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9,440억 원을 지급하라는 재산분할 파기환송심 판결에 불복해 재상고하면서, 2017년 시작된 두 사람의 법정 공방이 다시 대법원으로 향하게 됐다. 이혼과 위자료 20억 원은 이미 확정된 만큼 앞으로 대법원에서는 재산분할의 범위와 비율, 재산가액 산정 과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었는지가 핵심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1조 원에 가까운 재산을 둘러싼 재벌가의 이혼소송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받아왔지만, 법정에서 다뤄지는 문제는 단순한 재산 다툼보다 훨씬 복잡하다. 30년 넘게 이어진 혼인공동체에서 형성되고 증가한 재산을 누구의 기여로 볼 것인지가 법적 쟁점이라면, 그 출발점에는 최 회장이 스스로 공개한 혼외 관계와 그로 인해 깊어진 혼인 파탄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유교적 관점에서도 이 부분은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유교는 부부 관계를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인륜 가운데 하나로 바라봤으며, 이를 오늘날의 시각에서 해석한다면 과거의 가부장적 질서를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신의와 존중, 관계를 맺은 사람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묻는 문제로 볼 수 있다.
◇ 1988년 ‘세기의 결혼’…27년 뒤 공개된 혼외자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미국 시카고대 유학 시절 만나 1988년 9월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했다. 당시 재계와 정치권을 대표하는 두 집안이 혼인으로 연결됐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결혼은 ‘세기의 결혼’으로 불렸고, 이후 세 자녀를 두며 오랜 기간 혼인 관계를 이어갔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던 두 사람의 갈등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결혼 27년 만인 2015년 12월이었다. 최 회장은 한 일간지에 보낸 편지를 통해 노 관장과 오랫동안 원만하지 못한 관계였다고 밝히면서 혼외자의 존재와 이혼 의사를 함께 공개했다.
이후 최 회장은 2017년 7월 노 관장을 상대로 이혼 조정을 신청했고, 조정이 성립되지 않자 사건은 정식 재판으로 넘어갔다. 당초 이혼에 반대했던 노 관장도 2019년 12월 입장을 바꿔 이혼에 응하겠다며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반소를 제기하면서 두 사람의 다툼은 혼인 유지 여부에서 재산과 책임을 둘러싼 법정 공방으로 확대됐다.
여기서 혼외 관계와 재산분할을 하나의 문제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 법원은 배우자의 혼외 관계에 대한 제재 수단으로 재산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혼인 기간 두 사람이 공동재산을 형성하고 유지·증식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를 따져 재산분할 비율을 결정한다. 반면 혼인 관계가 깨진 과정에서 누구에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지는 위자료 판단을 통해 별도로 평가한다.
대법원이 2025년 판결에서 유책배우자에 대한 위자료를 정할 때 유책행위의 경위와 정도뿐 아니라 혼인관계 파탄의 원인과 책임, 배우자의 연령과 재산 상태, 파탄 이후 최종적인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구분에 따른 것이다.
◇ 1심 665억→2심 1조 3,808억…SK주식 판단이 갈랐다
2022년 12월 1심 재판부는 두 사람의 이혼을 인정하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 원과 재산분할금 665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다만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식에 대해서는 최 회장 고유재산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고 재산분할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했다.
항소심에서는 판단이 크게 달라졌다. 서울고법은 2024년 5월 위자료를 20억 원으로 높이는 동시에 재산분할금도 1조 3,808억 원으로 대폭 증액했으며, 무엇보다 1심에서 제외됐던 SK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하고 노 관장의 재산형성 기여도를 35%로 평가했다.
이 과정에서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측이 최종현 SK 선대회장 측에 전달했다고 본 300억 원도 중요한 판단 요소로 등장했다. 항소심은 해당 자금이 SK그룹 성장 과정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판단했고, 이를 노 관장 측의 재산형성 기여를 평가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로 반영했다.
이 판단은 결국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의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 대법원 “불법자금은 정당한 기여로 인정할 수 없다”
대법원은 2025년 10월 16일 항소심 판결 가운데 재산분할 부분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이 지원했다는 돈의 출처가 대통령 재직 중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는 점에 주목했다. 해당 돈이 실제로 가족에게 전달돼 재산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반사회성과 반윤리성이 현저한 자금 지원을 배우자의 정당한 재산형성 기여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재산이 실제로 늘어나는 데 어떤 자금이 사용됐는지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여를 법질서가 정당한 것으로 평가하고 보호할 수 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반면 최 회장이 다툰 위자료 20억 원 부분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의 이혼과 위자료는 대법원에서 확정됐고, 이후 파기환송심에서는 이미 끝난 혼인 관계의 책임이 아니라 두 사람이 혼인 기간 형성한 재산을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지가 다시 심리됐다.
◇ 비자금 빠졌는데 35%→33.3%…최태원 다시 불복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가사1부는 지난 7월 24일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9,440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환송 전 항소심이 인정했던 1조 3,808억 원보다 약 4,368억 원 줄어든 금액이지만, 1심의 665억 원과 비교하면 여전히 큰 차이를 보인다.
재판부는 대법원이 문제 삼은 노 전 대통령 측 300억 원을 노 관장의 기여도 산정에서 제외하면서도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식 자체는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했다. 혼인 기간 노 관장이 가사와 자녀 양육을 맡고 SK그룹 관련 대외활동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재산의 형성뿐 아니라 유지와 가치 증가에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은 재산분할 비율을 최 회장 3분의 2, 노 관장 3분의 1로 정했다. 환송 전 항소심에서 인정됐던 노 관장의 35%와 비교하면 약 1.7%포인트 낮아진 수준이다.
최 회장 측이 다시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게 된 배경에도 이 부분이 자리하고 있다. 대법원이 300억 원의 기여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명확하게 판단했음에도 노 관장의 분할비율은 35%에서 33.3%로 소폭 조정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주식 가격을 어느 시점에서 평가할 것인지도 다시 논쟁거리가 됐다. 파기환송심은 SK주식의 가액을 2026년 변론종결 시점이 아닌 2024년 4월 16일 환송 전 항소심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산정하면서도, 이후 SK주가가 크게 오른 사정은 공동재산을 공평하게 나누기 위한 분할비율 결정 과정에서 참작했다.
또 최 회장의 SK그룹 지배력과 경영권의 토대가 되는 주식을 직접 나누기보다 노 관장에게 지급해야 할 몫을 현금으로 정했다. 재산분할이 그룹의 지배구조 자체를 직접 변경하는 방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식의 취득 경위와 이용 상태, 경영권과의 관계 등을 함께 고려한 판단으로 볼 수 있다.
최 회장 측은 결국 지난 8월 14일 서울고법에 재상고장을 제출했다. 노 관장 측은 재상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이번 두 번째 대법원 심리는 최 회장 측의 불복으로 열리게 됐다.
최 회장 대리인단은 “여러 사정을 고려해 고심 끝에 상고장을 제출했다”며 “주주들과 그룹경영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자세로 향후 절차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 두 번째 대법원…9,440억보다 중요한 ‘공동체의 기여’
재상고심은 사실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살피는 재판이 아니라 파기환송심이 법리를 제대로 적용했는지를 판단하는 법률심이다. 구체적인 재상고 이유는 상고이유서가 제출된 뒤 더욱 분명해지겠지만, 노 관장의 분할비율을 3분의 1로 인정한 과정과 주식 가치 및 재산분할액을 산정하는 방식에 법리적 오류가 있었는지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번 소송이 던지는 질문은 9,440억 원이라는 거액의 재산분할금에만 머물지 않는다. 재산의 명의가 한쪽 배우자에게 집중돼 있더라도 수십 년 동안 다른 배우자가 가사와 양육을 담당하고, 사회적·대외적 활동을 지원하며 재산의 유지와 증가를 뒷받침했다면 그 기여를 재산분할에서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이 사건을 관통하는 법적 질문이다.
재산분할 제도가 단순히 등기나 주식 명의에 따라 재산의 주인을 가리는 절차가 아니라, 혼인공동체를 유지하는 동안 두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기여해 형성한 경제적 성과를 실질적으로 나누는 제도라는 점도 이 사건을 통해 다시 드러나고 있다.
◇ 유교가 묻는 또 하나의 책임…공적 성취와 사적 신의는 별개인가
법원이 재산분할과 위자료라는 법적 기준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정리하고 있다면, 유교적 관점에서는 여기에 또 하나의 질문을 더할 수 있다. 한 사회를 이끄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혼인 관계와 그 안에서 지켜야 할 책임을 어디까지 개인적인 사생활로만 볼 수 있느냐는 문제다.
유교의 오륜은 부부 관계를 부모와 자녀, 군주와 신하, 어른과 아이, 친구 사이의 관계와 함께 사회를 이루는 기본적인 인륜으로 보았다. ‘부부유별(夫婦有別)’ 역시 오늘날에는 남녀를 차별하거나 배우자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서로의 역할과 인격을 존중하면서 관계 속에서 요구되는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로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대학』에서 말하는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도 같은 맥락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게 한다. 자신을 바로 세우고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관계에서 책임을 다하는 일이 더 큰 공동체를 이끄는 자세와 전혀 별개의 영역일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최 회장의 혼외 관계는 유명 기업인의 사생활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평가의 영역에서 완전히 떼어놓기 어렵다. 국내 대표 기업집단을 이끄는 경영인에게 요구되는 신뢰는 법을 위반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고 자신의 선택이 주변 사람들에게 남긴 결과에 책임을 지는 태도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물론 유교적 가치를 들어 이미 파탄된 혼인을 무조건 유지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에게는 혼인을 선택할 자유뿐 아니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관계를 끝낼 자유도 있다. 다만 관계를 끝낼 자유와 그 과정에서 상대방과 가족에게 져야 할 책임은 서로 다른 문제다.
최 회장의 혼외 관계 역시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한 단어에만 머물기보다 배우자와 가족 사이에 형성돼 있던 신의와 약속이 어떻게 훼손됐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당사자가 어떻게 감당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유교적 관점에 더 가깝다.
법원은 이미 위자료 20억 원을 통해 혼인 파탄에 대한 법적 책임의 한 부분을 판단했고, 이제 재산분할 절차에서는 30년이 넘는 혼인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지고 유지된 경제적 성과 가운데 각각의 몫이 어디까지인지를 다시 계산하고 있다.
법적으로 위자료와 재산분할은 서로 다른 제도지만 유교의 시선에서 보면 두 문제의 바탕에는 결국 ‘책임’이라는 하나의 질문이 놓여 있다. 가정에서 요구되는 신의와 사회에서 요구되는 신뢰를 서로 다른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막대한 경제적 성취를 이룬 경영인의 성공을 재산과 기업가치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는 최태원·노소영 사건이 남기는 또 다른 화두다.
1988년 ‘세기의 결혼’으로 시작한 두 사람의 혼인 관계는 이미 법적으로 끝났다. 이제 대법원이 다시 판단해야 할 것은 9,440억 원의 재산분할과 그 산정 과정에 법리적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다.
그럼에도 이 사건을 통해 사회가 기억해야 할 것이 반드시 9,440억 원이라는 숫자일 필요는 없다. 재산의 가치는 법원이 금액으로 나누고 비율로 정할 수 있지만, 30년 넘게 이어진 혼인공동체에서 쌓이고 무너진 신뢰와 책임까지 숫자로 환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최태원·노소영 사건은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한 사람의 공적 성취를 평가할 때 그가 쌓아 올린 부와 기업의 규모만을 볼 것인지, 아니면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어떤 신의와 책임을 보여왔는지까지 함께 바라볼 것인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