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무에 종사된 36제자에 대한 해설


윤상철 대유학당 대표, 철학박사
지난 기사 <특집>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에 대하여① (지면신문 제1149호(2025.10.15.) 1-2면, 인터넷판 http://www.cfnews.kr/coding/news.aspx/14/1/101750), <특집>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에 대하여② (지면신문 제1151호(2025.11.15.) 3면, 인터넷판 http://www.cfnews.kr/coding/news.aspx/14/1/102515), <특집>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에 대하여③ (지면신문 제1152호(2025.12.1.) 1-2면, 인터넷판 http://www.cfnews.kr/coding/news.aspx/2/1/102976), <특집>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에 대하여④ (지면신문 제1153호(2025.12.15.) 3면, 인터넷판 http://www.cfnews.kr/coding/news.aspx/14/1/103473), <특집>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에 대하여⑤ (지면신문 제1156호(2026.2.1.) 1-2면, 인터넷판 http://www.cfnews.kr/news/view.php?no=104625)에 이어 서무(西廡) 종사 36제자에 대해 설명한다.
5. 서무(西廡)종사 36제자
공자님의 72신통제자 중에 서무에 종사된 제자는 36인으로, 동무와 마찬가지로 제후 중에 2등급인 후작으로 봉해졌다. 혹자는 “서무에 종사된 제자들은 문학과 학문으로 유명했는데 전국 시대에는 순자와 곡량적이 학파를 확장하며 꽃을 피웠고, 한대에는 고당생, 모장, 유향, 마융, 정원 등이 경학을 완성했다”고 하였다.
1) 서무의 바깥(5-1)
① 단보후(單父侯) 복부제(宓不齊) : 자는 자천(子賤)이며, 공자님보다 49살 어렸다. 공자님은 그를 평가해서 “군자로다! 노나라에 군자가 없었다면 내가 누구를 본받았겠는가?(『논어』 공야)”라고 말했다.
단보(單父)의 재(宰)가 되어 부임하려 할 때 왕주(王晝)가 그에게 말했다. “나는 젊을 때 벼슬하지 못해서 백성을 다스리는 기술을 알지 못하나 낚시에 비유할 만한 도리는 알고 있다. 낚싯줄을 드리우고 미끼를 던지면 달려와 곧바로 물어버리는 것은 ‘양교(陽鱎)’라는 물고기다. 살은 얇고 맛도 별로다. 그러나 있는 듯 없는 듯, 먹는 듯 먹지 않는 듯 접근하는 것은 ‘방(魴)’이라는 물고기다. 이 물고기는 살이 두껍고 맛이 좋다” 하니 자천이 “좋은 말씀입니다. 새겨 듣겠습니다”라고 했다. 단보에 이르렀을 때에 멀리까지 나와 영접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자천이 보고 말하였다. “이들은 바로 양교 같은 물고기이다. 몰아낼 사람들이다”
제(齊)나라 사람들이 노나라를 공격할 때 단보를 지나가게 되었다. 읍의 노인들이 찾아와 아뢰었다. “곧 제나라 군사가 들이닥칠 것입니다. 백성들을 모두 풀어 보리를 거둘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며 세 차례나 청했으나 듣지 않았다.
이윽고 제나라 군대가 보리밭에 이르렀는데 계손씨(季孫氏)가 소식을 듣고 추궁했다. 그러자 “지금 보리가 없어진 것은 내년에 다시 심으면 됩니다. 만약 ‘적군이 오더라도 보리를 수확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백성들에게 갖게 한다면 이는 백성들에게 적을 반기게 만드는 꼴입니다. 단보의 한 해 보리를 노나라가 얻는다고 해서 나라가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잃는다고 해서 약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이 땅을 지켜야만 보리도 수확할 수 있고, 살아갈 방도도 있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이번에 청을 들어주어 버릇을 들이면 그 폐단은 몇 세대라도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계손씨가 이 말을 듣고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였다.
단보(單父)의 재(宰)가 되어 공자님에게 돌아와 아뢰었다. “이 나라에는 어진 사람이 다섯 명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다스려지는 까닭도 그 때문입니다” 하니 공자님이 “아깝구나! 네가 다스린 곳은 작은 땅이다. 만약 큰 나라를 다스렸다면 거의 훌륭하게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② 고복후(髙宓侯) 공야장(公冶長) : 제(齊)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장(子長)이다. 공자께서 평하시기를 “사위 삼을 만하다. 비록 결박되어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으나 그의 죄가 아니다”라고 하시고, 공자님의 딸로 아내를 삼게 하셨다.(『논어』 공야장)
③ 북해후(北海侯) 공석애(公晳哀) : 자는 계차(季次)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하에 도가 행해지지 않는데도 대부의 사사로운 신하가 되어 도성에 나아가 벼슬을 하는 자가 많다. 그런데 계차만은 한 번도 벼슬한 적이 없다” 『공자가어』에는 “공석애는 제(齊)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④ 곡부후(曲阜侯) 안무요(顔無繇) : 자는 로(路)이고, 안자(안회, 顔回)의 아버지이다. 안무요와 안회는 각기 다른 시기에 공자님을 섬긴 적이 있었다. 안회가 죽자 안무요가 공자님의 수레를 팔아 곽을 만들 것을 청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재주가 있거나 재주가 없거나 또한 각각 자기의 아들을 귀하다고 말할 것이다. 내 아들 리(鯉)가 죽었을 때에 관만 있었고 곽은 없었는데 내가 수레를 팔아 곽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은 내가 대부의 뒤를 따라 가야 하기 때문에 도보로 걸어 다닐 수 없어서이다.(『논어』 선진)”라며 거절했지만 끝내 수레를 팔아서 장례를 후하게 치렀다.
⑤ 공성후(共城侯) 고시(髙柴) : 자는 자고(子羔)이며, 공자보다 30살 어렸다. 공자님에게 배우러 왔을 때에 150cm가 채 안 되는 키와 행동을 보고, 그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여기셨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가 능히 인(仁)을 실천할 수 있음을 믿고, 그를 뛰어난 인물로 인정하셨다. 그는 공자를 뵐 때마다 한 번도 예절에 벗어나지 않았고, 스승 곁을 지날 때에는 발이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았다. 경칩 무렵에는 만물을 죽이지 않았고, 자라나는 것은 꺾지 않았으며, 부모의 상(喪)을 모시는 동안에는 사람들에게 이를 보이며 웃는 일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고시(高柴)의 행실이다”라고 칭찬하게 되었다.
고시의 학문이 아직 성숙하지 못했을 때에 자로가 고시를 비읍의 읍재로 삼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의 아들을 해치는구나!” 자로가 말하였다. “백성이 있고 사직이 있으니 하필 글을 읽은 뒤에야 학문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니 공자께서 “이런 까닭에 입만 번지르르한 자를 미워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논어』 선진)
⑥ 수장후(壽張侯) 공백료(公伯寮) : 자는 자주(子周)이다. 공백료가 계손씨(季孫氏)에게 자로(子路)를 참소하니 자복경백(子服景伯)이 공자께 말하였다. “계손씨께서 진실로 공백료의 말에 미혹되고 있는데 내 힘이 그래도 공백료를 죽여서 그 시신을 거리에 걸어놓을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가 장차 행해지는 것도 천명이며 도가 장차 폐해지는 것도 천명이니 공백료가 그 명을 어떻게 하겠는가?”(『논어』 헌문)
⑦ 익도후(益都侯) 번수(樊須) : 자는 자지(子遲)이다. 그는 공자님보다 36살 어렸다. 효(孝)에 대해서 묻고(『논어』 위정), 곡식 가꾸고 채소 기르는 법에 대해서 묻고(『논어』 자로), 인(仁)과 지(知)에 대해서 묻고(『논어』 안연·옹야), 또 덕을 높이는 방법(崇德)과 사특함을 닦아내며(修慝), 미혹을 분별하는 방법(辨惑)에 대해서 묻는(『논어』 안연) 등 많은 질문을 했지만 대개는 공자님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공자님의 다른 제자에게 추가적인 질문을 해서 깨닫곤 했다. 그렇지만 공자님께서 수레를 타고 다니실 때 말을 모는 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수더분한 성격으로 대기만성을 한 인물이다.
⑧거야후(鉅野侯) 공서적(公西赤) : 자는 자화(子華)이고, 공자님보다 42살 어렸다. 노나라 출신이라고 한다.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공서적은 빈객을 맞는 일에 있어서는 참으로 통달하였다. 너희들 중에 빈객의 예를 배우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적(赤)에게 배우면 될 것이다. 가득 차 있으되 넘치지 않고, 충실하되 비어 있는 듯하며, 지나치면서도 모자란 듯하다. 옛 성왕들도 이 일을 어려워하였으나 그는 널리 배우고 배우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용모는 공손하고 그 덕은 두터우며, 남을 대하는 말엔 믿지 않을 것이 없고, 군자에게 대하여서도 항상 넉넉하였다”고 평하셨다.(『역사(繹史)』 공문제자언행)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제(齊)나라에 있을 때는 장중하여 능히 뜻을 엄숙히 하였고, 통달하면서도 예를 좋아하였다. 두 임금을 접대하는 일을 맡아 성대한 예를 갖추고 절도가 있었다”라고 하였다.
공서적이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이때 염유(冉有)가 자화의 어머니를 봉양할 곡식을 청했다. 공자께서 “부(6말 4되)를 주어라” 더 주기를 청하자 공자께서 “유(16말)를 주어라.” 염유가 곡식 다섯 병(16섬)을 주자 공자께서 “공서적이 제나라에 갈 때에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가죽옷을 입었다. 내가 알기로는 ‘군자는 위급한 자를 도와주고 부유한 자를 더 주지 않는다’고 하였다.(『논어』 옹야)” 아마도 공서적은 집안이 부유하고 멋쟁이였는가 보다. 또 염유(염구, 冉求 : 10철) 같이 정사에 밝고 잇속에 밝은 사람과 사적으로 친한 것으로 보아 권도를 추구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⑨ 천승후(千乘侯) 양전(梁鱣) : 양리(梁鯉)라고도 하며 자는 숙어(叔魚)이다. 공자님보다 29세 어렸다. 제나라 사람이라고 한다.
⑩ 임기후(臨沂侯) 염유(冉孺) : 자는 자로(子魯) 또는 자증(子曾)이고, 공자님보다 50세가 어렸다. 노나라 사람이라고 한다.
⑪ 목양후(沐陽侯) 백건(伯虔) : 자는 자석(子析)이고, 공자님보다 50세가 어렸다.
⑫ 제성후(諸城侯) 염계(冉季) : 자는 자산(子産)이고, 노(魯)나라 사람이라고 한다.
⑬ 복양후(濮陽侯) 칠조차(漆雕哆) : 자는 자렴(子斂)이고, 노나라 사람이라고 한다.
⑭ 고원후(髙苑侯) 칠조도보(漆雕徒父) : 자는 자유(子有) 또는 자문(子文)이라고 한다.
⑮ 추평후(鄒平侯) 상택(商澤) : 자는 자수(子秀)이다.
⑯ 당양후(當陽侯) 임부제(任不齊) : 자는 자선(子選)이고, 초(楚)나라 출신이다.
⑰ 변평후(弁平侯) 공량유(公良孺) : 자는 자정(子正)이고, 진(陳)나라 출신인데 어질면서도 용감하다고 하였다.
⑱ 신식후(新息侯) 진염(秦冉) : 자는 개(開)이다.
2) 서무의 안쪽(5-2)
① 양보후(梁父侯) 공견정(公肩定) : 자중(子中)이고, 노나라 출신이라고도 하고 진(晉)나라 출신이라고도 한다.
② 료성후(聊城侯) 교단(鄡單, 혹은 현단 縣亶) : 자는 자가(子家)이다.
③ 기향후(祁鄉侯) 한보흑(罕父黑) : 자는 자색(子索)이다.
④ 치천후(淄川侯) 신당(申黨) : 자는 주(周)이다. 동무(東廡)에는 ‘문등후(文登侯) 신정(申棖)’으로 종사하고 있다. 신당과 신정은 동일인이다. 동무의 ‘⑯ 문등후(文登侯) 신정(申棖)’ 참조.
⑤ 염차후(厭次侯) 영기(榮旂) : 자는 자기(子褀)이다.
⑥ 남화후(南華侯) 좌인영(左人郢) : 자는 행(行)이고, 노나라 사람이다.
⑦ 구산후(朐山侯) 정국(鄭國) : 자는 자도(子徒)이다.
⑧ 악평후(樂平侯) 원항(原亢,忼) : 자는 적(籍)이다.
⑨ 조성후(胙城侯) 염결(廉潔) : 자는 용(庸)인데, 위(衞)나라 사람이다.
⑩ 박평후(博平侯) 숙중쾌(叔仲噲) : 자는 자기(子期)이고, 노나라 사람이다.
⑪ 고당후(髙堂侯) 규손(邽巽) : 자는 자렴(子斂)이고 노나라 사람이다.
⑫ 임구후(臨朐侯) 공서여여(公西輿如) : 자는 자상(子上)이다.
⑬ 내황후(内黄侯) 거원(蘧瑗) : 자는 백옥(伯玉)으로 위나라의 대부이다. 지금 공자님을 호칭할 때 ‘공부자’라고 하는데 당시에는 대부벼슬을 하고 훌륭한 인품과 학덕을 갖춘 사람을 ‘부자’라고 호칭하였다. 거백옥도 공자님께서 직접 ‘부자’라고 호칭하셨다. 공자님이 위나라에 머무를 때마다 거백옥의 집에 거처하셨다. 거백옥이 사람을 보내 공자께 문안드리니 공자께서 그와 함께 앉아 물으시기를 “부자(거백옥)께서는 무엇을 하시는가?” 하시자 대답하기를 “부자께서는 허물을 적게 하려고 하시지만 아직 능하지 못하십니다”라고 하였다. 심부름꾼이 나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한 심부름꾼이구나! 훌륭한 심부름꾼이구나!”(『논어』 헌문)
거백옥은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할 뿐, 남을 억지로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선(善)으로써 삶과 죽음에서 부지런히 힘쓰는 행실을 하였다”가 거백옥에 대한 평가이다. 그러나 공자님은 그가 위령공처럼 무능한 임금 밑에서도 정치를 잘 이끌어가는 것을 보고, 그를 높이 평가해서 “군자답다! 거백옥이여!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거두어 속에 감출 수 있구나!”(『논어』 위령공)라고 하셨다.
⑭ 장산후(長山侯) 임방(林放) : 노나라 출신으로 예에 밝았다. 그가 예의 근본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크도다. 질문이여! 예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상사(喪事)는 형식보다는 차라리 슬퍼하여야 한다” 계씨가 태산에서 여(旅) 제사를 지내려고 하자 공자께서 염유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바로잡을 수 없겠느냐?” 염유가 대답하였다. “불가능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 태산의 신령이 임방만 같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냐?”(『논어』 팔일)(임방도 예의 근본을 아는데 태산이 어찌 예에 어긋난 제사를 흠향하겠는가?)
⑮ 남돈후(南頓侯) 진강(陳亢) : 자는 자항(子亢) 또는 자금(子禽)이라 한다. 공자님보다 40세가 어렸고, 진(陳)나라 출신이다. 진항의 형인 진자거(陳子車)가 위(衛)나라에서 죽었다. 진자거의 아내와 집사(가대부)가 의논해서 순장할 사람을 정하였다. 그때 진항이 오자 형수와 집사가 “형님이 병들었을 때 제대로 부양하지 못했으니 누구누구를 순장하고자 합니다”하고 의논하였다. 진항이 “순장은 예가 아닙니다. 하지만 돌아가신 형님을 돌보아야 한다면 형수님이나 집사보다 잘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순장을 그만둘 수 있으면 그만 두는 것이 좋겠지만 부득이 순장해야 한다면 저는 이 두 분을 추천합니다” 결국 순장은 없었던 것으로 하였다(『예기』 단궁 하).
⑯ 양평후(陽平侯) 금장(琴張) : 이름은 뢰(牢)이고, 자가 자장(子張) 또는 자개(子開)이다. 맹자가 “금장이나 증석(曾晳) 그리고 목피(牧皮) 같은 자가 공자께서 일컬은 뜻이 큰 사람이다”라고 칭찬하였다. 금장(琴張)이 종로(宗魯)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문상하러 가려 하자 공자님이 꾸짖으며 “제표(齊豹)를 도적이 되게 해서 맹집(孟縶)을 해치게 했는데 너는 왜 그를 문상하려 하느냐?"고 하시자 감히 문상을 가지 못했다. 종로가 맹집을 섬기고 있을 때에 제표가 맹집을 죽이겠다고 종로에게 말했다. 종로가 그 사실을 맹집에게 알리지 않았으므로 맹집도 죽고, 종로 자신도 죽은 일을 비난하신 것이다.
⑰ 박창후(博昌侯) 보숙승(歩叔乘) : 자는 자거(子車)이고 제(齊)나라 사람이다.
⑱ 중도백(中都伯) 좌구명(左丘明)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꾸미며 공손함을 지나치게 하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러워했는데 나 또한 부끄러워하노라. 원망을 숨기고 그 사람과 벗하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러워했는데 나 또한 부끄러워하노라”(『논어』 공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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