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홈쇼핑이 공식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올린 국내 여행 홍보 콘텐츠에서 호남 지역을 외국에 빗댄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해 지역 비하(卑下)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콘텐츠는 지난달 21일 게시됐다가 비판이 제기되자 27일 삭제됐다.
논란은 같은달 26일 JTBC ‘사건반장’ 보도 이후 확산됐다. 문제가 된 콘텐츠는 충청·전라·경상·강원 4개 지역의 여행 명소를 소개하는 영상 시리즈 가운데 광주·담양권 구간이다. 유튜브 자막에는 “여권 챙기지 말고 숟갈 챙겨라잉”, 인스타그램 게시물에는 “전라도 여행 갈 땐 여권 대신 수저 챙기세요”라는 문구가 담겼다.
‘여권’이라는 단어는 일부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호남을 대한민국이 아닌 별도 국가처럼 빗대 조롱하는 방식으로 쓰여 온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을 같은 나라의 이웃이 아니라 국경 밖 대상으로 밀어내는 차별(差別)의 함의를 담고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단순한 여행 홍보 문구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020년에도 한 야구 해설위원이 비슷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사과한 전례가 있다.
회사 측은 본지 질의에 고의성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현대홈쇼핑 관계자는 “전국 4개도 출신 홈쇼핑 직원들이 출연해 본인의 고향 1박 2일 여행을 추천해 주는 유튜브 방송에서 전남도청 공식 블로그에 나와 있는 ‘[전남 여행] 여권 챙기지 마세요! 전남의 이국적인 해외 여행지 명소’ 문구를 참고해, 볼거리와 맛집이 많은 전라도가 있는데 고유가 시대에 해외에 갈 필요가 없다는 취지를 화면 문구로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방송 전체 맥락을 보더라도 해외에 가지 말고 우리나라 지역 명소를 많이 찾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본지가 전남도청 원문 게시물을 확인한 결과, 이 해명에는 빠진 대목이 있었다. 전남도청은 지난 2월 공식 블로그에 ‘[전남 여행] 여권 챙기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해당 글은 ‘해외인 듯, 해외 아닌, 해외 같은 전남 여행’이라는 취지로 “여권? 비행기 표? 환전? 필요 없어요!”, “가방만 챙기면 준비 끝!”이라고 소개했다. 강진 남미륵사, 여수 큰끝등대, 화순 무등산양떼목장, 담양 메타프로방스 등 이국적 분위기의 명소를 국내 여행지로 알리는 통상적인 관광 홍보였다.
정작 논란을 키운 표현은 도청 글에 없었다. ‘숟갈’, ‘수저’, ‘챙겨라잉’ 같은 문구는 도청 원문에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 현대홈쇼핑 콘텐츠가 새로 더한 표현이다. 이 과정에서 관광 홍보 문구는 지역을 희화화하는 듯한 상업 콘텐츠로 변질됐다. 도청 글을 참고했다는 설명만으로 회사의 책임이 가려지지 않는 까닭이다.
전남도청 관계자도 불쾌감을 드러냈다. 한 도청 관계자는 본지에 “기업이 자신들의 잘못을 덮고자 공공기관을 방패로 삼고 있는 것 아니냐”며 “도청 원문에는 논란이 된 표현들이 들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단순 인용 여부가 아니다. 공공기관의 홍보 문구가 민간 기업의 상업 콘텐츠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어떤 표현이 덧붙었고, 누가 이를 검수했느냐의 문제다. 회사 측은 자체 심의팀 운영을 강조했다. 다만 문제의 콘텐츠는 지난달 21일 게시된 뒤 보도가 나온 26일까지 엿새가량 노출됐다. 내부 점검에서 걸러지지 않았고, 삭제도 외부 지적 이후에야 이뤄졌다.
이번 논란은 최근 스타벅스 사례와 겹쳐 읽힌다. 스타벅스코리아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지난달 18일 텀블러 행사에 ‘탱크데이’,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썼다가 거센 반발을 샀다. 계엄군의 탱크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이었다. 신세계그룹은 자체 조사에서 이를 고의적 역사 폄훼가 아니라 사내 검수 시스템의 붕괴로 결론지었다. 단기 매출에 쫓겨 마케팅 콘텐츠를 쏟아내는 사이 내부 리스크 점검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사안의 뿌리는 같다. 기업이 지역과 역사를 마케팅 소재로 끌어다 쓰면서도, 그 표현이 누군가에게 어떤 상처가 될지 헤아리는 감수성(感受性)이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 소비되던 혐오(嫌惡)·희화화 표현이 어느새 대기업 공식 채널의 마케팅 문구로 올라오는 동안, 이를 걸러낼 눈은 작동하지 않았다.
사후 대응은 갈렸다. 신세계그룹은 정용진 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섰고,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와 담당 임원을 해임했다. 콘텐츠 검수 체계 재정비와 임직원 역사·윤리 교육도 약속했다. 늦었지만 책임의 무게를 인정한 셈이다.
반면 현대홈쇼핑은 본지 취재 시점까지 공식 사과 없이 고의성을 부인하는 해명에 머물렀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도청 글을 근거로 든 해명은 책임 회피에 가깝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대기업 공식 SNS 콘텐츠는 가벼운 농담이나 밈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 기업의 이름으로 게시되는 순간, 그 표현은 회사가 검토해 내보낸 공식 메시지가 된다. 지역·성별·세대·장애·역사와 관련된 표현이라면 더 엄격한 검토가 필요하다. 외주 제작 여부와 무관하게 공식 채널에 오른 이상 최종 책임은 기업에 있다.
논어에는 군자욕눌어언이민어행(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이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말은 신중히 하고 행동은 민첩히 한다는 뜻이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공식 채널에서 내보낸 말은 회사의 말이고, 그 말이 낳은 논란에는 회사가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한다.
콘텐츠 삭제는 최소한의 조치일 뿐이다. 남은 물음은 분명하다. 왜 원문에 없던 표현이 공식 채널에 추가됐는지, 검수에서 왜 걸러지지 않았는지, 상처받은 지역민과 소비자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사과할 것인지다. 현대홈쇼핑이 이번 일을 단순한 문구 오해로 덮을지, 콘텐츠 관리 체계를 다시 세우는 계기로 삼을지는 후속 조치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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