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5 (금)

  • 맑음동두천 23.1℃
  • 맑음강릉 23.0℃
  • 맑음서울 23.1℃
  • 맑음대전 23.5℃
  • 맑음대구 22.4℃
  • 맑음울산 17.6℃
  • 맑음광주 21.8℃
  • 맑음부산 18.2℃
  • 맑음고창 18.1℃
  • 맑음제주 19.3℃
  • 맑음강화 20.6℃
  • 맑음보은 19.5℃
  • 맑음금산 22.6℃
  • 맑음강진군 18.2℃
  • 맑음경주시 17.6℃
  • 맑음거제 15.9℃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특별기고] 머지않아 세계인의 밥상에 오를 기장미역

김차웅 기장향교 원임장의(수정)_사이즈 160.jpg

김차웅 기장향교 원임 장의, 수필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산물로, 역대 대통령 부부가 매년 설·추석 명절에 보내는 선물에도 종종 포함될 정도로 인기 있는 기장미역은 많은 이들이 맛을 칭송하지만 시원(始原)을 아는 이는 드물다.


기장미역의 전신(前身)은 조선시대에 화사을포(火士乙浦)라고 불리던 고리마을의 돌미역에서 시작되어 구한말까지 팔도강산 식객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이름은 화포미역이었다. 화사을포의 준말인 화포(火浦)는 그 이름처럼 ‘봉화대가 있던 포구’라는 뜻이다.


그러나 찬란했던 화포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라는 격랑 속에서 서서히 빛을 잃어갔는데 한반도에 진출한 일본인들이 경향 각지의 특산물을 조사하면서 인지도가 높은 행정구역명으로 통합해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기장미역, 기장붕장어, 기장갈치 등 화사을포리의 정체성을 담고 있던 화포미역이라는 고귀한 이름은 지명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깊숙이 묻히고 말았으니 이 고장 출신으로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고리마을의 지명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곳엔 고래가 있었다.


마을의 명소인 ‘고랫간’은 문자 그대로 고래들의 안마당이었는데 고래들이 드나드는 길목이다 보니 옛사람들이 그렇게 부른 것 같다. 기장의 향토지인 『구(舊)기장군향토지』(1992)는 고랫간을 고래의 이미지가 강한 고래개안이라 하였는데 이는 고리의 지명유래와 맞닿아 있어 주목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고랫간은 고래들의 천국이었다. 수면 위로 솟구치는 고래의 거대한 등덜미와 그들이 내뿜는 물줄기는 장관 그 자체였다.


왜 고래들이 유독 이곳으로 모여들었을까. 그것은 바로 바다의 숲인 미역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물길을 따라 일렁이는 미역 줄기들은 고래들에게 안락한 휴식처이자 풍요로운 먹잇감을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새끼를 낳은 고래가 미역을 뜯어 먹으며 몸을 추스른다는 옛이야기는 결코 허투루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고리와 고래, 미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운명공동체였을 것이다. 고래는 그 숲을 누볐고, 우리 조상들은 그 풍요를 빌려 삶을 이어왔다.


지금 고랫간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고래가 뛰어놀던 바다엔 원전이라는 거대한 문명의 시설이 들어섰고, 미역을 품던 병풍 같은 갯바위들은 대부분 건축자재에 의해 잠식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름 속에 박힌 역사의 무늬다. 비록 지금은 기장미역이라는 이름으로 식탁에 오르고 있지만 그 뿌리에는 화사을포의 파도 소리와 고래의 숨결이 서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피를 맑게 하고 산후조리에 좋다’는 미역의 중심에 부산 기장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의 기장미역을 있게 한 원천이자 바탕인 고리의 돌미역은 그 역사가 깊고도 깊다. 고리는 예부터 미역의 품질이 뛰어나기로 이름난 곳이었다.


그 가치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조선시대만 해도 고리마을이 왕실에 의해 엄격히 관리되었다.


이는 기장의 변두리에 있는 고리가 궁중에 속했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가 있으며, 고리의 돌미역이 국가적 차원의 보물이었음을 증명하는 역사적 인장(印章)이기도 하다. 왕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고리의 미역이야말로 오늘날 기장미역을 명품의 반열에 올린 진정한 뿌리인 셈이다.


이에 대해 문헌은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궁금하여 그 속으로 들어가 역사의 향내를 맡아 본다.


조선시대에 기장미역이 궁중에 진공(進貢)되었음은 잘 알려져 왔지만 미역밭, 즉 곽전(藿田)으로 인해 고리의 전신인 화사을포가 용동궁(龍洞宮, 조선 제13대 임금 명종(明宗, 재위 1545-1567)의 아들인 순회세자(順懷世子, 1551-1563)의 궁가(宮家)로 순회세자가 세상을 떠난 후 왕실의 내탕(內帑)을 담당하며 1909년까지 존속함)이라는 세자궁에 속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18세기 『기장현여지도(機張縣輿地圖)』를 보면 아이봉수대 밑에 ‘화사을포리용동궁속(火士乙浦里龍洞宮屬)’이라는 아홉 글자가 선명하게 표기되어 있어 고리가 예사로운 마을이 아님을 보여준다. 진공하던 마을은 전국에 많았으나 일개 마을, 그것도 천시받던 어촌이 궁중에 소속됨은 흔치 않았다.


고래가 새끼를 낳고 미역을 뜯어 먹으며 산후의 상처를 치유하는 걸 보고, 조상들이 산모에게 미역국을 먹이기 시작했다는 전설은 미역의 신비성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어린이 교양 잡지의 제호이기도 했던 『고래가 그랬어』의 진원지일 수도 있는 고랫간의 고래와 미역과의 관계를 보면 자연의 섭리에서 생존의 지혜를 읽어낸 조상들의 혜안이 오늘날 과학이 증명하는 미역의 청혈(清血)작용과 통해있어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나의 화두이지만 미역은 고래의 선물일까?

미역은 고래가 먼저 먹었고 그걸 보고 사람이 먹었다는 전설이 있고 보면 이의 의미는 크다.


지금은 K-푸드의 열풍 속에서 기장미역의 해외시장 진출에 대해 관심을 모아야 할 시점에 있다. 과거 왕실의 밥상에 오르던 기장미역이 이제는 전 세계인의 식탁을 겨냥하고 있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다.


기장미역의 지리적 표시제가 품질을 인증하는 행정적 장치라면 고지도의 기록은 그 품질이 수백 년 전부터 국가적으로 공인되었음을 알리는 역사적 보증서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할 때 역사적 스토리가 담긴 명품으로 완성되고, 세계화의 브랜드로서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나의 소원을 피력해 본다.

   

“화사을포리가 궁중에 속했다는 사실만은 반드시 역사, 사회 등의 교과서에 수록되어야 한다”

프로필 사진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