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산정은 전남 화순군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화순 제11경 환산정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류정훈 화순향교 청년유도회장
백천로를 따라 환산정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마음을 낮추게 한다.
무등산 서석대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들이 동남쪽으로 겹겹이 이어지다 마침내 잔잔한 서성제 호수를 품고 멈추는 곳, 그 물 안에 환산정이 있다.
가까이 다가설수록 정자는 숨어 있는 듯 조용했고, 호수에 비친 모습은 마치 연꽃 한 송이가 물 위에 떠있는 듯 고결했다. 사방의 산과 물의 기운이 모여드는 광취명당(廣聚明當)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발걸음을 멈춘 순간 곧 알 수 있었다.
환산정은 1637년(인조 15), 백천(百泉) 류함(柳涵, 1576-1661) 선생이 세운 정자로서 처음에는 방 한 칸의 소박한 죽정(竹亭)이었다고 한다.
병자호란 직후의 모든 것이 무너진 시대에 그가 택한 삶의 자리였다. 화려함도 없고, 드러냄도 없다. 다만 산과 물 사이에 몸을 맡기고 스스로를 다스리는 공간이 있을 뿐이다.
정자에 서서 호수를 바라보니 이곳이 단순한 풍경 감상의 장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천 선생은 이괄의 난(1624)과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을 거치며 직접 의병을 일으켰던 인물로, 병자호란 때는 임진왜란 당시에 순절한 형님의 보검을 차고 화순의 맹주로서 5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청주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화친(和親)의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와 환산정을 짓고 세속을 끊었다.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두 번이나 겪은 선비에게 이 정자는 은거의 공간이자 절의(節義)의 마지막 거처였을 것이다.
환산정에 걸린 원운(原韻)을 천천히 음미해 본다. 그 중 마지막 구절이 유독 마음에 남는다. ‘세한후조기수식, 시여산옹화불평(歲寒後操其誰識 時與山翁和不平)’이다.
추운 날이 지나고 나서야 지조를 누가 알아주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산 늙은이의 불평도 사그라진다.
여기서 ‘세한(歲寒)’이라는 말이 걸음을 붙든다.
『논어』 자한(子罕) 편의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가 떠오른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끝내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절개와 지조는 평온한 시절이 아니라 가장 추운 때에 비로소 드러난다는 뜻이다.
문득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선생의 세한도(歲寒圖)가 겹쳐진다.
제주 유배라는 개인적 고난 속에서 모두가 떠난 뒤에도 끝내 남은 의리와 마음을 그려낸 그림이 세한도였으니 황량한 겨울 풍경 속에 송백(松柏)만이 남아 있는 그 화면은 ‘세한의 끝에서 무엇이 남는가?’를 묻는다.
그러나 환산정에서 느끼는 세한도는 결이 다르다.
이곳의 세한(歲寒)은 병자호란이라는 국가적 혹한기를 통과한 뒤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응답이다. 굴복보다 명분을 택하고, 생존보다 도덕을 중시하며,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책임을 감당했던 한 선비의 결단이 공간으로 남아 있다.
추사의 세한도가 개인의 내면에서 완성된 절개라면 환산정의 세한도는 공동체와 나라를 향한 실천의 절의(節義)다.
정자를 한 바퀴 돌아 나와 다시 호수를 보니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다. 이 고요함 속에서 백천 선생은 시를 읊고 후학을 가르치며, 끝내 마음의 중심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병자호란이라는 민족적 환란과 추사의 절해고도(絶海孤島) 유배를 견주어 보면 백천의 세한도는 분명 추사의 세한도보다 200년을 앞선다. 그러나 앞섰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정신이 지금도 공간으로 남아 우리를 부른다는 점이다.
화순 제11경 환산정은 단순한 정자가 아니다. 세한의 시대를 통과한 조선 선비들이 끝까지 붙들었던 충의(忠義)와 절개(節槪)의 현장이다.
이곳에서 세한도는 더 이상 그림 속의 상징으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걷고 머물며 되새겨야 할 삶의 물음으로 다가온다.
환산정을 떠나며, 겨울이 오기 전에도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지금 나는 어떤 세한(歲寒)을 준비하며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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