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는 정치를 논하며 “송사(訟事)를 듣고 판결함에 있어 반드시 억울함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必也使無訟乎)”고 가르쳤다. 그러나 오늘날 경기 동남권 164만 주민들에게 법원의 문턱은 여전히 높고, 판결을 기다리는 시간 자체가 또 다른 억울함이자 고통이 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병폐를 타개하기 위해 성남지원의 '지방법원 승격'이 제22대 국회에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경기 분당을) 등 10인은 지난 4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을 성남지방법원으로 승격시키는 내용의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218801)을 대표 발의했다.
단순한 지역 숙원 사업을 넘어, 붕괴 직전인 경기 남부권 사법 시스템의 '동맥경화'를 풀기 위한 필수적 입법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통계가 증명하는 과부하] 전국 지원 중 사건 수·인구 '압도적 1위'
본지(유교신문)가 취재한 법원행정처의 2025년 연구용역 「합리적인 법원 신설 및 통합 기준 등 연구」 보고서는 현재, 성남지원의 업무 과부하는 이미 지방법원 '지원(支院)'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크게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성남시·광주시·하남시를 관할하는 성남지원의 관할 인구는 164만 985명으로 전국 지원 평균(52만 명)의 3배를 웃돈다. 통계적 편차를 보여주는 Z-score 기준 2.56에 달하는 '이상치'다. 연간 처리하는 본안사건 역시 2만 4,444건(Z-score 2.61)으로 전국 지원 중 최다 규모다. 인구 157만 명의 의정부지법 고양지원(본안사건 2만 716건), 142만 명의 수원지법 안산지원(2만 1,564건) 등 다른 대형 지원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1위다.
조직과 인력은 '지원'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대도시 '지방법원'급 사건이 쏟아지다 보니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성남지원의 제1심 민사본안 평균 처리 기간은 189일로, 전국 평균(183일)을 훌쩍 넘긴다. 생업을 걸고 법원을 찾은 주민과 소상공인들이 판결만을 기다리며 피가 마르는 이른바 '사법 지연' 사태가 일상화된 것이다.
◇ [관할 재편의 청사진] 여주지원 통합, 경기 동남권 사법 중심지로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관할 구역의 대대적인 재편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존 수원지법 산하였던 성남지원이 '성남지방법원'으로 승격되어 성남·광주·하남을 직접 관할하게 된다. 또한 이천·여주·양평을 담당하던 수원지법 여주지원을 성남지방법원 소속으로 이관하여, 경기 동남권 전체의 사법 접근성을 대폭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이는 인구 930만 명의 서울이 5개의 지방법원 체계를 갖춘 반면, 인구 1,374만 명의 경기도가 단 2곳(수원, 의정부)의 지방법원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사법 인프라를 정상화하는 실질적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 남은 과제는? 21대 국회의 전철 밟지 말아야
그럼에도 장밋빛 청사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6일 현재 국회 접수 단계인 이 법안이 실제 본회의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험난한 과정이 남아있다.
이미 제21대 국회에서도 '김병욱 의원 등 12인이 유사한 법안(의안번호 2124204)을 발의'했으나,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에 계류되다 2024년 5월 29일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 바 있다. 지역 표심을 겨냥한 선언적 발의만으로는 사법 체계를 바꿀 수 없다는 뼈아픈 선례다.
법조계 관계자는 "관할 구역 조정은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동의가 필수적이며, 지법 승격에 따른 대규모 청사 확보와 판사·직원 증원 등 천문학적인 예산 수반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남지법 승격은 권력이 아닌 '국민을 지키는 사법부'로 거듭나기 위한 리트머스 시험대다. 소관위 확정과 법사위 심사를 앞둔 지금, 정치권이 또다시 이를 정쟁이나 치적 쌓기용으로 소비할지, 아니면 실질적인 예산과 조직을 쥐어짜 내어 164만 도민의 눈물을 닦아줄지 22대 국회의 실천 의지가 시험대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