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국민배당금’ 논란, 김용범 정책실장의 말은 왜 시장을 흔들었나? [기자수첩]

  • 등록 2026.05.13 08:12:29
크게보기

‘개인 의견’으로 덮기 어려운 대통령실 정책 컨트롤타워의 발언 책임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한마디가 시장을 흔들었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이른바 ‘AI 국민배당금’ 발언을 두고 정치권과 시장, 재계가 동시에 술렁이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단순하지 않다. 인공지능 시대의 초과이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배분할 것인가라는 문제 제기는 그 자체로 공론화할 수 있다. 기술 독점과 자산 격차가 커지는 시대에 국가가 사회 안정 비용을 고민하는 것 역시 정책 영역의 과제다.

 

문제는 방식이다. 그것도 대통령실 정책실장이라는 자리에서 나온 방식이다.

 

김 실장은 AI와 반도체 호황으로 발생하는 초과이익의 일부를 국민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이를 ‘국민배당금’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했다. 이후 논란이 커지자 새로운 세금 도입이 아니라 초과세수 활용 취지라고 해명했다.

 

다만 시장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초과세수’와 ‘초과이윤’, ‘초과이익’이 함께 언급되면서 투자자들은 기업 이익에 대한 사실상의 추가 과세 또는 이익공유 압박으로 해석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실적과 성과급 논란이 맞물린 시점이어서 파장은 더 커졌다.

 

정책은 말에서 시작된다. 권력자의 말은 더 그렇다. 일반 학자나 시민단체 활동가의 문제 제기와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발언은 무게가 다르다. 전자는 주장일 수 있지만, 후자는 정책 신호로 읽힌다. 시장은 그 차이를 본능적으로 안다.

 

대통령실이 “내부 논의나 검토와 무관한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은 대목도 가볍지 않다.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드러낸다. 국정의 경제정책을 조율해야 할 정책실장이 시장 민감 사안을 개인 의견 형식으로 던졌고, 대통령실은 뒤늦게 이를 개인 의견이라고 수습했다. 이것이야말로 정책 거버넌스의 균열이다.

 

정책실장은 개인 논객이 아니다. 장관급 참모이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을 보좌하는 핵심 책임자다. 그런 인사가 기업 이익, 초과세수, 국민 환원을 한 문맥에서 언급했다면 시장은 당연히 정부의 정책 구상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경제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신뢰다.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것인지, 이미 발생한 세수를 나누겠다는 것인지, 기업 이익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겠다는 것인지조차 명확하지 않다면 시장은 불확실성을 가격에 반영한다. 그 결과는 주가 변동, 외국인 자금 이탈, 기업 투자 위축으로 나타날 수 있다.

 

김 실장의 문제의식에는 시대적 고민이 담겨 있을 수 있다. AI와 반도체 산업의 과실이 일부 기업과 자산 보유층에 집중될 가능성은 실제 정책 과제다. 중산층과 청년층, 비수도권이 기술 전환의 비용을 떠안지 않도록 제도적 완충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논의할 만하다.

 

그럼에도 공적 권한을 가진 자의 말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개념은 정리돼야 하고, 재원은 구분돼야 하며, 기업 부담 여부는 분명해야 한다. 국회 논의, 관계 부처 협의, 시장 영향 평가 없이 ‘국민배당금’이라는 상징적 용어가 먼저 던져지면 정책은 토론이 아니라 불안이 된다.

 

과거 초과이익공유제와 협력이익공유제도 같은 벽에 부딪혔다. 취지는 상생이었지만, 재계는 기업 성과에 대한 사후적 개입으로 받아들였다. 이번 국민배당금 논란도 같은 길을 반복할 위험이 있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기업의 성공 과실을 국가가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민감하다.

 

유교에서 정명(正名)은 정치의 출발이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민배당금’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그 실체부터 분명해야 한다. 초과세수 활용인지, 횡재세인지, 이익공유제인지, 복지 이전인지 모호한 상태에서 이름만 앞세우면 국민도 시장도 혼란스럽다.

 

맹자는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는 정치를 중시했다. 다만 민생을 위한다는 명분이 시장의 신뢰를 흔드는 방식으로 추진된다면 그 또한 바른 정치라 하기 어렵다. 의로움은 절차와 책임 위에서 설 때 힘을 얻는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발언의 취지를 설명하는 데 그칠 일이 아니다. 정부가 실제로 검토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기업 이익에 대한 추가 부담을 뜻하는지, 단순한 초과세수 활용론인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대통령실 역시 개인 의견이라는 말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정책 라인의 발언 관리와 의사결정 체계를 점검해야 한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즉흥적 구호가 아니다. 예측 가능한 정책이다. 기업에 필요한 것도 특혜가 아니다. 원칙 있는 규칙이다. 시장에 필요한 것은 장밋빛 약속이 아니라 정부 발언에 대한 신뢰다.

 

말은 가볍게 나왔을 수 있다. 다만 정책실장의 말은 결코 가볍게 사라지지 않는다. 시장이 이미 그 무게를 확인했다.

김정기 기자 desk@cfnews.co.kr
Copyright @유교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제호 : 유교신문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31 유림회관 3층 304호 발행인 : 이상호 | 편집인 : 김정기 | 인쇄인 : 현재오 | 등록번호 : 서울 다07340 | 창간 : 1969년 유림월보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정기 | 등록번호 : 서울 아03116 | 등록일자 2014. 04. 21 | 발행일자 : 2014. 04. 25 기사제보 및 문의: 010-7698-8399 | TEL : 02-744-2817 | FAX : 02-764-5148 | Email : desk@cfnews.co.kr (서울사무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