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무와 서무에 종사된 후대의 훌륭한 유학자 10인

윤상철 대유학당 대표, 철학박사
지난 기사 <특집>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에 대하여① (지면신문 제1149호(2025.10.15.) 1-2면, 인터넷판 http://www.cfnews.kr/coding/news.aspx/14/1/101750), <특집>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에 대하여② (지면신문 제1151호(2025.11.15.) 3면, 인터넷판 http://www.cfnews.kr/coding/news.aspx/14/1/102515), <특집>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에 대하여③ (지면신문 제1152호(2025.12.1.) 1-2면, 인터넷판 http://www.cfnews.kr/coding/news.aspx/2/1/102976), <특집>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에 대하여④ (지면신문 제1153호(2025.12.15.) 3면, 인터넷판 http://www.cfnews.kr/coding/news.aspx/14/1/103473), <특집>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에 대하여⑤ (지면신문 제1156호(2026.2.1.) 1-2면, 인터넷판 http://www.cfnews.kr/news/view.php?no=104625), <특집>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에 대하여⑥ (지면신문 제1157호(2026.2.15.) 3-4면, 인터넷판 http://www.cfnews.kr/news/view.php?no=105053)에 이어 공자의 직계제자는 아니지만 후대의 훌륭한 유학자 10인에 대해 설명한다.
6. 직계제자가 아닌 후대의 훌륭한 유학자 10인
중국 명나라 정덕(正德) 8년(1513년, 중종8)에 이 그림을 그릴 때의 목적은 송나라 초기의 학자, 그 중에서도 주희(朱熹)로 대표되는 성리학에 유교의 정통성을 부여했다고 보여진다.
당나라 시대에 도교와 불교를 배척하는 데 앞장서고, 특히 실질적인 문장을 복원하여 성리학의 논리체계를 구축하는 밑거름이 되게 한 한유를 앞세우고, 송대 초기의 주돈이·정호·정이·소옹·장재·사마광을 이끌어서 주희(朱熹)에서 매듭을 지었다.
또 그 아래에 종사된 허형과 오징은 선비로서의 절의를 잃고 원나라에 벼슬해서 부귀를 누렸다는 단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주희의 성리학을 계승 발전시켰다는 공적으로 종사되었다고 보여진다.
1) 동무 종사 5인
그림 4번으로, 위에서부터 동무(東廡)에 종사된 창려백(昌黎伯) 한유(韓愈), 예국공(豫國公) 정호(程顥), 신안백(新安伯) 소옹(邵雍), 온국공(温國公) 사마광(司馬光), 위국공(魏國公) 허형(許衡) 등 5인의 모습이다.
①창려백(昌黎伯) 한유(韓愈, 768-824)
당(唐)나라 시대를 대표하는 문장가이자 정치가이며 사상가이다.
당송 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자(字)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이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당시 유행하던 변려문(화려하면서도 형식 위주 문체)을 비판하고, 의미와 논리가 분명한 고문(古文)을 부흥시킴으로써 송나라 시대 철학적이고도 실질적인 문장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불골표(佛骨表: 불교 사리 숭배를 비판한 글)를 쓰는 등 불교와 도교를 배척하고 유교 중심으로 백성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②예국공(豫國公) 정호(程顥, 1032-1085)
북송(北宋)의 성리학자이다.
자는 백순(伯淳)이고, 호는 명도(明道)이며, 시호는 순공(純公)이다.
아우인 정이(程頤)와 함께 이정자(二程子)라 불리며, 오랜 기간 낙양에서 강학했으므로 그들의 학문을 낙학(洛學)이라 하고, 우주와 인간을 관통하는 보편 원리로서의 ‘리’를 중시하는 동시에 바르고 밝은 마음에 우주와 하나가 되는 ‘리’가 깃들어 있으므로, 궁리(窮理) 성찰(省察)하며 깨달은 ‘리’를 바탕으로 거경(居敬)하며 실천해서 천성을 찾아야 한다는 성리학적 인간학을 연 인물이다. 주돈이에서 발전한 성리학의 씨앗을 ‘심즉리(心卽理)’로 구체화하였다.
③신안백(新安伯) 소옹(邵雍, 1011-1077)
북송의 성리학자이자 상수학자이다.
자는 요부(堯夫)이고, 호는 안락(安樂) 또는 백천(百泉)이며, 시호는 강절(康節)이다.
지금의 하북성 범양현 출신으로, 청년 시절에 사방을 주유하다가 이지재(李之才)에게서 선천상수학을 전수받은 뒤에 스스로 연구하여 독창적인 우주관을 완성했다. 역사, 성음, 음양학, 특히 우주의 발생부터 소멸까지 모든 것을 상과 수로 해석하였다.
④온국공(温國公) 사마광(司馬光, 1019-1086)
북송의 유학자, 정치가, 역사학자이다.
성이 사마이고, 이름이 광이다. 자는 군실(君實)이고, 호는 우부(迂夫) 또는 우수(迂叟)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천(天)을 인격과 의지가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이며 우주의 주재자이고 최고의 통치자라고 하였다. 임금은 현명하고 신하는 충성을 다하며, 부모는 자애롭고 자식은 효도를 하며, 사람은 분수를 지켜야 하는데 이것을 거스르면 반드시 천재지변이 생긴다고 주장하였다.
⑤위국공(魏國公) 허형(許衡, 1209-1281)
원나라 시대의 성리학자이다.
자는 중평(仲平)이고 호는 노재(魯齋)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요추(姚樞)를 방문하여 정자, 주자의 학문을 얻은 것을 계기로 정자 주자학에 전념하였다. 세조(世祖)의 신임을 받아 집현대학사(集賢大學士) 등 학자로서 크게 빛을 보는 벼슬을 지냈다. 죽은 뒤에 사도(司徒)로 추증되고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주희의 거경궁리(居敬窮理)를 학문의 근본으로 하고 실행에 힘을 썼다.
2) 서무 종사 5인
그림 6번으로, 위에서부터 서무(西廡)에 종사된 도국공(道國公) 주돈이(周敦頤),낙국공(洛國公) 정이(程頤), 미백(郿伯) 장재(張載), 휘국공(徽國公) 주희(朱熹), 임천군공(臨川郡公) 오징(吳澄) 등 5인의 모습이다.
⑥도국공(道國公) 주돈이(周敦頤, 1017-1073)
북송의 유학자이다.
초명은 돈실(惇實)이나 영종(英宗)의 휘를 피하여 돈이(敦頤)로 고쳤다. 자는 무숙(茂叔)이고, 시호는 원공(元公)이다.
만년에 여산의 연화봉 기슭 시냇가에 거처를 정하여 그 시내를 염계(濂溪)라 이름하고 염계서당을 지어 강학하였으므로 ‘염계선생(濂溪先生)’이라 불렸다.
우주의 근원인 태극으로부터 만물이 생성되는 과정을 그려서 태극도(太極圖)라 하고 해설을 붙인 태극도설이 유명하다.
“우주생성의 원리와 인간의 도덕원리는 본래 하나이므로 인간이 중정(中正) 인의(仁義)의 도를 지키는 최고 신령한 존재” 라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⑦낙국공(洛國公) 정이(程頤, 1033-1107)
북송의 성리학자이다.
자는 정숙(正叔)이고, 이천백(伊川伯)에 봉해졌으므로 이천선생(伊川先生)으로 불렸고, 형 정호와 함께 이정자(二程子)로 존칭되었는데 오랜 기간 낙양에서 강학했으므로 그들의 학문을 ‘낙학(洛學)’이라고 한다.
14세에 형과 함께 주돈이에게 배웠다.
태학(太學)에 있을 때에 ‘안자는 학문을 좋아했다(顔子好學)’를 지어서 “공자님의 제자가 3천이고, 육예에 통달한 자가 70여 명이나 되었지만 안자는 중정하고 성실하게 행동해서 본성을 기름으로써 성인이 되는 학문을 하였다”고 하였다.
“사람은 배움으로써 성인이 될 수 있는데 배움은 반드시 마음을 다해야 하며, 마음을 다하면 본성을 알게 되고, 본성을 알면 성실해져서 성인의 경지에 이른다”며 성인이 되면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고, 인간 역시 리(理)와 기(氣)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면서 ‘리’가 성(性)을 낳고 ‘기’는 재질을 낳는다고 하였다.
⑧미백(郿伯) 장재(張載, 1020-1077)
북송의 성리학자이다.
자는 자후(子厚)이고, 미현(郿縣)의 횡거진(橫渠鎭) 고향에서 장기간 강학했으므로 횡거선생(橫渠先生)이라고 불렸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범중엄(范仲淹)의 가르침과 『중용(中庸)』을 전해 받은 후부터는 여러 경서와 백가서(百家書)를 두루 연구했다.
1056년 서울에서 정호, 정이를 만나 도학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크게 깨달은 바 있어 이후로는 이단의 학문을 버리게 되었다.
태허(太虛)가 기(氣)이고, 기가 태극이라는 논리로 우주를 설명하였다.
⑨휘국공(徽國公) 주희(朱熹, 1130–1200)
남송 성리학의 집대성자이다.
자는 원회(元晦) 또는 중회(仲晦)이고, 호는 회암(晦庵)이다.
‘리(理)’는 만물과 도덕의 보편 원리이고, ‘기(氣)’는 현실 세계를 이루는 물질이라고 하여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하고, 거경궁리(居敬窮理)의 수행을 통해 ‘성=리’가 된다고 하였다.
⑩임천군공(臨川郡公) 오징(吳澄, 1249-1333)
원(元)나라 시대의 성리학자이다.
자는 유청(幼淸), 호는 초려(草廬),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스승인 정약용(程若庸)을 따라 주희와 육구연을 학문의 종지로 삼았다. 경전의 비판도 시도하였고, 고고학의 선구자이기도 하였다.
앞서 종사된 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장재, 사마광은 모두 주희(朱熹)가 ‘북송육선생(北宋六先生)’으로 칭송한 사람들이다. 결국 주희를 공자님 학통의 정통으로 삼기 위한 포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돈이로부터 태동된 유학의 새로운 우주관적 실천론은 주희가 『예기』에서 『대학』과 『중용』을 독립시킴으로써 사상적 체계를 완비하게 된다. 한나라·당나라 시대의 유학 경전을 뜻풀이 위주로 해석하고, 정치 윤리적으로 풀이하던 것을 송나라 때에 와서 도교와 불교의 우주관을 비판적으로 흡수하면서 유학에 성(性)과 리(理) 그리고 기(氣)의 우주론적 체계를 갖춘 철학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 결과 ‘성리학(性理學)’이라고부르는 ‘신유학(新儒學)’이 태동했다.
‘주돈이 → 정호·정이 → 장재 → 주희’로 내려오는 흐름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 중에 ‘직계제자가 아닌 후대의 훌륭한 유학자 10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일 먼저 종사된 한유는 신유학자에게 도교와 불교의 그물을 풀어주고 자유로운 문장체를 선물했으며, 허형과 오징은 이민족의 침탈 속에서도 신유학을 지켜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3) 허형과 오징의 종사자격 비판
허형은 원(元)나라 때 활동한 유학자이자 교육가로, 성리학(주자학)을 원나라 국가 교육 체계로 정착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민족인 원나라 지배 아래에서 유교 질서를 재건하고 학문·교육 제도를 정비하는 데 큰 공헌을 함으로써 공자님의 학문을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이어지게 하였다.
또 오징은 원(元) 말기의 대표적 성리학자·경학자이다. 주자학을 정밀하게 재해석하고, 경전 주석을 체계화해 원–명 전환기의 학문적 교량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 성리학을 제도권에 자리잡게 한 뒤 오징은 이를 이론적으로 정교화한 것이다.
문제는 중국 유학자들이 싫어하는 원나라에서 벼슬을 했다는 데 있다.
더구나 오징은 송나라에서 진사로 출사했으면서도원나라에 출사해서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점이다. 학문으로 뛰어난 학자라는 것은 알겠지만 선비로서 절의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명나라 왕조에서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다.
“허형은 공자님의 학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임천군공 오징이 송나라의 은혜를 이처럼 오래 받았으면서도 원나라의 관직을 지내며 그처럼 영화로운 행적을 남겼다면 그가 한 행동은 왕망(王莽)의 부류라고 할 수 있다”고 하며 문묘에서 내치자고 한 것이다.
이를 반대한 사람이 오관(吳寛)과 예악(倪岳)이다.
오관이 말하기를, “유학의 경전과 전(傳)에 이로움이 있다면 문묘에 종사(從祀)될 자격이 있는 것이므로 옛날에 양웅과 마융도 배제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예악도 “마융과 왕필의 처신에 비난할 점이 없지 않으나 진나라·한나라 이래 6경이 불에 타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여러 학자들이 흩어진 경전을 품고 전공하여 강론함으로써 다시 전해지게 되었고, 당대의 주석과 소(疏)도 대부분 그들의 말을 본받았다. 오늘날 경전과 주석에서도 그들의 말을 많이 인용하는데 어찌 모두 폐할 수 있겠는가. 공자의 칠십 제자의 이름 역시 사마천 이래로 오래도록 전해져 왔으니 지금 천 수백 년이 지난 뒤에 어찌 억측으로 결정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모두 종전의 제도를 그대로 따르기로 하였다.
4) 허형과 오징의 예로 본 종사자격
허형과 오징에 대한 비판 논쟁에서 문묘에 종사되는 자격의 기준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4성의 선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자님의 직계제자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 학문보다는 도덕이 뛰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도덕이 뛰어나지 않아도 공자님의 학문을 보존하며 이어가는 데 공이 있으면 종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공자님 시대로부터 이름이 알려져 종사된 사람은 후대에 와서 다시 평가할 근거는 없다는 점이다. 즉, 한 번 종사가 된 사람은 특별히 내칠 근거가 없다면 계속해서 종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공자님의 뜻을 이어받은 제자가 종사되다가(안자)다음 단계에서는 각 왕조가 생각하는 공자님 학문을 이어갈 정통을 선정했고(증자·자사·맹자), 그 다음에는 어느 정도 가문의 사심이 작용했던 것이다. 학자로서 문묘에 종사된다는 것은 본인만의 영광이 아니라 가문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명나라 시대에 와서 오징을 내치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에 그의 후손인 오관이 막다가 여의치 않자 사표를 내고 물러나는 강수를 든 것도 그러한 맥락이 아니었을까?
5) 우리나라 선현들의 종사
서울의 태학(문묘·성균관)에 있는 대성전에는 공자님과 4성,그리고 10철을 봉안해서 모시고, 동무 11칸에 칸마다 5분씩 모두 55인을 모시며, 서무 11칸에 칸마다 5분씩 모두 55인을 모셨다.
(1) 서울 문묘의 종사
『육전조례(六典條例)』의 〈예전(禮典) 성균관(成均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동무(東廡)와 서무(西廡)의 종사(從祀) 신위를 배열했다.
동무에는 공자님의 한나라 시대까지의 제자 42명과 송나라 시대 제자 5명, 그리고 우리나라의 선현 8명 등 모두 55명이 종사되었다.
①공자님의 직계제자 및 한나라 시대까지의 제자 42명은 담대멸, 원헌, 남궁괄, 상구, 칠조개, 번수, 공서적, 양전, 염유,백건, 염계, 칠조치, 칠조도보, 상택, 임부제, 공양유, 진염, 공견정, 교단, 한보흑, 공조구자, 현성, 연급, 안지복, 악해, 안하, 적흑, 공충, 공서점, 시지상, 진비, 신장, 안쾌, 좌구명, 곡량적, 고당생, 모장, 유향, 정중, 노식, 복건, 한유이다.
②송나라 시대 제자 5명은 양시, 호안국, 장식, 황간, 진덕수이다.
③우리나라의 선현 8명은 설총, 안유(안향), 김굉필, 조광조,이황, 이이, 김장생, 송준길이다.
서무에는 공자님의 한나라 시대까지의 제자 41명과 송나라 시대 제자 5명, 원나라 시대 제자 1명, 그리고 우리나라의 선현 8명 등 모두 55명이 종사되었다.
①한나라 시대까지의 제자 41명은 복부제, 공야장, 공석애, 고시, 사마경, 유약, 무마시, 안신, 조휼, 공손룡, 진상, 안고,양사적, 석작촉, 공하수, 후처, 해용점, 안조, 구정강, 진조. 영기, 좌인영, 정국, 원항, 염결, 숙중회, 규손, 공서여여, 거원,임방, 진항, 금장, 보숙승, 공양고, 복승, 대성, 동중서, 공안국, 두자춘, 정현, 범영이다.
② 송나라 시대 제자 5명은 사마광, 나종언, 이통, 여조겸, 채침이다.
③원나라 시대 제자 1명은 허형이다.
④우리나라의 선현 8명은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송시열, 박세채이다.
『태학지(太學志)』에는 동무와 서무 말미의 ‘우리나라 18현(아국 18현, 我國十八賢)’ 중 몇몇 신위의 동서 위치가 이와 다르다.
뿐만 아니라 1949년 이후로는 동·서무의 신위 중 우리나라 18현은 대성전으로 올리고 나머지는 매장하였다.
(2) 주나 현의 종사
성종조에 만들어진 『경국대전속록(經國大典續錄)』에는 “모든 주(州)·부(府)·군(郡)의 학(學)에서 공자님과 4성, 그리고 송조(宋朝)의 주돈이·정호·주희의 세 분과 신라의 설총·최치원 및 고려의 안유(安裕)를 향사(享祀)하라”고 하였다.
숙종 때 강화유수 김진규가 주·부·군의 학에서도 서울의 태학에서와 마찬가지로 ‘10철과 송조사현(주돈이·정호·정이·주희)’을 추가해서 향사하자고 상소를 한 것으로 보면 숙종 때까지도 송조사현을 향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그의 상소 말미에 “다만 주·부·군에서 일제히 추가로 향사하자면 어려움이 많을 것이니 개성부 및 도(道) 단위에서만 태학(太学)과 같이 하고, 주·부·군의 학에서는 송조사현을 십철(十哲)의 아래에 종사하고, 그 밑의 현 단위에서는 예전처럼 6인만 종사하자”고 하였다.
향사에 드는 비용도 비용이고, 지방 향교의 문묘 규모가 작고 특히 동무(東廡)와 서무(西廡)가 없어서 재건축해야 하는 문제가 컸을 것이다.
태학 등 주·부·군의 큰 문묘에서는 성전(聖殿) 안에 십철(十哲)을 종향(從享)하고, 동무(東廡)와 서무(西廡)에 동국 유현(儒賢)을 봉안하는데 현의 경우는 무가 없기 때문에 성전 안에 송조사현과 동국구현(東國九賢)을 봉안해 왔던 것이다.
(3) 동무의 18현
설총(薛聰), 안유(安裕 안향(安珦)), 김굉필(金宏弼), 조광조(趙光祖), 이황(李滉), 이이(李珥), 김장생(金長生), 송준길(宋浚吉)
(4) 서무의 18현
최치원(崔致遠), 정몽주(鄭夢周), 정여창(鄭汝昌), 이언적(李彦迪), 김인후(金麟厚), 성혼(成渾), 송시열(宋時烈), 박세채(朴世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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