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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두아 리파 소송이 묻는 상도… 초상은 장식물이 아니다 [기자수첩]

바나 화이트·펠레 이어 반복된 이미지 사용 논란… 글로벌 기업에 필요한 것은 기술보다 ‘예(禮)’다

 

미국 매장에 놓인 삼성전자 TV 포장 박스가 뜻밖의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박스에 인쇄된 가상 TV 화면 안에는 세계적 팝스타 두아 리파(Dua Lipa)의 얼굴이 들어가 있었다. 그가 직접 출연한 광고는 아니었다.

 

두아 리파 측은 현지시간 9일 미국 캘리포니아 중부 연방지방법원에 삼성전자를 상대로 1,500만 달러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버라이어티 등 외신은 두아 리파 측이 삼성전자의 사진 무단 사용과 초상권 침해, 란햄법 위반 등을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소장에 따르면 문제의 사진은 2024년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음악 페스티벌 ‘오스틴 시티 리미츠(ACL)’ 백스테이지에서 촬영된 이미지다. 두아 리파 측은 해당 사진의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삼성 측이 허락이나 보수 지급 없이 이를 TV 포장 박스에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이 단순한 ‘사진 한 장’의 문제가 아닌 이유는 사용 방식에 있다. 사진은 박스 한쪽 장식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TV 화면 시연 이미지 안에 배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소비자가 제품을 보는 순간, 두아 리파가 삼성 TV 콘텐츠나 광고와 관련된 인물처럼 받아들일 여지가 생긴다.

 

소장에는 X에 올라온 소비자 반응도 증거로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TV를 살 계획이 없었는데 박스를 보고 사기로 했다”, “두아 리파가 박스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TV를 사겠다”는 취지의 게시글이다. 두아 리파 측은 이를 근거로 일부 소비자가 그를 삼성 제품의 광고 모델 또는 보증인으로 오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법이 란햄법(Lanham Act)이다. 한국 독자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미국에서는 상표와 허위 광고, 오인 유발 행위를 다루는 핵심 법률이다. 특히 제43조(a)항은 소비자가 상품의 출처나 후원, 승인 관계를 오인하게 만드는 행위를 문제 삼는다.

 

유명인의 얼굴이나 정체성을 허락 없이 광고에 써서 “이 사람이 이 제품을 보증한다”는 인상을 주면, 단순 초상권 침해를 넘어 허위 보증(false endorsement) 문제가 된다. 두아 리파 측이 저작권 침해만이 아니라 란햄법 위반까지 주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무거운 대목은 삼성전자가 이와 비슷한 초상권 논란을 처음 겪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1992년 미국 제9순회항소법원은 ‘화이트 대 삼성전자’ 사건에서 삼성 광고가 인기 게임쇼 진행자 바나 화이트(Vanna White)의 정체성을 부당하게 연상시켰다고 판단했다.

 

당시 광고에는 바나 화이트의 실제 얼굴이 아니라 가발을 쓴 로봇이 등장했다. 법원은 초상권이 이름이나 얼굴의 직접 사용에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얼굴을 그대로 쓰지 않아도 특정인의 정체성을 상업적으로 떠올리게 만들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삼성은 이미 34년 전 미국 법정에서 이 기준을 경험했다.

 

2016년에는 브라질 축구 영웅 펠레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3,000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펠레 측은 삼성 광고에 자신과 닮은 인물이 등장해 정체성을 부당하게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도 문제의 광고는 TV 제품 광고였고, 초상권과 란햄법 문제가 함께 거론됐다.

 

바나 화이트, 펠레, 두아 리파. 세 사건은 시대도, 인물도, 매체도 다르다. 다만 공통점은 있다. 글로벌 셀러브리티의 정체성이 삼성의 상품 마케팅과 연결됐고, 당사자는 동의 없는 상업적 활용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이다.

 

논어에는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하지 않다(名不正則言不順)”고 했다. 이름과 얼굴은 한 사람의 정체성이다. 그것을 빌려 상품을 팔고자 한다면 먼저 허락을 구하는 것이 순서다. 유교에서 말하는 예(禮)는 거창한 의전이 아니라, 남의 것을 남의 것으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한다. 다만 이익을 얻는 방식에도 도리가 있다. 초상은 포장지를 꾸미는 장식물이 아니다. 명성은 공짜로 가져다 붙이는 판매 문구도 아니다. 글로벌 스타의 얼굴은 그 자체로 수년간 쌓인 노동과 신뢰, 시장 가치의 결과물이다.

 

삼성전자는 세계적 기술 기업이다. 그만큼 제품의 성능뿐 아니라 마케팅 윤리에서도 세계적 기준을 요구받는다. 법정에서 다툴 권리는 삼성에도 있다. 아직 법원의 판단이 내려진 것도 아니다. 다만 1992년 바나 화이트 사건 이후 30년 넘게 유사한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면, 이는 단순한 소송 리스크가 아니라 기업 내부의 상업적 감수성 문제로 봐야 한다.

 

맹자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의로움의 출발로 봤다. 기업에도 수오지심(羞惡之心)이 필요하다. 법적으로 이길 수 있는가와 별개로, 그렇게 해도 되는가를 묻는 마음이다.

 

두아 리파 소송의 결론은 앞으로 미국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다만 이번 사건이 던진 질문은 이미 분명하다. 글로벌 기업의 상도는 어디까지인가. 기술은 세계를 앞서가는데, 남의 이름과 얼굴을 대하는 예의는 그만큼 성숙했는가.

 

삼성전자가 답해야 할 것은 1,500만 달러의 손해배상 청구만이 아니다. 34년 전 바나 화이트 사건, 10년 전 펠레 사건, 그리고 오늘의 두아 리파 사건까지 이어지는 질문이다. 초상은 장식물이 아니며, 신뢰는 무단으로 인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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