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전씨(旌善 全氏) 강릉종친회(회장 전명구)는 6월 15일 강릉시 옥천동 청기와 한정식당에서 강릉 지역 21개 성씨(姓氏) 종친회 모임인 강릉성씨회장단협의회(江陵姓氏會長團協議會) 6월 월례회를 개최했다.
강릉성씨회장단협의회는 정자화 영일 정씨(迎日 鄭氏) 강릉종친회장이 회장을 맡고 있으며, 강성회(江姓會)로 불린다. 강성회는 강릉 지역에 거주하는 각 성씨 종친회가 친목과 교류를 이어가기 위해 구성한 협의체다.
현재 강성회에는 강릉 김씨(江陵 金氏) 대종회, 강릉 최씨(江陵 崔氏) 충무공 대종회, 강릉 박씨(江陵 朴氏) 대종회, 강릉 최씨(江陵 崔氏) 대경공 대종회, 강릉 최씨(江陵 崔氏) 충제공 대종회, 삼척 심씨(三陟 沈氏) 대종회, 영해 이씨(寧海 李氏) 대종회, 황씨(黃氏) 강릉종친회, 동주 최씨(東州 崔氏) 대종회, 초계 정씨(草溪 鄭氏) 강릉종친회, 영일 정씨(迎日 鄭氏) 강릉종친회, 창녕 조씨(昌寧 曺氏) 강릉종친회, 안동 권씨(安東 權氏) 강릉종친회, 안성 이씨(安城 李氏) 영동종친회, 정선 전씨(旌善 全氏) 강릉종친회, 가락 김해 김씨(駕洛 金海 金氏) 강릉종친회, 은진 송씨(恩津 宋氏) 영동지구종친회, 양천 허씨(陽川 許氏) 강릉종친회, 남양 홍씨(南陽 洪氏) 강릉종친회, 밀양 박씨(密陽 朴氏) 강릉대종회, 강릉 함씨(江陵 咸氏) 대종회 등 21개 종친회가 참여하고 있다.
이날 월례회에는 정자화 강성회 회장과 김범수 가락 김해 김씨 부회장 겸 사무총장을 비롯해 강릉 지역 각 성씨 종친회 회장·부회장들이 참석했다. 6월 월례회 유사 종친회인 정선 전씨 강릉종친회에서는 전명구 회장, 전선집·전찬균 원로, 전유집 부회장, 전씨(全氏) 중앙종친회 전과웅 감사, 전남표 종보 편집국장 등이 함께했다. 참석자는 모두 20명이다.
회의는 김범수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참석 회원 상호 인사와 참석자 소개를 시작으로 회장 인사, 공지사항 전달, 정선 전씨 강릉종친회 참석 임원 소개, 전씨 내력 소개, 기타 토의, 오찬 순으로 이어졌다.
정자화 강성회 회장은 인사말에서 “먼 거리와 가까운 거리에서 오늘 강성회에 참석해 주신 강릉 지역 21개 성씨 종친회 회장과 부회장 여러분을 건강한 모습으로 뵙게 돼 매우 반갑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이어 “강성회는 강릉 지역 21개 성씨의 친목 단체로서 지역사회에 모범이 되고, 선조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자라나는 후세에게도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으자”고 강조했다.
이어 6월 월례회 유사 종친회인 정선 전씨 강릉종친회 전명구 회장이 참석 임원을 소개했다. 전 회장은 전선집·전찬균 원로, 전유집 부회장, 전씨 중앙종친회 전과웅 감사, 전남표 종보 편집국장을 차례로 소개하며 참석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후 전과웅 감사는 전씨(全氏)의 역사와 주요 인물을 설명했다. 전 감사는 전씨의 시조와 중시조, 삼국시대부터 고려·조선 시대에 이르는 활동, 강릉 지역 인물의 발자취를 중심으로 내력을 소개했다.
전 감사에 따르면 전씨의 시조는 백제 십제공신(百濟 十濟功臣)인 전섭(全聶)이다. 단소(壇所)는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 천장산(天藏山) 기슭에 있다. 중시조는 신라 시대 추부시랑을 지낸 전선(全愃)으로, 묘소는 정선군 남면 낙동리 서운산(瑞雲山) 기슭에 있다. 이곳은 8청룡 9백호의 대지(大地)로 알려져 있다.
전씨 성이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는지에 대한 고증도 함께 소개됐다. 구전(口傳)이 아닌 객관적 기록으로는 673년, 신라 문무왕 13년경으로 추정되는 금석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 명문(銘文)이 가장 이른 기록으로 전해진다.
문헌상으로는 989년, 고려 성종 8년 기록이 오래된 정사(正史) 기록으로 소개됐다. 당시 전보인은 나주목경학 박사(羅州牧經學博士)로서 후학을 근실히 가르친 공로로 포상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에는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의 속명이 ‘전견명’이라는 학설도 제기됐다. 군위군문화원이 발간한 책자에서 이를 밝히면서 공적 기관이 처음으로 인정한 사례로 언급됐다.
고려 시대에는 전씨 인물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왕건의 공산 동수 전투(公山 棟藪 戰鬪)에서 신숭겸 장군과 함께 전사한 전이갑 장군은 고려 개국공신 가운데 한 명으로, 대구 한천서원에 배향됐다.
관료와 학자로 활동한 전보인은 989년 숙유(宿儒), 곧 덕망 있는 선비로 존경받았다. 고려 시대는 전씨의 최전성기로 평가되며, 전윤장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전이도 예부시랑(禮部侍郞), 전보문 판삼사사(判三司事), 전보 판전의사사(判典儀寺事) 등이 주요 인물로 거론됐다.
조선 시대에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키며 은둔을 택한 인물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채미헌 전오륜은 고려 말 형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낸 학자였으나 조선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본관에 유배되는 형을 받고 정선 거칠현동으로 들어왔다.
고려 말 이조정랑을 지낸 성취옹 전인권은 강릉으로 들어와 은둔했다. 그는 경포호수 부근에 관심정 정자를 세우고, 중양가를 지어 널리 유포한 인물로 소개됐다.
조선 시대는 전씨의 침체기로 평가되지만, 이후 은둔에서 조금씩 벗어나 60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했다. 주요 인물로는 부제학과 대사간을 지낸 사서 전식, 대구에 성리학을 처음 전파한 계동 전경창, 형조참판을 지내고 유학자이자 의사로 활동한 전유형 등이 있다.
조선 시대 시호를 받은 인물로는 예조판서를 지낸 문평공 전백영, 성절사 정사(聖節使 正使)를 지낸 충간공 전식, 형조참판을 지낸 의민공 전유형이 소개됐다.
북방의 호걸로 불린 전백록도 주요 인물로 언급됐다. 전백록은 함경도 출신으로 지역 차별을 딛고 무신으로 최고 직책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경흥부사, 내금위장, 충청수사(水使) 등을 역임했다.
조선 말에는 유학자로서 의금부도사를 지낸 전병훈이 있다. 전병훈은 중국으로 망명해 활동하며 대학자로 추앙받았고, 우리나라에 서양철학을 처음 소개한 인물로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는 간송 전형필이 전 재산을 들여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에 놓인 문화재를 사들여 우리 문화재 보호에 앞장섰다. 간송미술관은 지금도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강릉 지방에서 활동한 전씨 인물에 대한 소개도 이어졌다. 1466년 강릉 지방 문사(文士)들이 결성한 금란반월회 창립 회원 16명 가운데 정선 전씨 인물 2명이 포함됐다. 훈도 전장손(全長孫)과 생원 전이(全彛)다.
정선 전씨 석릉군파 정랑공 강릉 문중 가승보는 1534년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 족보로 알려진 안동권씨 성화보(1476년)와 문화류씨 가정보(1562년) 사이에 작성된 자료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 시대 강릉 지역 과거급제자로는 평산부사를 지낸 전공간, 정선군수와 군자감정을 지낸 전순인이 소개됐다. 두 인물이 활동한 시기는 조선 초기로 어촌 심언광과 거의 같은 시기다.
최근 인물로는 전영진 장군, 전인석 아나운서, 배우 독고영재, 강릉향교 전교를 지낸 전찬택 등이 언급됐다.
전씨 내력 소개가 끝난 뒤에는 기타 토의가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각 성씨 종친회 행사에 서로 초청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회의 후 오찬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이날 오찬은 6월 월례회 유사 종친회인 정선 전씨 강릉종친회가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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