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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문선왕과 4대 성인’이 위치하고, 양쪽 옆으로 공문10철이 다섯 분씩 종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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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에서 '2-1'로 표시된 부분으로, 공문10철 중 동쪽에 위치한 이들이다. 위로부터 민손(덕행), 염옹(덕행), 단목사(언어), 중유(정사), 복상(문학)의 순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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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에서 '2-2'로 표시된 부분으로, 공문10철 중 서쪽에 위치한 이들이다. 위로부터 염경(덕행), 재여(언어), 염구(정사), 언언(문학), 전손사(덕행)의 순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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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대유학당 대표(철학박사)
지난 기사 ‘<특집>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에 대하여①’ (지면신문 제1149호(2025.10.15.) 1-2면, 인터넷판 http://www.cfnews.kr/coding/news.aspx/14/1/101750)과 ‘<특집>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에 대하여②’ (지면신문 제1151호(2025.11.15.) 3면, 인터넷판 http://www.cfnews.kr/coding/news.aspx/14/1/102515)에 이어 10철의 종사(從祀) 내용에 대해 설명한다.
3) 덕행과 4인(민손, 염경, 염옹, 전손사)
(1) 비공 민손(자건) : 생몰년 미상/ 1열 동쪽(소)에 종사
민손(閔損)의 자는 자건(子騫)이다. 공자보다 15살 어렸다.
공자님이 그를 칭찬하기를 “효성스럽구나, 민자건이여! 사람들이 그 부모·형제가 그를 칭찬하는 말에 트집을 잡지 못하는구나!”(『논어』 「선진」 편)라고 하셨다. 또 “계씨가 민자건을 비읍을 다스리는 재(宰)로 삼고자 하니 민자건이 ‘나를 위해 잘 말하라. 만일 다시 부르러 온다면 내 반드시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의 문수 가에 있겠다(『논어』 「옹야」 편)”이라고 하였으니 대부(大夫)를 섬기지 않았고, 더럽혀진 임금의 녹을 먹지 않은 몇 안 되는 제자로 덕행을 칭찬 받았다. 10철의 덕행과에 속한다.
(2) 운공 염경(冉耕) : 생몰년 미상/ 1열 서쪽에 종사
자(字)는 백우(伯牛)이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다. “덕행에는 안연(안회)・민자건(민손)·염백우(염경)·중궁(염옹)이 있고, 언어에는 재아·자공(단목사)이 있고, 정사에는 염유(염구)·계로(중유)가 있고, 문학에는 자유(유약)·자하(복상)이 있다”고 하심으로써 그를 덕행(德行)이 있는 사람으로 여겼다.
공자님께서 작은 제사(節小物)를 지내실 때에는 백우에게 시중들게 하시며 “나는 그대를 본받아 스스로를 단속한다(吾以子自厲也)”라고 까지 말씀하셨다.
그가 악성 질병(한센병)에 걸렸을 때 사람 보기를 꺼려했다. 그러자 공자님이 창문으로 그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착한 사람이 이런 일이 있을 리가 없는데 천명이구나! 이 사람이 이 병에 걸렸으니! 이 사람이 이 병에 걸렸으니!”라며 매우 비통해하셨다.
염경(冉耕)이 『시경』의 ‘부이(芣苢, 질경이:문왕의 성덕에 감화된 백성들이 평화롭게 질경이를 채취하며 즐기는 내용의 시)’시를 노래했다고 한다. 『열자(列子)』에 “부이(芣苡)라는 풀은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으니 질경이에게 기대해서라도 한센병 치료를 하고 싶은 젊고 총명한 학자의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당나라 때 노후(魯侯)의 칭호를 추증(追贈)하였고, 송나라 때는 동평공(東平公)으로 작위를 높였으며, 나중에 운공(鄆公)으로 작위를 더욱 높였다. 10철의 덕행과에 속한다.
(3) 설공 염옹(중궁) : 생몰년 미상/ 2열 동쪽에 종사
염옹(冉雍)의 자는 중궁(仲弓)으로 공자보다 29세 어렸다.
중궁이 인(仁)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문을 나갔을 때에는 큰 손님을 접대하듯이 하며,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들 듯이 하고,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니 이렇게 하면 나라의 정치를 해도 원망함이 없으며, 집안을 다스려도 원망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자 중궁이 말하였다. “제가 비록 총명하지 못하지만 청컨대 이 말씀을 일삼겠습니다”(『논어』 「안연」편)
중궁이 계씨의 재상이 되어 정치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책임을 맡은 관리보다 먼저 하고 작은 허물을 용서해 주며, 어진 이와 유능한 이를 등용해야 한다”하고, “어떻게 어진 이와 유능한 이를 알아 등용합니까?” 하고 묻자 말씀하셨다. “네가 아는 어진 이와 유능한 이를 등용하면 네가 미처 모르는 자를 남들이 내버려 두겠느냐?”(『논어』 「자로」 편)
공자님은 중궁을 덕행 있는 사람으로 여겨 말씀하셨다. “옹은 임금이 되어 백성을 다스릴 만하다”
중궁의 아버지는 신분이 비천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공자님이 말씀하셨다. “밭을 가는 소(중궁의 아버지)가 낳은 새끼(중궁)라 할지라도 붉고 뿔이 반듯하다면 비록 등용하지 않으려 하여도 산천의 신령이 이를 버려두겠는가?” 10철의 덕행과에 속한다.
(4) 진공 전손사(顓孫師) : 기원전 503-?/ 5열 서쪽에 종사
자는 자장(子張)이고 진(陳)나라 출신으로, 공자보다 48세 어렸다.
자장이 벼슬을 구하는 방법을 물었다. 공자님께서 “많이 듣고 의심스러운 부분은 버린 뒤에 그 나머지를 삼가서 말하면 허물이 적다. 많이 보고 위태로운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행하면 후회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말에 허물이 적으며 행실에 후회하는 일이 적으면 녹이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라고 하신 것으로 보면 아마도 자장은 말이 많고 행동부터 하는 급한 성격이었던 것같다.
자장이 “어떤 사람을 ‘통달한 사람(達者)’이라 부를 수 있습니까?”하니 공자께서 물으셨다. “너는 ‘통달’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자장이 대답했다. “벼슬하면 반드시 이름이 알려지고, 집안에 있어도 소문이 나는 사람입니다” 공자께서 “그것은 ‘소문나서 알려진 사람’일 뿐이지 ‘통달한 사람(達)’은 아니다. 통달한 사람이란 질박하며 정직하고 의를 좋아하며, 남의 말을 살피고 얼굴빛을 관찰하여 생각해서 몸을 낮추는 것이니 나라에 있어서도 반드시 통달하며, 집안에 있어서도 반드시 통달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이로써 보면 자장은 겸손하지 못하고 정직하지도 못한 채, 빨리 유명해지고 벼슬이 높아지기를 바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공자님의 가르침에 힘입어 절차탁마를 하였는지, 훗날 위태로움을 보고는 몸을 아끼지 않고, 이로움을 보고는 대의를 생각하는 등 대인의 풍모를 보이게 되었다.
송나라 도종의 함순 3년(1267)에 증자가 배향의 자리로 오르자 자장(子張)이 그 자리를 이어받아 10철이 되었다. 10철의 덕행과에 속한다. 나중에 10철이 되었으므로 덕행과임에도 불구하고, 제일 끝자리에 종사된 것이다.
4) 언어과 2인(재여, 단목사)
(1) 제공 재여(宰予) : 기원전 522-458/ 2열 서쪽에 종사
자(字)는 재아(宰我)이다. 경솔했지만 말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가 공자님에게 “3년상은 1년만 하더라도 너무 길다고 할 것입니다. 군자가 3년 동안 예를 행하지 않으면 예가 반드시 무너지고, 3년 동안 음악을 익히지 않으면 음악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묵은 곡식이 이미 다하고 새 곡식이 이미 상에 오르며, 불씨 만드는 나무도 바뀌어지니 1년이면 그칠 만한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쌀밥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너에게는 편안하냐?” 재여가 “편안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편안하면 그렇게 하여라. 군자가 상을 치를 때에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거처함에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니 네가 편안하면 그렇게 하여라.”
재여가 물러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재아(재여)의 인하지 못함이여!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지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게 된다. 3년상은 천하의 공통된 상인데 재여는 3년의 사랑을 그 부모에게 받았던가?”
재여가 낮잠을 자자 “썩은 나무는 깎아 조각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쌓은 담은 흙손질하지 못할 것이니 재여에게 무엇을 꾸짖겠는가? 처음에는 내가 사람에 대하여서 그 말대로 행할 것을 믿었으나 이제 내가 사람에 대하여서 그 말을 듣고 그 행실을 살펴보게 되었으니 나는 재여 때문에 이 습관이 생겼노라”하시며 낙담을 하셨다.
재여가 “오제(五帝)의 덕(德)은 어떠합니까?”라고 했을 때에 공자님은 “나는 그런 것을 논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셔서 그의 허망함을 꾸짖으셨다.
후에 재여가 임치(臨菑)의 대부(大夫)가 되었는데 전상(田常)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가문이 멸족되자 공자님은 제자를 잘못 가르쳤음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런데도 10철의 반열에 들어간 것은 “언어에는 재아·자공(단목사)이었고”라고 하신 『논어』 「선진」편의 회고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다만 맹자는 재여가 “내가 선생님을 관찰하건대 요순보다 훨씬 나으시다”고 한 말을 높이 사서 “재아(재여)와 자공과 유약은 지혜가 충분히 성인을 알아볼 만하다. 그러므로 아부하는 말이 아니다”고 칭찬하였다. 10철 중에 말을 잘했다고 해서 언어과에 속한다.
(2) 여공 단목사(자공) : 기원전 507-420/ 3열 동쪽에 종사
단목사(端木賜)는 위(衞)나라 사람으로, 자(字)는 자공(子貢)이다. 공자보다 31살 어렸다.
자공은 말재주가 뛰어나고 기교가 있었다. 공자님이 “너와 안회 중에 누가 나으냐?”하시니 “제가 어찌 감히 안회를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아는 정도입니다” 안회하고는 비교할 수 없지만 자신도 엄청 총명하다는 것을 은연 중에 비친 것이다.
이어서 자공은 공자님이 생각하는 자신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님이 “너는 그릇이다” “어떤 그릇입니까?” “호련(瑚璉)이다”라고 평가하셨다. 호련은 종묘 제사 때 조와 기장을 담아 올리는 귀한 그릇으로, 자공이 귀하게 쓰일 재목임을 칭찬하신 것이다.
가끔은 자공이 공자님 앞에서 자기 자랑을 했다.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고, 가난하면서 아첨하지 않는 것은 어떻습니까?” 공자님은 “좋지만 가난해도 도를 즐기고 부유해도 예를 좋아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시며 조금 더 정진한 것을 권하셨다.
또 제나라의 전상(田常)이 반란을 일으키려 할 때에 공자님은 제나라 군대가 노나라를 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들에게 “노나라는 우리 부모님의 무덤이 있는 나라다. 나라가 위태로운 데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라고 하셨다. 자로와 다른 제자들이 나서려 했으나 공자가 허락하지 않고, 자공이 나서자 허락하였다. 결국 자공이 제나라에 가서 전상을 설득시켜 전쟁을 막았다. 공자님께서는 이런 자공의 외교수완을 높이 평가하신 것이다.
자공은 “선생님께서는 온화하고 공손하고 검소하고 겸양하심으로써 사람들이 스스로 정치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다. 선생님이 구하는 것은 남들과 다르다”라고 하며 공자님을 존경하며 따랐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를 깊이 인정한 것이다.
다른 제자가 공자님의 3년상을 마치고 헤어질 때에 홀로 3년을 더 여막에서 지냈으며, 공자님의 인(仁) 사상을 연구해서 정치에 활용하는 데 힘썼으므로 각 나라에서 공자님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자공은 공자님의 임종에 참석한 몇 안 되는 제자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그에게 “하나라 사람은 동쪽 계단에 빈소를 차리고, 주나라 사람은 서쪽 계단에 모시며, 은나라 사람은 두 기둥 사이에 모신다. 어제 밤에 나는 두 기둥 사이에 놓여져 사람들의 제사를 받는 꿈을 꾸었다. 나는 아마 은나라 사람일 것이다”고 밝히며 장례를 부탁했다. 10철의 언어과에 속한다.
5) 정사과 2인(염구, 중유)
(1) 서공 염구(冉求) : 기원전 522-489/ 3열 서쪽에 종사
자(字)는 자유(子有)로, 공자보다 29세 어렸다.
계강자(季康子)를 섬길 때, 계강자가 공자에게 “염구는 인(仁)한 사람입니까?” 공자께서 “1,000호의 마을과 대부의 집안을 다스리게 하면, 염구는 세금도 잘 걷고 일도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그가 인(仁)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소”라고 했는데 염구가 이 말을 듣고 공자께 물었다. “가르침을 들으면 바로 실천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실천하라”고 하셔서 그의 소심해서 주저하는 단점을 격려해 주셨다.
그가 부국강병책을 써서 노나라를 튼튼하게 하였으나 계강자의 가신이 되어 계씨를 위해 세금을 두 배로 걷어 들이자 공자님은 “염구는 내 제자가 아니다. 제자들아! 북을 울리며 성토하는 것이 옳다”고 하셨다. 인하지 못한 것을 넘어서, 정권에 아부하며 백성의 고혈을 짜는 것에 대한 징계이다. 10철의 정사과에 속한다.
(2) 위공(衛公) 중유(자로) : 기원전 542-480/ 4열 동쪽에 종사
중유(仲由)는 자가 자로(子路)이고, 변(卞) 사람이다. 공자보다 9살 어렸다.
자로는 성격이 거칠고, 용맹과 힘을 좋아하였으며, 뜻은 강직하고 곧았다. 머리에는 수탉의 볏을 닮은 관을 쓰고, 허리에는 멧돼지 이빨을 패용하였으며, 자주 거만하게 굴며 공자를 업신여기곤 했다. 공자가 예(禮)를 베풀어 조금씩 그를 교화하니 자로는 나중에 유생의 옷을 입고 몸을 맡기며 문하생을 통해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다.
자로가 정치에 관해 묻자, “솔선수범할 것이며 부지런해야 한다”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기를 청하자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자로가 또 “군자는 용맹을 숭상해야 합니까?”하니 “의(義)를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 군자가 용맹을 좋아하되 의가 없으면 어지럽게 되고, 소인이 용맹을 좋아하되 의가 없으면 도둑이 된다”라고 하셨으니 자로의 급하고 용맹을 좋아하는 품성을 억제시킨 것이다.
공자님은 자로의 거칠고 소탈하며 단도직입적인 성격을 좋아하면서도 그가 좀 더 다듬어지지 못한 것을 걱정하셨다. 그래서 “자로는 이미 당(堂)에 올랐으나 아직 집 안(室)에는 들어가지 못했다”라고 칭찬하시면서도 “자로는 용맹을 좋아하는 것이 나보다 나으나 그 재주를 취할 바가 없다. 아마도 자로는 제 명에 죽지 못할 것이다”라고 걱정하셨다.
그런데 자로가 위나라 공회의 읍재로 등용되었을 때에 괴외(蕢聵)의 난이 일어났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공자님이 “아, 유(由, 자로)가 죽었구나” 하였는데, 과연 대의명분과 군자의 덕을 중시하다가 죽었다. 10철의 정사과(政事科)에 속한다.
6) 문학과 2인(언언, 복상)
(1) 오공 언언(言偃) : 기원전 506-?/ 4열 서쪽에 종사
자유(子游)는 오(吳)나라 사람으로, 공자님보다 45세 어렸다.
그는 공자님에게 배움을 마친 뒤 무성(武城)의 현령(宰)이 되었다. 공자님께서 “너는 사람을 얻었느냐?” 자유가 대답하였다. “담대멸명(자우)이라는 자가 있는데, 다닐 때에 지름길로 가지 않으며, 공적인 일이 아니면 저의 집에 온 적이 없습니다.”
공자님께서 무성을 지나가다가 거문고와 노래 소리(弦歌之聲)가 들리는 것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 이에 자유가 대답하였다. “옛날에 제가 선생님께서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고 하셨습니다. 또 군자는 도(예악)를 배워 그것으로 정치를 이룬다’고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아! 언언의 말이 옳다. 방금 내가 한 말은 농담이니라”
10철의 문학과에 속한다. 『예기』의 곡례, 단궁, 옥조 편 등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2) 위공(魏公) 복상(자하) : 기원전 507-420/ 5열 동쪽에 종사
복상(卜商)의 자(字)는 자하(子夏)이며, 공자보다 44살 어렸다.
자하가 공자님께 물었다. “『시경 (석인(碩人)시)』에 ‘고운 웃음에 보조개가 예쁘며/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선명함이여!(巧笑倩兮 美目盼兮)’라는 대목에 ‘흰 비단에 채색을 하는 것이다(素以爲絢兮)’라 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공자님이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이 마련된 뒤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하가 “그렇다면 본성이 질박해진 다음에 예(禮)를 차린다는 거군요?” 공자님이 “나의 뜻을 흥기시키는 자는 상(자하)이로다! 이제 너와 『시경』에 대하여 말할 만하구나”
또 공자님은 “자장(사)은 지나치고, 자하(상)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하셔서 좀 더디다는 평을 하셨다.
또 명성을 탐하는 모습을 보고는 “너는 도를 밝히는 군자의 선비가 되어야지, 이름을 자랑하는 소인의 선비가 되지 말라”고 하셨다.
어떤 사람이 역사책을 읽으며 “진(晉)나라 군대가 진(秦)나라를 정벌할 때에 세 마리 돼지가 강을 건넜다(三豕度河)”고 하니 자하가 “그것은 틀렸소. ‘삼시(三豕)’가 아니라 ‘기해(己亥)’일 것이오. 즉 기해년에 강을 건넜다(己亥度河)라고 해야 맞을 것이오”라고 할 정도로 역사에 밝고 통찰력이 뛰어났다.
자하는 사과(四科:『시·서·예·악』)의 학문(문학)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다.
『시경』에 시서(詩序)를 서술해서 시의 배경을 밝혔고, 공자님과 ‘손괘, 익괘, 겸괘, 풍괘’ 등 역에 대해 문답한 내용을 바탕으로 『주역』을 해설하였다. 또 공자님은 『춘추』를 자하가 맡아서 전할 것을 위촉하셨고, 아울러 『예(禮)』에 대해서도 주석을 달게 하셨다. 심지어 정현(정강성)은 『논어』를 자하와 중궁이 편찬했다고 주장한다.
한나라 때의 학자 서방(徐防)은 “시(詩)·서(書)·예(禮)·악(樂)은 모두 공자께서 정리하셨고, 그 문장과 구절을 체계적으로 밝힌 것은 자하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였고, 후세의 학자들도 자하가 6경을 해설하지 않았다면 6경의 뜻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공자님께서 몰세하셨을 때 자하는 28세였다. 3년상을 마친 자하는 서하(西河)에 거주하며 300여 명의 제자들을 가르쳐서 전자방(田子方), 단간목(段干木), 공양고(公羊高), 곡량적(榖梁赤), 이극(李克), 증신(曾申) 등 뛰어난 인재를 양성했고, 그 학통이 순자(荀子)로 이어진다.
이들은 유교 경학의 기초를 닦은 중요한 학자들이다. 그의 유학에 대한 공은 증자 이상이라고 보여지는데 10철 중 거의 끝에 자리한 것은 왜일까? 『공자가어』의 평대로 “성품이 너그럽지 못하고, 세밀하고 깊은 이치를 논하기를 좋아했다. 당대 사람들 중에는 그와 견줄 만한 이가 없었다”는 이유가 작용했을까?
당나라 태종 때 10철의 문학과로 종사되었고(628년), 현종 때 위후(魏侯)로 추존되었으며, 송나라 때 하동공(河東公), 도종(度宗) 때 위국공(魏國公)으로 추존되었다.
이로써 보면 공부하는 과정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공자님의 꾸중을 들은 사람(재여)도 있고, 일찍 죽어 이렇다 할 공적이 없는 사람(안자, 염경)도 있으며, 공자님의 학문을 널리 펴고도 10철의 꽁무니에 간신히 이름을 올린 사람(언언, 복상)도 있다.
유교에서는 덕행이 최고라 하지만 덕행과 인물들은 요절하거나 공자님 말년의 제자(자장)였으며, 공자님께서 대부 벼슬 한 것을 자랑해서 ‘부자’라고 호칭하면서도 정사과(염구, 중유)를 언어과(재여, 단목사) 밑에 두는 것도 우스운 일이므로 10철의 인물과 서열에 장유(長幼)와 선·후배 관계를 고려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의견을 제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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