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61년 5월 16일,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지 65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 새벽, 제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과 육군사관학교 8기 출신 주도 세력은 장교 250여 명, 사병 3500여 명을 이끌고 한강을 건넜다. 병력은 서울 주요 기관으로 진입했다. 육군본부와 중앙방송국, 치안국 등 국가 핵심 시설이 잇따라 장악됐다.
오전 5시 무렵, 서울중앙방송국을 통해 군사혁명위원회 명의의 발표가 나갔다. 쿠데타 세력은 행정·입법·사법 3권을 장악했다고 밝혔다. 장면 정부는 헌정 질서를 지키지 못한 채 무너졌다.
군사혁명위원회는 육군참모총장 장도영을 의장으로 내세웠다. 다만 실질적 주도자는 박정희였다. 이후 군사혁명위원회는 국가재건최고회의로 이름을 바꿨고, 군정 체제의 중심 기구가 됐다.
5·16은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지 1년여 만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시민의 힘으로 세운 제2공화국은 군부의 총구 앞에서 중단됐다. 의회정치와 정당 활동은 제약을 받았고, 한국 민주주의는 다시 긴 우회로에 들어섰다.
이 사건을 두고 공식 명칭은 ‘5·16 군사정변’으로 쓰인다. 역사적으로는 합법 정부를 무력으로 무너뜨린 쿠데타였다. 당시 세력은 이를 ‘혁명’이라 불렀지만, 민주적 절차와 헌법 질서의 관점에서는 정변이었다. 이름을 어떻게 부르느냐는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기준의 문제다.
공자는 『논어』 자로편에서 “명부정즉언불순, 언불순즉사불성(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이라 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하지 않고, 말이 순하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사의 이름을 바로 세우는 일은 과거를 꾸짖기 위한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의 민주주의가 무엇 위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5월 16일은 군부가 권력을 잡은 날이자, 시민이 되찾은 봄이 다시 꺾인 날이다. 65년이 지난 지금도 이 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민주주의는 한 번 얻었다고 영원히 보장되는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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