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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댈 곳 잃은 서울대 피해자들… 인권센터 ‘2차 가해·부실 조사’ 논란 도마 위 [기자수첩]

학내외 비판 확산… 〈서울대저널〉 연속 보도로 드러난 ‘문과식비’의 민낯

 

지성의 전당이자 우리 사회의 윤리적 기준을 제시해야 할 서울대학교가 심각한 인권 행정의 난맥상에 빠졌다. 학내 성폭력 및 인권침해 사건을 전담하는 서울대 인권센터가 도리어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입히고 있다는 내부 고발이 터져 나오면서다.

 

최근 학내 자치언론 〈서울대저널〉은 3회에 걸쳐 서울대 인권센터의 부실한 운영 실태를 심층 보도했다. 해당 매체의 보도 내용과 본지의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인권센터는 허술한 시스템과 인력 부족, 성인지 감수성 결여 등이 맞물리며 피해자 보호라는 본연의 취지를 상실한 ‘유명무실(有名無實)’한 기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신고서 통째로 유출되고 9개월 지연… 결국 사직서 쓴 피해자

 

가장 뼈아픈 대목은 인권센터의 허술한 절차가 피해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저널〉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자체 직원 A씨는 지난해 6월 동료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으나, 인권센터는 A씨가 제출한 증거가 모두 담긴 신고 내용 전체를 피신고인에게 그대로 송부했다.

 

심지어 피신고인이 이 신고서를 제3자에게 유출해 ‘내부 고발자’ 낙인이 찍히는 2차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인권센터는 “별도 사건으로 접수하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A씨는 해당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조사가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뭘 믿고 인권센터를 기다려야 하냐는 회의가 들었다”며 9개월간의 조사 지연 끝에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후 노동청과 근로복지공단마저 부실했던 인권센터의 결정문을 근거로 A씨의 피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계속되는 성비위 폭로… 징계 미뤄지는 사이 가해 교수는 ‘1천 명 대형 강의’

 

성비위 사건에 대한 인권센터의 안일한 대처와 지지부진한 조사도 드러났다. 피해자들의 활동 반경이 크게 제약되는 대학 사회의 특성상 ‘신속한 조사와 분리’는 생명과도 같다.

 

그런데 매체가 조명한 성폭력 피해자 F씨의 경우, 징계 절차가 한없이 지연되는 사이 가해 교수가 1천 명 규모의 초대형 강의를 맡아 강단에 서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F씨는 결국 스스로 자퇴원을 냈다.

 

또 다른 피해자 B씨의 사례에서도 조사가 늘어지는 사이 피신고인이 무사히 졸업을 마치는 등, 인권센터의 무능이 사실상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 피해자 입 막는 ‘비밀유지 의무’와 상처만 남긴 ‘심의위원회’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린 것은 제도의 모순과 심의위원회의 2차 가해성 발언들이다. 〈서울대저널〉은 인권센터가 추가 피해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강제한 ‘비밀 유지 서약’이 도리어 피해자가 외부에 도움을 청하거나 연대할 권리를 봉쇄하는 입막음용으로 악용됐다고 지적했다.

 

심의위원회 단계에서도 상처는 깊어졌다. 보도에 따르면, 심의위원들은 성폭력 피해자 B씨에게 “좁은 공간에서 접촉이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질문을 던졌다.

 

피해자 F씨 또한 매체를 통해 “정신 박탈하듯이... 자꾸 진술 틀리다고, 왜 말이 바뀌냐고 추궁해 너무 충격받아 옥상에 올라가기도 했다”고 토로할 만큼 심의 과정에서의 심각한 2차 가해 정황이 폭로됐다.

 

◇ ‘문과식비(文過飾非)’ 멈추고 시스템 전면 쇄신해야

 

본지는 지난 30일 자 기사를 통해 인권 행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로 잘못을 덮고 포장하는 ‘문과식비(文過飾非)’를 지적한 바 있다. 〈서울대저널〉의 연속 보도로 드러난 인권센터의 작금의 사태 역시, 인력 부족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행정 편의주의적으로 절차를 뭉개고 피해자의 호소를 외면해 온 구조적 병폐가 임계점에 달한 결과다.

 

인권센터는 사법기관이 아니라는 변명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피해자가 쥐어준 증거조차 지켜내지 못하고 2차 가해의 온상이 된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그 어떤 학내 구성원의 신뢰도 얻을 수 없다.

 

국회에서도 대학 인권센터의 재정 지원과 전문 인력 확충을 골자로 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발의되는 등 외부의 시선도 매섭다.

 

서울대는 학내 자치언론과 구성원들이 쏟아내는 고발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조사 및 심의 과정 전반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발본색원(拔本塞源)의 쇄신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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