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은 권력의 정거장이 아니다… ‘목민(牧民)’ 잃은 거물들의 위기(爲己) 정치 [기자수첩]

  • 등록 2026.05.02 11: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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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한동훈·이광재·전은수·김남준, 6·3 재보선이 드러낸 중앙정치의 지역 침투

 

숫자만 보면 14곳의 빈자리를 채우는 재보궐선거다. 그런데 판의 크기와 정치적 성격을 보면 미니 총선에 가깝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경기 평택을에 출사표를 던졌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부산 북갑에서 무소속 출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인천 연수갑에서 정치 재기를 노리며,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경기 하남갑에 배치됐다. 이뿐만 아니다. 김남준 전 청와대 대변인은 인천 계양을에, 전은수 전 청와대 대변인은 충남 아산을에 전략공천장을 받았다.

 

지방선거와 나란히 치러지는 무대에 중앙정치의 거물들이 앞다투어 밀려들고 있다. 국회의원은 본디 입법과 예산, 국정 견제라는 중앙정치의 책무를 지는 자리다. 그럼에도 지역구 국회의원은 동시에 한 지역의 팍팍한 현실을 끌어안아야 하는 대표자다. 중앙에서 나라의 큰 방향을 논하더라도, 그 출발점은 자신이 딛고 선 지역의 구체적인 삶이어야 한다. 지역의 산업과 교통, 무너지는 상권의 현실을 알지 못한다면, 중앙정치의 언어가 아무리 화려한들 공허할 뿐이다.

 

이 대목에서 백성을 기르고 돌본다는 목민(牧民)의 도를 다시 곱씹게 된다. 과거 지방 행정을 맡았던 수령과 오늘의 국회의원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지역을 대표하겠다고 나선 공직자라면, 백성의 삶을 모른 채 탁상공론만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는 본질은 과거나 지금이나 같다.

 

중앙의 정치가라 해도 지역구를 대표하려면 먼저 그 지역의 삶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 지역을 알지 못한 채 지역의 이름만 빌리는 정치는, 겉보기엔 그럴싸해도 결코 민심에 뿌리내릴 수 없다. 이런 목민의 잣대에서 볼 때, 이번 재보선에 뛰어든 거물들의 행보는 위태로움을 넘어 참담하다.

 

조국 대표가 출마한 경기 평택을은 단순한 험지가 아니다. 미군기지 이전 문제, 거대한 항만 물류, 반도체 산업의 명암과 영세 제조업 노동자들의 땀방울이 엉켜있는 복잡한 도시다. 그런데 조 대표는 여러 지역을 저울질하다 막판에 평택을 택했고, 급기야 평택시를 옛 행정구역인 평택군으로 오기하는 촌극까지 빚었다. 지명조차 헷갈리는 수준으로 평택의 생활 구조를 어떻게 말하겠다는 것인가. 지역 현안은 뒷전인 채 대권 구도만 앞세운다면, 평택 시민들은 또다시 중앙정치의 들러리로 전락할 뿐이다.

 

부산 북갑을 파고든 한동훈 전 대표의 행보도 기만적이긴 마찬가지다. 그는 선거를 목전에 두고 만덕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아 부리나케 전입신고를 마쳤다. 산복도로의 낡은 주거 환경과 원도심 쇠퇴라는 부산의 오랜 구조적 아픔을 토론할 시간조차 없이, 도장 하나로 벼락치기 연고를 만들었다. 이는 부산을 디딤돌 삼아 보수 진영을 재편하겠다는 권력의 계산표일 뿐이다.

 

무엇보다 민주당의 전략공천 행태를 보면 참담함을 넘어 봉건시대의 영지(領地) 세습을 보는 듯하다. 이재명 대표의 그림자가 짙은 인천 계양을에 내리꽂힌 김남준 전 대변인, 그리고 줄곧 울산을 정치적 고향이라 부르다 돌연 연고도 없는 충남 아산을에 투입된 전은수 전 대변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공천은 지역 주민들과 호흡하며 신뢰를 쌓아온 결과가 아니다. 중앙 정치 거물들의 후광을 등에 업고 내려온 가신(家臣)들이, 주군의 지역구를 마치 전리품이나 가업처럼 세습받는 기막힌 풍경이다. 천하의 공기(公器)여야 할 국회의원 자리가 특정 계파와 권력자의 사유물로 전락한 셈이다.

 

맹자(孟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고 일갈했다. 오늘의 언어로 바꾸면, 유권자의 삶이 먼저이고 정치인의 자리는 가장 나중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지금 여야를 막론하고 벌어지는 행태는 위민(爲民)이 아니라 철저한 위기(爲己), 즉 권력 유지와 세습을 위한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은 권력을 향해 잠시 머물다 가는 객사(客舍)가 아니다. 주군이 가신에게 하사하는 영지는 더더욱 아니다. 주민들이 평생을 걸고 생업을 일구어온 터전이다. 다가오는 6월, 유권자들은 투표소 앞에서 매섭게 물어야 한다. 과연 저 화려한 이름들이 선거가 끝난 뒤에도 우리의 골목 곁에 남아있을 것인가. 중앙 정치의 낙하산을 거부하고, 지역을 권력의 소모품 취급하는 오만한 세습과 철새 정치를 향해 민심의 준엄한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다.

김정기 기자 desk@cf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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