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 입지를 둘러싼 엇갈린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용인에서는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은 없다”고 강조하는 반면, 전북에서는 “삼성·SK의 AI반도체 공장을 새만금에 유치하겠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논란은 온라인에 확산된 한 유세 영상에서 비롯됐다. 영상에는 부승찬 민주당 의원이 현근택 용인시장 후보 지원 유세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관련해 “이전(?)은 정상 추진된다”는 취지로 발언하는 장면이 담겼다.
해당 장면이 단순한 말실수인지, 발언 맥락의 문제인지는 별도로 따져볼 대목이다. 다만 이 영상이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반도체 산업단지를 둘러싼 민주당 내부의 메시지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용인에서는 현근택 후보가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론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현 후보는 지난 5월 25일 이언주 의원 등과 함께 용인중앙시장에서 집중 유세를 벌이며 이전론을 “명백한 거짓 선동”으로 규정했다. 삼성전자 팹이 지방으로 이전되면 시장직에서 사퇴하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정부 쪽에서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추진 기조를 재확인하는 메시지가 나왔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5월 27일 SNS를 통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차질 없이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청와대도 지난 1월 11일 기업 이전을 검토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여권 일각의 이전론에 선을 그은 바 있다.
반면 전북과 호남 쪽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2025년 12월 26일 CBS 라디오에서 용인의 삼성·SK를 전기가 많은 호남으로 옮기는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안호영 민주당 의원도 2026년 1월 4일 삼성전자 이전 필요성을 주장했고, 전북도당에는 이전 추진 특별위원회까지 구성됐다.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전북지사 후보는 같은 달 27일 전북특별자치도의회 기자회견에서 ‘새만금 200조 유치’를 내걸었다. 이 후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AI반도체 공장을 새만금에 유치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결국 같은 당의 두 후보가 같은 선거 국면에서 같은 기업을 두고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용인에서는 “절대 못 옮긴다”고 하고, 전북에서는 “우리가 가져오겠다”고 한다. 유세장의 발언 논란보다 유권자를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 엇갈린 정치적 신호다.
물론 지역 후보가 지역 이익을 대변하는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전북 후보가 새만금 발전을 말하고, 용인 후보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지키겠다고 하는 것은 각자의 정치적 역할에 따른 주장일 수 있다. 청와대가 이미 기업 이전론에 선을 그은 만큼, 이를 곧바로 민주당의 공식 당론 변화로 해석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책임의 일관성이다. 집권여당이 국가 전략산업을 두고 지역마다 다른 신호를 내면 정책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반도체 클러스터는 단순한 지역 개발사업이 아니다. 국가 산업전략, 전력 공급, 용수, 도로·철도망, 인허가, 토지 보상, 기업 투자계획이 맞물린 대형 프로젝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을 정치의 구호 속에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반도체 공장 입지는 정치권이 선거 때마다 가져오고 보내는 대상이 아니다. 기업이 전력, 용수, 인력, 물류, 협력사 생태계, 글로벌 고객사와의 거리, 장기 투자 안정성을 종합해 결정해야 할 전략적 선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기업이다. 반도체는 수출, 고용, 투자, 세수, 첨단 제조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 기간산업이다. 특정 지역의 표를 얻기 위해 기업 입지를 정치적 흥정처럼 말하는 것은 산업정책이 아니라 산업 리스크를 키우는 일이다.
지금 반도체 산업은 최고의 성장세와 최대 위기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인공지능 확산으로 메모리와 첨단 반도체 수요는 커지고 있지만, 미국·중국·대만·일본·유럽이 모두 반도체 주도권 확보에 뛰어든 상황이다. 공급망 재편, 보조금 경쟁, 기술 패권, 전력 확보, 인재 쟁탈전까지 겹치며 한국 기업들은 국제 경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정치는 기업을 흔드는 쪽이 아니라 기업이 장기 투자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제도와 기반을 안정시키는 쪽에 서야 한다. 정치권이 선거 때마다 “옮기겠다”, “가져오겠다”, “막겠다”는 말만 반복하면 기업은 투자 안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산업은 예측 가능성 위에서 움직인다. 정치의 말 한마디가 기업의 투자 판단과 시장 신뢰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현실성도 따져봐야 한다. 전북의 전력 여건과 새만금 재생에너지 기반은 아직 계획과 구축 단계가 섞여 있다. ‘전기가 많은 새만금’이라는 전제 자체에 반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반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환경영향평가, 산단계획 승인, 토지 보상 등 행정 절차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다. 이 단계에서 이전을 말하는 것은 현실성보다 정치적 구호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면 호남의 ‘유치·이전’ 공약은 용인 시민에게는 불안을 주고, 호남 유권자에게는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기대를 심어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어느 쪽에도 책임 있는 정치라고 보기 어렵다.
민주당은 국민 앞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용인에서 “지키겠다”는 말과 전북에서 “가져오겠다”는 말이 동시에 진심일 수는 없다. 둘 중 하나가 지역 맞춤형 선거 구호라면, 그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정치의 신뢰는 말의 일관성에서 나온다. 표리부동(表裏不同), 겉과 속이 다른 말은 당장은 표가 될 수 있어도 결국 신뢰를 갉아먹는다. 더구나 그 대상이 국가 핵심 산업이라면 문제는 더 무겁다. 기업의 투자 결정과 산업 생태계는 선거 구호보다 훨씬 긴 시간을 두고 움직인다.
유세장의 발언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다. 다만 지역마다 갈리는 집권여당의 두 목소리는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민주당은 용인에서든 전북에서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입지 문제에 대해 하나의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정치가 산업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반도체 기업을 선거판의 지역 공약 소재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이 정치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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