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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축배를 내리고, 목민(牧民)의 정명(正名)을 새길 때 [기자수첩]

 

6·3 지방선거는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방권력의 중심을 상당 부분 되찾으며 국정 운영의 동력을 확보했지만, 서울시장을 내주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전체 판세에서는 밀렸음에도 서울을 수성하며 완패의 수렁은 피했다. 유권자는 한쪽 손을 들어주면서도, 다른 쪽 손으로는 매서운 회초리를 쥐고 있었다. 바꾸라는 뜻은 분명했지만, 오만하게 독주하라는 허락은 아니었던 셈이다.

 

선거의 본질은 권력의 교체에 앞서 책임을 부여하는 엄숙한 의식이다. 당선자는 축하를 받을 사람이기 전에 무거운 책무를 짊어진 자이고, 낙선자는 패배의 쓴잔을 씹기 전에 민심의 행간을 다시 읽어야 할 자다. 승패의 숫자에만 매몰되어 그 이면에 담긴 대중의 기대와 불안, 지지와 경고를 놓친다면 그것은 정치의 본령을 저버리는 일이다.

 

예로부터 민심은 곧 천심이라 했다. 《서경(書經)》은 “하늘은 백성의 눈으로 보고, 백성의 귀로 듣는다(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고 일갈한다. 정치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상대 정당의 공세나 일시적 여론의 파고가 아니라, 묵묵히 지켜보는 백성의 서늘한 눈빛이다. 백성을 속이고 영속하는 권력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 민심은 기꺼이 권력을 쥐여주지만, 거만해지는 순간 언제든 그 권력을 회수할 수 있다는 엄정한 경고를 투표용지 한 장에 담아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거관리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논란은 뼈아프다. 투표용지 부족과 개표 지연 등 절차적 하자는 단순한 행정 착오로 치부할 수 없다. 《논어(論語)》 안연편의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은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뜻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절차의 신뢰가 흔들리면 결과의 권위도 무너진다. 선거관리 기관은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자세로, 무너진 국가 신뢰를 다시 세우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이제 한국 사회는 중대한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선거는 끝났고, 진짜 정치가 시작될 시간이다. 새로 선출된 단체장들은 정당의 승리에 취해 있을 여유가 없다. 당장 우리 삶의 터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현안들이 그들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국가적 미래가 걸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 주민과의 갈등 조율, 성남 상대원동 등 구도심 재개발을 둘러싼 원도심 거주민들의 눈물과 복잡한 이해관계의 해결은 결코 중앙의 화려한 정치 구호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이다. 시장은 시장다워야 하고, 구청장은 구청장다워야 한다는 ‘정명(正名)’의 가치는 바로 이런 갈등의 한복판,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지방정부는 중앙정치의 대리전 양상을 띠는 전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단체장은 정당인이기 전에 지역 주민의 삶을 책임지는 목민관(牧民官)이다. 다산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역설한 바는, 백성을 다스리는 얄팍한 기술이 아니라 백성을 두려워하고 섬기는 마음가짐이었다. 관청의 문턱을 낮추고, 현장의 신음 소리에 귀 기울이며, 공적 권한을 사사로이 쓰지 않는 것. 이것이 정치의 기본이자 전부다.

 

《서경》은 “가득 차면 덜어지고 겸손하면 더해진다(滿招損 謙受益)”고 했다. 이긴 쪽은 왜 이겼는지를 치열하게 묻고 몸을 한없이 낮춰야 하며, 진 쪽은 왜 졌는지를 뼈아프게 직시하고 스스로를 혁신해야 한다. 승리의 오만도, 패배의 분노도 지나치면 결국 민심을 잃는다.

 

누가 이겼느냐의 얄팍한 셈법은 이제 여의도의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선거판의 요란한 먼지가 가라앉은 지금, 단체장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전리품이 아니라 시민들이 내민 매서운 청구서다.

 

순자(荀子)는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화가 나면 배를 뒤집어버린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의 이치를 경고했다. 용인의 거친 흙먼지와 성남 원도심의 탄식을 외면한 채 또다시 중앙정치의 대리전에 몰두한다면, 이번에 쥐여준 권력은 언제든 그들을 향한 무자비한 심판의 칼날로 돌아올 것이다.

 

이제 정당의 색깔은 지우고, 오직 시민의 삶을 바꾸는 실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라. 민심의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한 권력에게 내일은 없다. 두려워하고, 또 두려워하며 일하라. 그것만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목민(牧民)의 진짜 정명(正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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