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만제 제방에서 본 여기산

여기산에 게시한 야행동물보호구역 간판

여기산 원삼국시대 3호 유적지다. 그릇 조각이 많이 보인다.

여기산은 팔달산, 숙지산과 더불어 수원을 대표하는 명산이다. 크지 않은 산이지만, 자연과 역사, 경관을 고루 품은 소중한 터전이다.
이 산에는 ‘수원 여기산 선사유적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3기와 원삼국시대 주거지 6기가 발견되었다. 원삼국시대는 대략 기원전 100년경부터 서기 300년경까지, 약 400년에 걸친 시기로 고대국가가 형성되던 중요한 전환기이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사람들이 이 산 중턱에 집을 짓고 삶을 영위했다는 사실은 이곳이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터전이었음을 말해 준다.
유적지는 서향의 햇볕이 잘 드는 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따뜻한 볕과 완만한 지형, 그리고 인근의 수자원은 선사시대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인 생활 조건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 지형과 풍광은 여전히 아름답다.
여기산은 또한 수원화성 축성 당시 돌을 캐던 채석장이 남아 있는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정조대왕의 원대한 도시 계획이 담긴 화성의 돌이 이곳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면, 산 하나가 지닌 역사적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더구나 산의 형태는 좌우가 대칭을 이루는 유선형 봉우리로, 아래로는 축만제 저수지와 어우러져 수원의 빼어난 경관을 이룬다.
이처럼 역사와 자연, 경관을 모두 갖춘 명산이지만 정작 시민은 오를 수 없다. 2008년 이 일대가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산 전체가 철조망으로 막혔기 때문이다. 신고 없이는 출입이 제한되는 상황이 18년째 이어지고 있다. 가까이 두고도 오르지 못하는 산, 눈앞에 있어도 체험할 수 없는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다.
야생동물보호구역 면적은 약 224,474㎡, 사실상 여기산 전체다. 그러나 수년간 현장을 살펴본 결과, 백로의 주요 서식지는 북동쪽 울타리 인근의 극히 일부 구역에 집중되어 있다. 전체 면적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남쪽 사면과 정상부까지 전면 통제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보존은 중요하다. 그러나 보존이 곧 전면적 차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생태 보호와 시민 이용은 충분히 조화시킬 수 있다. 서식지 핵심 구역은 엄격히 보호하되, 영향이 적은 구역에는 제한적 탐방로를 조성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최소한의 길과 선사유적지로 향하는 통로를 마련한다면,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면서도 시민의 접근권을 보장할 수 있다.
국가유산은 보존만을 위한 대상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시민이 향유하며 배우는 자산이기도 하다. 선조의 삶의 터전을 직접 걸어보고, 채석장의 흔적을 눈으로 확인하며, 자연 속에서 역사를 체험할 때 ‘온고지신’의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여기산의 개방은 단순한 등산로 하나를 여는 일이 아니다. 시민의 건강 증진은 물론, 선사유적지와 화성 채석장을 연계한 역사·생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이는 지역의 문화적 자산을 살아 숨 쉬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제는 묻고 싶다. 보호의 목적은 무엇인가. 보호받아야 할 것은 자연만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 배우고 누릴 시민의 권리 또한 아닐까.
수원시는 야생동물보호구역의 범위를 과학적으로 재검토하여, 핵심 서식지를 중심으로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영향이 적은 구역부터 단계적으로 개방하는 방안을 모색해 주길 바란다.
철조망에 갇힌 여기산이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날, 그 산은 비로소 역사와 자연, 사람이 함께 숨 쉬는 진정한 수원의 명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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