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미국 핵심광물 통합제련소 사업 ‘프로젝트 크루서블(Project Crucible)’의 명칭과 표지를 무단 사용했다며 MBK파트너스와 영풍 측 관계자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MBK·영풍 측은 최대주주로서 미국 정부와 지역사회, 투자자들을 상대로 진행한 정당한 소통 활동이었다며 맞서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누가 먼저 ‘크루서블’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 명칭이 고려아연의 사업을 나타내는 표지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MBK·영풍 측의 도메인과 현지 행사 운영 방식이 사업 주체를 혼동하게 했는지, 그 과정에서 고려아연의 업무가 실제로 방해됐거나 방해될 위험이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고려아연은 지난 5일 한국기업투자홀딩스와 영풍, 윤종하 MBK 부회장, 장세환 영풍문고홀딩스 대표 등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 종로경찰서에 고발했다.
현재는 고발장이 접수된 단계다. 고려아연이 주장하는 사실관계나 법률적 평가가 수사기관에 의해 확인된 것은 아니며, 실제 혐의가 성립하는지는 향후 수사를 통해 가려져야 한다.
무엇이 문제가 됐나?
고려아연에 따르면 MBK·영풍 측은 지난 6월 27일 프로젝트 명칭과 미국 테네시주를 결합한 ‘crucibleTN.com’ 도메인을 등록했다. 등록자 정보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방식으로 설정됐다는 게 고려아연 측 설명이다.
이어 7월 초에는 테네시주 정부 관계자와 지역 인사,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리셉션 초대장이 배포됐다. 고려아연 측은 초대장에 ‘프로젝트 크루서블’ 명칭이 주최 측 이름보다 크게 표시됐고, 회신 연락처 역시 ‘[events@crucibleTN.com](mailto:events@crucibleTN.com)’으로 적혀 있었다고 주장한다.
리셉션은 7월 9일 테네시주 내슈빌 허미티지 호텔에서 열렸다. 행사에서 윤종하 MBK 부회장은 MBK의 홍보 영상과 글로벌 투자 포트폴리오를 소개했고, 장세환 대표는 영풍 석포제련소의 기술이 프로젝트 크루서블에 적용될 가능성 등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려아연은 도메인 등록과 행사 개최 과정에서 자사와 협의가 없었으며, 이 같은 명칭 사용과 행사 운영이 현지 관계자들에게 MBK·영풍 측을 프로젝트의 사업 주체 또는 고려아연과 공식적인 관계가 있는 주체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MBK·영풍 측은 프로젝트가 고려아연의 기업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미국 정부와 지역사회, 투자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최대주주로서 정당한 활동이라는 입장이다.
첫 번째 쟁점…‘크루서블’은 고려아연의 사업을 나타내는 이름인가?
고려아연이 적용을 주장하는 부정경쟁방지법에서 먼저 따져야 할 부분은 ‘프로젝트 크루서블’이라는 이름이 고려아연의 사업을 나타내는 영업표지로 보호받을 수 있을 정도로 알려져 있었는지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나목은 국내에 널리 인식된 다른 사람의 상호나 표장, 영업표지와 같거나 비슷한 표시를 사용해 소비자나 거래자가 영업 주체를 혼동하게 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표 등록 여부만이 아니다. 해당 명칭이 실제 거래자나 수요자 사이에서 특정 회사나 사업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는지도 함께 따진다.
법률상 이를 ‘주지성’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그 이름을 들었을 때 관련 거래자나 수요자가 특정 회사나 사업을 떠올릴 정도로 알려져 있었느냐’는 문제다.
대법원은 주지성을 판단할 때 국내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있을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다. 일정한 거래 지역이나 수요자 사이에서 특정 사업자의 영업표지로 알려져 있다면 사용 기간과 방법, 사용량, 거래 범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판단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번 사건에서는 이 ‘국내 인지도’가 중요한 관문이 될 수 있다. 논란이 된 도메인과 리셉션은 미국에서 사용됐지만, 해당 법 조항은 기본적으로 ‘국내에 널리 인식된’ 영업표지를 보호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사 과정에서는 프로젝트 크루서블이 미국 현지에서 어느 정도 알려졌는지뿐 아니라 국내 거래자나 관련 업계에서도 고려아연의 특정 사업을 나타내는 명칭으로 인식돼 있었는지가 함께 검토될 수 있다.
혼동 여부도 단순히 ‘고려아연과 MBK·영풍을 같은 회사로 착각했느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래자나 수요자가 양측 사이에 계열이나 제휴, 후원 등 일정한 경제적·조직적 관계가 있다고 받아들일 가능성도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 프로젝트 명칭의 인지도와 함께 테네시주 정부 관계자와 투자자, 지역 인사 등에게 배포된 초대장과 행사 자료가 고려아연과 MBK·영풍 측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했는지가 중요해진다.
두 번째 쟁점…도메인을 등록했다고 곧바로 위법한가?
‘crucibleTN.com’이라는 도메인을 등록했다는 사실만으로 위법 여부가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사업명과 같거나 유사한 단어가 들어간 인터넷 주소를 확보했더라도 어떤 목적으로 등록했는지, 실제 사이트를 어떻게 운영했는지, 이용자에게 어떤 정보를 전달했는지에 따라 법적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도메인 분쟁에서 자주 인용되는 대법원 2013년 4월 26일 선고 '2011다64836 판결'도 도메인 이름 하나만 보지 않고 대상 표지의 인지도와 도메인의 유사성, 등록자가 해당 표지를 알고 있었는지, 실제 웹사이트를 운영했는지,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서로 관련됐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놨다.
다만 이 판결은 인터넷주소자원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부정한 목적’을 다룬 민사 사건이기 때문에 이번 형사 고발 사건에 그대로 적용되는 판례는 아니다.
그럼에도 도메인 자체보다 ‘실제로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중요하게 본다는 점은 이번 사건에서도 참고할 부분이다.
경찰은 ‘crucibleTN.com’ 홈페이지가 실제로 어떤 내용을 제공했는지와 함께 초대장과 이메일에 행사 주최자가 어떻게 표시됐는지, 리셉션 발표 자료가 MBK·영풍 측과 고려아연, 프로젝트 사이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설명했는지 등을 살펴볼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 쟁점…업무방해는 왜 따로 따져야 하나?
고려아연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뿐 아니라 형법상 업무방해 혐의도 제기했다. 다만 두 혐의는 법에서 요구하는 조건이 서로 달라, 부정경쟁행위가 인정된다고 업무방해죄까지 자동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형법 제314조는 위계 또는 위력으로 다른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경우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판례에서 말하는 ‘위계’는 상대방에게 사실을 잘못 알게 하거나 착각하게 만든 뒤 이를 이용하는 행위 등을 뜻한다. 업무가 실제로 완전히 중단되지 않았더라도 구체적으로 업무가 방해될 위험이 발생했다면 업무방해죄 성립 여부가 문제 될 수 있다.
고려아연의 주장은 이 가운데 ‘위계’에 가깝다. MBK·영풍 측이 프로젝트 명칭을 이용한 도메인과 현지 행사를 운영하면서 미국 관계자들에게 사업 주체에 대한 오인을 일으켰고, 이 때문에 현지 인허가나 투자 유치 과정에서 혼선이나 차질이 생길 위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사기관은 프로젝트 명칭이 혼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표시나 설명 방식이 상대방에게 잘못된 인식을 줄 정도였는지와 그 결과 고려아연의 구체적인 업무가 방해됐거나 방해될 위험이 발생했는지를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비슷한 판례는 있지만 사건 내용은 다르다
부정경쟁방지법 위반과 업무방해 혐의가 한 사건에서 함께 다뤄진 대법원 판례는 있다. 다만 기존 사건들을 이번 고발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대법원 2019년 10월 31일 선고 '2017도13792 판결'에서는 영업비밀과 관련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과 업무방해 혐의가 함께 문제 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영업비밀 해당성 등에 관한 판단을 이유로 일부 유죄 부분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2022년 1월 14일 선고 '2017도16384 판결'에서도 유사한 영업표지 사용과 업무방해가 함께 다뤄졌다. 다만 업무방해 혐의는 유사한 영업표지를 사용했다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퇴사 전 회사 업무자료를 백업하지 않은 채 삭제·포맷하고 인수인계 없이 퇴사한 별도의 행위가 근거가 됐다.
두 판례가 보여주는 것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과 업무방해가 같은 사건에서 함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정도다. 비슷한 명칭이나 표지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업무방해까지 곧바로 인정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프로젝트 명칭 사용으로 혼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는지와 별개로, 상대방을 오인하게 할 만한 구체적인 행위가 있었는지, 그로 인해 고려아연의 업무가 방해될 위험까지 발생했는지를 각각 따져야 한다.
최대주주라면 어디까지 할 수 있나?
MBK·영풍 측이 내세우는 핵심 반론은 ‘최대주주’라는 지위다.
이들은 “고려아연은 모든 주주의 회사”라며 기업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 핵심광물 사업을 두고 미국 정부와 지역사회, 투자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최대주주로서 정당한 활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프로젝트 크루서블’이 고려아연만 사용할 수 있는 독점적인 등록상표가 아니며, 현지 리셉션에서도 행사 주최자를 명확하게 표시했다는 취지로 맞서고 있다.
다만 최대주주의 주주권과 회사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권한은 구분된다. 상법상 회사를 대외적으로 대표할 권한은 원칙적으로 대표이사에게 있고, 중요한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의사결정 영역에 속한다.
그렇다고 최대주주가 해외 투자자나 정부 관계자에게 회사 사업에 관한 의견을 밝히는 것 자체가 곧바로 위법해지는 것도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MBK·영풍 측이 프로젝트에 대해 발언했느냐 자체보다, 행사 참석자들에게 자신들의 지위와 고려아연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했는지다. 행사 자료와 실제 발언 내용이 최대주주로서 의견을 전달하는 자리라는 점을 명확하게 알렸는지, 아니면 참석자들이 MBK·영풍 측을 프로젝트의 공식 사업 주체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었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이름보다 ‘어떻게 사용했나’?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고려아연이 2025년 12월 15일 미국 테네시주에 통합제련소를 건설하기 위해 발표한 사업이다. 공시된 예상 투자 규모는 74억 3,200만 달러, 한화로 약 10조 9,000억 원 규모다.
MBK·영풍 측은 사업 발표 다음 날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서울중앙지법은 같은 달 24일 이를 기각했다. 고려아연은 올해 4월 미국 현지 니어스타USA 제련소와 관계사 인수를 마무리한 뒤 인수한 제련소의 명칭을 ‘크루서블 징크(Crucible Zinc)’로 변경했다.
이번 고발의 법적 쟁점은 결국 ‘크루서블’이라는 이름을 누가 먼저 사용했느냐에만 있지 않다.
부정경쟁방지법에서는 ‘프로젝트 크루서블’이 고려아연의 사업을 나타내는 영업표지로 국내에서 보호받을 만큼 알려져 있었는지, MBK·영풍 측이 이 명칭을 사용한 방식이 양측 사이에 공식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혼동하게 할 정도였는지가 핵심이다.
업무방해 혐의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이러한 표시나 설명으로 인해 고려아연의 미국 현지 인허가나 투자 유치 등 구체적인 업무가 실제로 방해됐거나 방해될 위험이 발생했는지를 별도로 따져야 한다.
따라서 경찰 수사에서는 ‘crucibleTN.com’이라는 도메인 이름 그 자체보다 초대장과 이메일, 웹사이트, 리셉션 발표 자료 등에 행사 주최자와 실제 사업 주체의 관계가 어떻게 표시돼 있었는지가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고려아연이 고발을 제기하고 MBK·영풍 측이 이를 반박하는 단계다. ‘프로젝트 크루서블’이 법적으로 보호되는 영업표지에 해당하는지, 명칭 사용 과정에서 사업 주체를 혼동하게 할 만한 행위가 있었는지, 그로 인해 고려아연 업무에 구체적인 방해 위험까지 발생했는지는 향후 수사를 통해 가려질 사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