), 재여(제공/서쪽:), 단목사(여공/동쪽:), 염구(서공/서쪽:), 중유(위공(衛公)/동쪽:), 언언(오공/서쪽:), 복상(위공(魏公)/동쪽:), 전손사(진공/서쪽:)의 순서이다.

1481(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을 증수(增修)하여 이행(李荇, 1478-1534), 윤은보(尹殷輔, 1468-1544) 등이 1530(중종 25)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이 서열 봉안은 똑같다.

다만 진공 전손사영천후(穎川侯) 전손사라고 하여 관작을 한 단계 낮춘 것이 다르다.

이런 관례는 현재 서울 문묘 성균관과 전국 234개 향교의 대성전에서도 영천후로 이어받아 쓰고 있으나 북송의 철종(哲宗, 재위 1085-1100) 원우(元祐) 연간(1086-1094)진공으로 추존되었으므로 으로 관작을 올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1513)에서는 '진공(陳公) 전손사'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성균관과 전국 234개 향교의 대성전에 모셔진 신위에서는 송나라 때 올려진 관작 대신 '영천후(穎川侯) 전손사'로 표기되어 있다.


2) 10철의 내력

선성 공자님의 제자 중에 안자가 으뜸이었지만 안자는 아주 일찍부터 공자님 곁에 배향되었다. 그래서 10철의 수에 맞춰 증자를 복상(卜商, 자하(子夏))의 아래에 배치했다.

그런데 송나라 도종(度宗, 재위 1264-1274) 함순(咸淳) 3년인 1267년에 증자가 배향의 자리로 올랐고, 사람들은 10철의 빈자리에 유약(有若, 자유(子有))이 들어올 것이라 여겼으나 증자가 덕행과였으므로 덕행으로 유명한 전손사(자장)10철이 되었다.

왕백후(王伯厚, 1223-1296, 본명은 왕응린(王應麟), 자는 백후(伯厚))논어고이(論語考異)에서 유약은 언어(言語)과에 속하니 재아·자공의 부류이다라고 했다.


지난 2021년 2월 최영갑 현대유학연구소장(당시 편집위원장, 성균관 교육원장 겸 성균관유교문화활성화사업단장)의 주도로 발행된 사서(四書)맹자』 「공손추장구 상(公孫丑章句 上)」 해당 부분이다.

 

맹자』 「공손추장구 상에서 맹자는 재아·자공·유약은 지혜가 성인을 알아볼 만했다(宰我·子貢·有若 智足以知聖人)”고 했으니 충분히 10철에 들어갈만 했으나 언어과에 10철 자리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혹자는 10철의 범위를 넓혀 12철로 하면, 덕행에는 민자건·염백우·중궁의 3, 언어에도 재아·자공·유약의 3, 정사에도 염유·자로·공서화(公西華, 본명은 공서적(公西赤))3, 문학에도 자유(子游자하(子夏자장(子張)3인이 되어 각 과에 균형이 맞게 되고, 동쪽과 서쪽의 종사도 균형이 맞게 된다고 하며 ‘12철 종사를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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