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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玄崗의 泮中雜詠] 유교의 근간인 명분(名分)과 의(義)를 뿌리째 흔든 최종수 성균관장과 이권재 씨

  • 이상호 기자
  • 입력 2026.04.0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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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묘 공간인 향관청을 오용(誤用)해 유교 성현에 대한 불경(不敬) 저질러
  • 감통(感通)을 결여한 부정(不淨)으로 성스러움 훼손
  • 자격 없는 자들이 전통 예법을 세속적인 정치 쇼로 전락시켜
  • 근거도 없는 불순한 예법으로 파리장서 서명 137인 선배유림까지 욕보여

이현강.jpg

 

서울 문묘 성균관은 국왕의 명에 의해 1398년(태조 7) 음력 7월 수도 한양의 동부(東部) 숭교방(崇敎坊)의 지금 위치에 건립된 이래로 한국 유교의 성지이자 한국전통문화의 상징으로 보존되어 왔다.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의 무수한 일들을 겪으며 때로는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 없어지기도 했고, 국가의 존재가 사라져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을 때도 있었지만, 오직 공부자를 비롯한 성현의 가르침을 받드는 유림만이 사명감을 가지고 이곳을 지켜왔기에 지금은 유교의 종주국이었던 중국에서조차 사라졌던 석전(釋奠)과 일무(佾舞) 등의 의례와 유산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이어오고 있다.


성균관에서 이뤄진 모든 의례는 각종 문헌에 세부적인 내용까지 명시되어 지금도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태학지』, 『국조오례의』 등의 자료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심지어 성균관 석전의 음복주에 사용하는 쌀의 수량까지 국왕이 결정할 정도로 엄격한 통제와 질서 준수가 필수였다(본지 기사 「석전(釋奠) 음복주를 만드는 쌀의 수량까지 국가가 정했다」 http://www.cfnews.kr/news/view.php?no=88189 참조).


그러므로 아무리 현대에서 예법을 편의대로 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성균관만큼은 기본적으로 선배 유림들이 몇백 년간 지켜온 대로 해야 하고, 대성전을 비롯한 각 건물들의 용도도 전통을 따라야 한다.

 

그런데, 지난 3월29일 서울 문묘 성균관 향관청에서 성균관·성균관유도회총본부·파리장서선현후손회가 주최하고, ‘유림파리장서독립청원운동 선유추모제례봉행위원회’라는 정체불명의 기구가 주관하는 ‘2026 유림 파리장서 독립청원운동 선유추모제례 및 기념식’ 행사가 열리며 후원계좌까지 개설해 후원금을 모금했다.

  

포스터.png

 

1. 서울 문묘 성균관의 향관청 오용(誤用)으로 유교 성현에 대한 불경(不敬) 저질러

 

성균관 향관청(享官廳)은 1490년(성종 21) 특진관(特進官) 성현(成俔)의 주청과 국왕 성종(成宗, 재위 1469-1494)의 승인(『성종실록』 권 237, 성종 21년 2월8일)으로 건립이 시작되어 완성된 후에는 석전 등 국가 제례를 집행하는 제관들이 재계(齋戒)하며 머물고, 매번 국왕이 친히 보내는 향과 축문 등을 보관하는 엄숙한 준비 공간이었다.

 

태학지에 기록된 향관청 모습2(편집수정).jpg
『태학지(太學誌)』에 기록된 서울 문묘 성균관 안의 향관청 모습(빨간 네모 칸)이다.

 

제21대 국왕 영조(英祖, 재위 1724-1776)는 1740년 음력 8월9일의 석전을 하루 앞둔 8월8일에 몸소 성균관에 왕림하여 「제태학향관청(題太學享官廳)」이라는 글을 짓고, 사습(士習)을 면려하기도 했는데(『열성어제(列聖御製)』 권18, 영종대왕(英宗大王), 『영조실록』 권52, 영조 16년 8월8일) 이렇듯 향관청은 단순하게 제관들이 잠을 자며 쉬거나 공간이 부족하다고 하여 원래의 목적이 아닌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하찮은 장소가 아니었다.

 

따라서 신을 모시는 사당이 아니라 제사를 준비하는 인적·물적 공간인 향관청에 별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건물의 목적과 예법의 위차(位次)를 뒤흔드는 중대한 불법행위이자 성현들과 파리장서 서명 선배유림들에 대한 ‘모욕(侮辱)’이고, ‘월권(越權)’이다.

 

성균관심산선생추모제례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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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TV방송의 보도 화면으로, 황당하게도 은어나 속어로 조직이나 범죄의 실행 담당자를 가리키는 '행동책'이라는 말로 김창숙 선생을 표현하고 있다.

 

최종수 성균관장과 이권재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이 중심이 되어 준비한 지난 3월29일의 행사는 심산 김창숙 초대 성균관장을 비롯한 선배 유림들은 물론 오랜 유림생활을 해온 이들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해괴한 모습의 연출이었다.


평소 성균관과 자주 소통하는 유교TV방송에서는 관련 내용을 보도하며 김창숙 초대 성균관장을 ‘행동책’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모습도 선보였는데 이 말은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을 정도로 공식 용어가 아니고, 흔히 알듯이 ‘조직이나 범죄의 실행 담당자’를 가리키는 은어나 속어로 사용되는 게 보통이니 이쯤 되면 1945년 광복 이후에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남·북한의 유림들을 통합하고, 성균관을 재건했던 김창숙 초대 성균관장의 명예가 훼손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파리장서에 서명한 유림들의 공훈을 아무리 높게 평가하더라도 김창숙 초대 성균관장을 비롯한 선배 유림들이 지금까지 대성전, 명륜당, 향관청 등 서울 문묘 성균관의 주요 공간에서 추모제례를 봉행하지 않은 것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동안 이어져 온 국가 제례인 석전 및 각종 제향 준비를 위해 절대적으로 엄숙해야하는 공간에서 특정인을 위한 별도의 제례를 행하는 것은 ‘공적 의례 공간’을 사유화하는 것이고,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뼛속 깊이 유교 의례를 익히고 연구했던 파리장서 서명 유림들이 전혀 원하지 않고 절대 희망하지 않았던 바를 몇몇 사람의 목적에 맞게 억지로 강행한 것이니 결과적으로는 파리장서 유림들을 모욕한 것이다.

 

그분들에 대한 추모제례는 지난 2019년의 파리장서 100주년 행사와 같이 성균관 유림회관과 같은 공간에서 거행했다면 문묘의 위계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항일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바쳤던 선배유림들의 정신을 온전히 기리는 충절의 행사로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본지 기사 「성균관, 유림독립항쟁 파리장서 100주년 기념식 가져」http://www.cfnews.kr/news/view.php?no=21079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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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성주청년유도회에서 개최한 심산 김창숙 선생 숭모제이다. 향교가 아닌 별도의 공간에서 개최된 이날 숭모제에는 심산 선생의 주손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250여 명의 유림지도자와 지역민 등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고, 학술대회와 숭모작헌례가 봉행됐다(본지 기사 「성주청년유도회, 제14회 심산 김창숙 선생 숭모제 개최」 http://www.cfnews.kr/news/view.php?no=101978 참고).

 

유교의 제례는 엄격한 격식과 장소의 명분을 따져야 하는 의례이다. 유림회관 대강당의 결혼식이나 일반 행사가 예약되었다는 이유로 성균관 문묘의 부속 성역인 향관청을 대체 장소로 사용한 것은 제례의 본질을 훼손한 행위이고, 어떤 경우라도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그럼에도 최종수 성균관장과 이권재 씨는 서울 문묘 성균관의 역사와 유교 의례에 대한 무지로 인해 유교 성현과 파리장서 서명 유림들을 함께 모욕하는 불경을 서슴지 않았다.

 

2. 자격 없는 자들이 전통 예법을 세속적인 정치 쇼로 전락시켜

 

최종수 성균관장과 이권재 씨는 문묘의 위계를 침범하였을 뿐만 아니라 파리장서 유림들에 대한 추모 제례를 세속적인 정치 쇼로 전락시키고, 감통(感通)을 결여한 부정(不淨)을 저질러 성스러움을 훼손했다.

 

최종수 성균관장은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서도 인정했듯이 반평생 종손을 사칭해왔고, 지난 2024년의 12.3 불법비상계엄을 지지하여 언론계와 이웃종단, 국민 등에게 유교 종단을 마치 올곧지 못한 집단으로 인식시켰으며, 한국 주요 종교지도자 중에서 유일하게 일왕의 생일파티에 당당하게 참석하는 등 극우친일파의 행적까지 나타내며 우리 유림들을 ‘남 부끄러워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하는 언행’을 선보였다.

 

같이 보조를 맞춘 이권재 씨는 ‘대대로 유림가문이다’라고 거짓말을 했으나 ‘대대로 갱정유도 가문’이었고, 다른 종교 종단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의 주요 지도자이다.

 

파리장서운동의 본질이 일제의 침략상을 폭로하고 국권을 되찾으려 했던 유림들의 목숨을 건 저항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최종수 성균관장의 행적은 역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김창숙 선생을 비롯해 파리장서에 서명한 137인의 유림은 일제의 무력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유교적 신념을 끝까지 지킨 분들이다. 그런 분들을 기린다는 제례의 주관자가 일왕 생일 파티에 참석해 논란을 빚은 극우친일파라면 이는 선열들의 고결한 뜻을 정면으로 모독한 행위이자 그분들을 위한 제례나 행사를 주관할 자격을 이미 상실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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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에서 내려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입구에서 일왕 생일파티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최종수 성균관장의 모습으로, 유튜브 동영상 43분 50초 내외부터 그의 얼굴과 관장 공용차량 번호판이 뚜렷하게 보인다(본지 기사 「<李玄崗의 泮中雜詠>최종수 성균관장, 일왕 생일파티 참석 파문」 http://www.cfnews.kr/news/view.php?no=94840 참고).


또한 제례는 단순히 술을 올리는 형식이 아니라 헌관의 정성과 선열의 혼령이 서로 통하는 ‘감통’을 핵심으로 한다.

 

거짓말을 일삼고 유교 이념이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이권재 씨와 같은 타 종교인이 잔을 올리는 것은 ‘속 빈 강정’과 같은 형식적인 행위에 불과하고, 이는 제례의 성스러움을 훼손하는 ‘부정(不淨)’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으며, 추모제례의 대상이 되신 분들의 생전 신념과 배치되는 타 종교인이 헌관인 것은 ‘거짓 제사’이자 ‘기만’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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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종교협의회 지도자로 미국을 방문해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이권재 씨의 모습이다.

 

성균관장이라는 이는 극우친일파의 행적을 보였고,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을 자처하는 자는 다른 종교인이며, 성균관의 총무처장이라는 자는 유교인으로서 경력이 없어 유교 이념에 무지하고, 총무국장이라는 자는 석전이나 분향 때 사배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서울 문묘 성균관과 유교 이념의 역사적·공간적 의미에 대해 무지한 이들이 벌인 이번 성균관 향관청에서의 소위 ‘추모제례 강행’ 사건은 유교의 근간인 명분과 의리를 뿌리째 뒤흔드는 한국 유교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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