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지키고 싶다”며 이혼에 반대해 온 스마일게이트 창업자 권혁빈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 겸 희망스튜디오 이사장에 대해 법원이 혼인 관계를 끝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3부는 지난 9일 권 이사장의 배우자 이 모 씨가 제기한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에서 이혼 청구를 인용했다. 이 씨가 2022년 11월 소송을 제기한 지 3년 10개월 만에 나온 1심 판결이다.
재판부는 권 이사장에게 스마일게이트 지주사인 스마일게이트홀딩스 주식 35%와 현금 650억원을 이 씨에게 지급하라고 명했다. 전체 재산분할 규모는 약 2조5500억원이다.
법원이 인정한 권 이사장의 순재산은 약 7조3375억원이다. 이 가운데 약 96.8%를 차지하는 스마일게이트홀딩스 주식 가치는 약 7조1049억원으로 평가됐다.
이 씨에게 분할되는 주식 35%의 가치는 약 2조4867억원이다. 재판부는 여기에 현금 650억원을 더해 전체 순재산의 35%가량을 분할하도록 했다. 현금 지급분에는 판결 다음 날부터 지연손해금이 붙는다.
이번 재산분할 규모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파기환송심에서 인정된 9440억원의 약 2.7배다. 공개된 국내 이혼소송 판결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평가된다.
◇ “이혼 거부 의사보다 혼인 관계의 실질 따져야”
이번 사건의 법적 쟁점은 배우자 한쪽이 이혼을 거부하는 상황에서도 법원이 혼인 관계의 파탄을 인정할 수 있는지였다.
민법 제840조 제6호는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를 재판상 이혼 사유로 정한다.
법원은 혼인 관계가 사실상 파탄됐는지를 판단할 때 부부가 겪은 갈등의 내용과 정도, 별거 기간, 관계 회복 가능성, 당사자들의 혼인 회복 노력 등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두 사람은 2020년 이 씨가 자녀 교육을 위해 싱가포르에 거주하면서 별거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2022년 11월 권 이사장이 가정에 소홀했다는 등의 이유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양측이 장기간 갈등을 겪은 경위와 별거 이후의 생활, 관계 회복 가능성 등을 검토한 결과 혼인 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됐다고 판단했다.
권 이사장이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더라도 그 의사만으로 혼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은 것이다.
대법원도 배우자가 말로 이혼에 반대한다는 주관적인 의사만으로 혼인계속 의사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혼인 생활과 소송 과정에서 나타난 언행, 관계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 등을 객관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 쌍방 책임 대등…이혼은 인용하고 위자료는 기각
우리 법원은 원칙적으로 혼인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스스로 만든 파탄을 이유로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를 따르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이혼을 청구한 사람은 배우자 이 씨다. 재판부는 혼인 파탄의 책임이 어느 한쪽에 집중됐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혼인 파탄의 책임은 원고와 피고 모두에게 있고 책임 정도도 대등하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 씨에게 혼인 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이혼 청구를 배척할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는 혼인 관계가 파탄되기만 하면 책임 여부와 관계없이 이혼을 허용하는 ‘파탄주의’를 전면적으로 적용한 판결과는 다르다. 법원이 쌍방의 책임 정도를 따진 뒤 민법 제840조 제6호의 재판상 이혼 사유가 성립한다고 판단한 결과다.
재판부는 이혼 청구는 받아들였지만 이 씨의 위자료 청구는 기각했다.
위자료는 혼인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에게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명하는 제도다. 양측의 책임이 대등하다면 권 이사장에게만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혼 성립 여부와 위자료 지급 여부가 별개의 법적 판단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권 이사장 측 대리인은 위자료 청구가 기각된 데 대해 “재판부도 권 창업자의 유책 사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권 이사장 측의 해석으로, 재판부는 양측의 책임이 대등하다고 판단했다.
◇ 회사 지분도 공동재산…배우자의 가사·양육 기여 인정
재산분할의 핵심 쟁점은 권 이사장이 보유한 스마일게이트홀딩스 주식을 부부 공동재산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권 이사장 측은 이 씨가 회사에 실제로 출자하거나 근무하지 않아 공동 창업자로 볼 수 없고, 회사 지분은 권 이사장 개인의 특유재산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씨가 2001년 권 이사장과 혼인했고 이듬해 스마일게이트가 설립된 점, 창업 당시 이 씨가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대표이사로 등재됐던 점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이 씨가 장기간 가사와 자녀 양육을 맡아 권 이사장의 경제활동과 회사 성장을 뒷받침한 점도 재산 형성·유지에 대한 기여로 인정했다.
배우자가 회사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가사와 양육을 통해 상대방의 경제활동을 지원했다면 기업 지분의 형성과 유지에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재산분할 법리가 적용된 것이다.
재판부는 전체 재산의 분할 비율을 권 이사장 65%, 이 씨 35%로 정했다.
◇ 현금 대신 주식 분할…권 이사장 지분 100%에서 65%로
재판부는 권 이사장이 재산분할금을 현금으로 마련하려면 보유 주식을 처분해야 하지만, 비상장주식이라 처분이 쉽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
권 이사장이 스마일게이트홀딩스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어 35%를 이 씨에게 넘기더라도 65%의 지분을 유지한다는 점도 현물 분할의 근거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권 이사장은 과반 지분을 보유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지분율이 65%로 낮아지면 정관 변경과 합병 등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필요한 사안을 혼자 결정하기는 어려워질 수 있다.
상법상 주주총회 특별결의는 출석 주주의 의결권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친권·양육자는 이 씨…월 2000만원 양육비
재판부는 자녀의 친권자와 양육자로 이 씨를 지정했다.
권 이사장에게는 자녀가 성년이 되기 전날까지 매월 2000만원의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재산분할과 별도로 자녀의 생활과 교육 여건을 고려한 결정이다.
스마일게이트는 선고 후 “대주주의 개인사에 대해 특별한 입장은 없다”며 “종전과 다름없이 본연의 사업과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씨 측은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권 이사장 측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1심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항소가 제기되면 이혼 사유와 재산분할 비율, 비상장주식 평가액, 현물 분할 방식 등이 항소심에서 다시 심리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