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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논술, ‘글솜씨’가 아닌 ‘독해력’이 당락 가른다 [전문가 칼럼]

주요 대학 채점 기준은 제시문 이해·논리 구조에 집중…공교육 내 문식성 훈련 강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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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논술을 준비하는 수험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논술의 본질을 오해한 채 잘못된 방향으로 시간을 쓰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입시 현장 전문가들은 “논술은 유려한 문장력을 겨루는 글쓰기 대회가 아니라, 주어진 제시문을 정확하게 읽고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는 독해력 평가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입시 현장에서 학부모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대체로 비슷하다. “아이가 책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지금부터 문장력을 키우면 논술에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반대로 독서량이 많고 어휘력이 풍부한 학생의 학부모는 논술 전형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경우도 많다.

 

한편 주요 대학 논술의 실제 채점 기준을 살펴보면 이러한 통념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논술 답안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한 표현이나 풍부한 배경지식이 아니다. 출제자가 제시한 텍스트의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했는지가 핵심이다. 잘 쓴 글보다 정확히 읽어낸 글이 합격에 가까운 셈이다.

 

◇ 독서량이 많아도 실패하는 이유

 

논술 지도 현장에서는 독서량이 많은 상위권 학생이 실전 논술에서 기대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유는 분명하다. 이들은 낯선 제시문을 마주했을 때 텍스트 자체의 논리를 분석하기보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배경지식을 앞세워 답안을 채우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대 사회의 불평등 현상에 대한 두 제시문을 비교하라는 문제가 나왔다고 가정해 보자. 일부 학생은 존 롤스의 정의론이나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끌어와 그럴듯한 문장을 만든다. 답안은 화려해 보일 수 있다. 문제는 정작 출제자가 요구한 두 제시문의 공통점과 차이점, 비교 기준이 빠진다는 데 있다.

 

대학 논술 채점위원은 수험생의 해박한 지식에 점수를 주지 않는다. 채점 기준표에 명시된 핵심 논리와 키워드가 답안에 정확하게 반영됐는지를 본다. 배경지식은 제시문 이해를 돕는 보조 수단일 뿐이다. 제시문을 벗어난 주관적 글쓰기는 오히려 감점 요인이 된다.

 

◇ 합격의 핵심은 문식성이다

 

논술에서 요구되는 핵심 역량은 문식성이다. 문식성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 능력이 아니다. 텍스트에 담긴 정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주어진 맥락에 맞게 재구성하는 논리적 역량을 뜻한다.

 

입시 논술의 제시문은 무작위로 배치되지 않는다. 출제위원들은 고교 교과 과정 안팎의 지문을 엮어 대립, 포섭, 인과, 상호 보완의 관계를 설계한다. 수험생은 그 관계를 읽어내야 한다. 따라서 논술의 출발점은 문장을 쓰는 손끝이 아니라, 제시문을 읽는 눈과 문제를 해석하는 태도에 있다.

 

고득점 답안은 대개 문제의 지시를 벗어나지 않는다. “[가]와 [나]를 비교하라”는 문제라면 비교 기준을 세워야 한다. “[다]를 바탕으로 평가하라”는 문제라면 [다]의 핵심 원리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묻는 말에만 정확히 답하는 태도가 감점을 줄인다.

 

◇ 논술은 ‘작업 지시서’를 따르는 시험

 

논술 논제는 수험생에게 주어진 엄격한 작업 지시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시험이 아니다. 출제자가 정한 조건 안에서 요구 사항을 충실히 수행하는 시험이다.

 

이 지점에서 논술은 단순한 입시 기술을 넘어선다. 제시문을 정확히 읽는 힘, 타인의 논리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태도,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판단을 구성하는 능력은 민주사회 시민에게도 필요한 기본 역량이다. 논술 교육의 공익성이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문식성 훈련이 학교 현장에서 충분히 체계화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어 수업 안에서 독해와 요약, 비교와 평가, 근거 중심 글쓰기 훈련이 이뤄질 수 있음에도 실제 입시 논술 준비는 상당 부분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논술 전형의 정보 격차와 교육 형평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 수치로도 확인되는 논술 전형의 현실

 

논술 전형은 일부 대학의 특수한 전형에 머무르지 않는다. 입시 자료에 따르면 2025학년도 논술전형은 전국 46개 대학에서 운영됐고, 모집 규모는 1만1266명 수준으로 정리됐다. 2026학년도에도 논술 전형은 이어지고 있다. 진학사 입시전략 자료는 2026학년도 논술고사를 실시하는 대학을 44개교로 정리했다.

 

수능 이전에 논술고사를 실시하는 대학도 적지 않다. 2026학년도 기준 수능 전 논술 실시 대학은 9개교로 정리된다. 이는 논술 준비가 수능 이후의 단기 대비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제시문 독해, 비교·분석, 요약·평가 능력은 평소 수업과 독서 과정에서 꾸준히 길러야 하는 역량이다.

 

결국 논술 전형의 규모와 일정은 한 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논술은 단순한 글쓰기 기술 시험이 아니다. 수험생이 고교 과정에서 쌓은 읽기 능력, 사고력, 표현력을 종합적으로 확인하는 평가다. 공교육이 문식성 훈련을 소홀히 할 경우, 그 빈틈은 사교육 시장이 채우게 된다. 이는 교육 격차를 더 키울 수 있다.

 

◇ 공교육 안에서 독해력 훈련 강화해야

 

논술 교육의 핵심은 세련된 문장 작법이나 답안 작성 요령이 아니다. 글을 정확히 읽고 깊이 사고하는 훈련이다. 이는 특정 학원에서만 배워야 할 기술이 아니라, 공교육 안에서 지속적으로 길러야 할 기초 학습 역량이다.

 

학교 교육이 문식성 훈련을 강화한다면 논술 전형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도 줄어들 수 있다. 학생들은 글을 잘 꾸미는 법보다, 텍스트를 정확히 읽고 질문에 맞게 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대입 논술뿐 아니라 대학 이후의 학업, 사회생활, 직업 세계에서도 계속 필요한 능력이다.

 

입시 논술의 본질은 결국 ‘잘 쓰는 기술’이 아니라 ‘바르게 읽는 힘’에 있다. 정확히 읽는 학생이 정확히 쓸 수 있다. 그리고 정확히 읽어낸 글만이 출제자의 질문에 도달한다.

 

바른 가르침은 아이의 오늘을 바꾸고, 그 아이의 내일을 바꾼다. 논술 교육도 이 본질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텍스트를 꿰뚫어 보는 독해력과 문제를 겸손하게 대하는 태도는 대학 합격을 넘어, 복잡한 사회를 살아갈 아이들의 가장 단단한 지적 자산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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