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영풍-MBK 계약서 제출명령 항고 기각 [법정문답]

  • 등록 2026.05.05 19: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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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콜옵션 조건이 핵심 쟁점…주주평등 원칙과 감시권한 판단 주목

 

서울고등법원이 영풍-MBK 경영협력계약 관련 문서제출명령에 불복한 장형진 영풍 고문의 즉시항고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KZ정밀이 제기한 9300억 원대 주주대표소송에서 핵심 계약 문건을 둘러싼 증거조사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단순한 계약서 제출 여부에 그치지 않는다.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이 어떤 조건으로 MBK 측에 이전될 수 있도록 설계됐는지, 그 과정에서 영풍과 일반 주주의 이익이 침해됐는지를 따지는 문제다.

 

KZ정밀에 따르면 서울고법 제25-2민사부는 지난달 28일 장 고문이 서울중앙지법의 문서제출명령 결정에 불복해 제기한 즉시항고를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KZ정밀의 신청을 받아들여 경영협력계약 관련 문서 제출을 명령한 바 있다.

 

이번 결정으로 장 고문은 2024년 9월 12일 영풍, 장 고문, 한국기업투자홀딩스 사이에 체결된 ‘경영협력에 관한 기본계약’과 후속 계약서 일체를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한국기업투자홀딩스는 MBK파트너스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이다. 해당 계약은 영풍과 MBK 측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체결한 문건이다. KZ정밀은 이 계약이 영풍의 핵심 자산인 고려아연 주식의 처분 구조와 연결돼 있다고 보고 있다.

 

쟁점은 콜옵션이다. 공시 내용에 따르면 경영협력계약에는 영풍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의결권을 한국기업투자홀딩스의 동의 아래 행사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추천한 이사가 영풍 측 추천 이사보다 1명 더 많아야 한다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영풍 측 주식에 대해 콜옵션, 우선매수권, 공동매각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콜옵션 행사 가격과 조건, 행사 방식에 따라 영풍의 손해 발생 여부와 손해 규모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도 이 부분을 주목했다. 법원은 공개매수신고서 등에 공시된 내용만으로 콜옵션의 구체적 행사조건과 행사 방법이 모두 밝혀졌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계약서 중 아직 공개되지 않은 부분에 따라 영풍의 손해액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또 영풍과 특수관계인이 경영협력계약에 따라 한국기업투자홀딩스에 각종 의무를 부담하면서 영풍에 손해가 발생했는지, 그 손해의 정도와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본안소송에서 충실한 증거조사를 통해 따져야 한다고 봤다.

 

법원은 계약서 제출 거부가 주주평등 원칙에 어긋나는 차별적 행위가 될 소지도 있다고 판단했다. 주주가 회사의 중대한 계약 내용을 확인하려는 것은 정당한 감시권한 행사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대목은 이번 결정의 무게를 키운다. 주식회사의 경영권 분쟁은 단순히 지배주주와 외부 투자자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회사 자산의 처분 가능성, 일반 주주의 재산권, 이사의 충실의무가 함께 걸린 사안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의리(義理)’는 사사로운 이해보다 공정한 도리를 앞세우는 원칙이다.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배권을 둘러싼 계약이 회사와 주주 전체의 이익에 부합했는지는 투명하게 확인돼야 한다. 감춰진 계약 조건이 있다면 의혹은 커질 수밖에 없다.

 

KZ정밀 관계자는 “1심에 이어 항고심 재판부도 영풍-MBK 경영협력계약의 구체적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며 “고려아연 주식이 어떤 조건과 방식으로 MBK 측에 이전될 수 있도록 설계됐는지, 그 과정에서 영풍과 일반 주주의 이익이 훼손됐는지 주주대표소송에서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본안 판단이 아니다. 계약 자체의 위법성이나 배임 여부를 확정한 것도 아니다. 다만 법원이 계약서 제출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향후 소송의 초점은 비공개 계약 조건과 영풍의 손해 발생 여부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계약서가 제출되면 콜옵션 행사조건, 주식 이전 구조, 의결권 행사 방식, 영풍 이사회와 경영진의 의사결정 책임이 주요 심리 대상이 될 전망이다. 경영권 분쟁의 이면에 회사와 일반 주주의 이익이 어떻게 다뤄졌는지가 법정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날지 주목된다.

김정기 기자 desk@cf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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