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 작가의 대하소설 ‘장길산’ 해남 집필지를 둘러싼 지역 증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해남읍 수성리 일대가 주요 집필지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 금강골 해촌서원 인근 옛 부춘동 ‘부춘재’ 왕래 증언이 더해지면서 황 작가의 해남 체류 공간을 체계적으로 고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남군은 앞서 황석영 작가의 ‘장길산’ 집필지로 해남읍 수성5길 26 일대를 안내한 바 있다. 반면 지역 문인 천기철 작가는 실제 거처가 수성6길 13-2였다고 주장해 왔다.
천 작가는 “황석영 작가의 ‘장길산’ 집필지는 해남의 역사”라며 “고등학교 시절 자주 놀러 다녔던 곳으로, 당시 이 집은 ‘대위네 집’으로 불렸다”고 말한 바 있다. 이어 “황석영 선생이 1978년까지 약 2년간 이곳에 머물며 ‘장길산’을 집필한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수성리 집필지설에 더해 부춘재 왕래 증언도 제기됐다. 부춘재는 해남읍 해리 일대 옛 부춘동에 있는 공간으로, 금강골 해촌서원 인근에 있다. 해촌서원은 최부, 임억령, 유희춘, 윤구, 윤선도, 박백응 등 해남 6현을 배향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김문재 해남향교 전교는 지난 5월 24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1970년대 초 황석영 작가가 해남종합병원 설립자인 고 김재현 원장과의 친분으로 부춘재를 자주 찾았고, 왕래가 잦았다는 이야기가 지역 원로들 사이에서 전해져 왔다”고 말했다.
다만 부춘재에 실제로 기거했다는 점을 입증할 공적 기록이나 문헌 자료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부춘재 관련 증언은 집필지를 확정하는 근거라기보다, 황 작가가 해남 지역 인사들과 교류했던 정황을 보여주는 구전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지역에서는 수성리 거처설과 부춘재 왕래 증언이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나온다. 황 작가가 해남에 머무는 동안 여러 장소를 오가며 생활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수성리 거처가 정착기 집필 공간이었다면, 부춘재 왕래는 그 이전 또는 같은 시기 지역 인사들과의 교류 과정에서 형성된 기억일 수 있다.
황석영 작가가 해남에 머물며 ‘장길산’의 상당 부분을 구상하고 집필했다는 사실은 지역 문학사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황 작가는 시인 김남주 등 지역 문인들과 교류하며 농민·민중문화 운동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교는 “‘장길산’ 속 등장인물과 배경 일부는 당시 해남 지역 대지주들과 사회상을 모티브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고도 말했다. 다만 이 부분은 작품 해석의 영역인 만큼 작가 본인이나 관련 문헌을 통한 추가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번 논의는 단순히 한 작가의 체류지를 가리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해남이 품고 있는 문학적 기억을 어떻게 기록하고 보존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구전과 증언에 머물러 있는 내용을 문헌, 행정 기록, 당시 거주자와 지역 원로 증언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시대의 문학이 태어난 자리를 기록하는 일은 지역의 정신적 자산을 지키는 일과 맞닿아 있다. 옛 선비들이 사적을 문헌으로 남겨 후세에 전한 것도 같은 뜻이다. 기억은 말로 전해질 때 흐려지지만, 기록으로 남을 때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된다.
해남은 고산 윤선도와 시인 김남주, 소설가 황석영으로 이어지는 문학적 자산을 품은 고장이다. ‘장길산’ 집필 공간에 대한 논의 역시 어느 한 장소를 단정하는 차원을 넘어, 해남 문학사의 흐름을 정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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