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번역하고 소개해 온 김정아 박사는 ‘도스토옙스키 전도사’로 잘 알려져 있다.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인문학자인 그는 최근 10년간의 고독한 번역 여정과 그 속에서 마주한 삶의 경이로움을 담은 에세이 『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를 출간하며 독자들에게 고전의 참된 가치를 전하고 있다.
김 박사는 도스토옙스키가 지독한 가난과 고통 속에서 깨달은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이야말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한다. 인간의 가장 어두운 심연까지 껴안았던 고전의 메시지는 불안과 이기주의가 판치는 현대의 육아 현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육아가 곧 인문학적 수행의 과정이라고 말하는 김 박사를 만나, 고전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흔들리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지혜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Q. 세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가 ‘인문학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직접 아이 셋을 키우며 살아보니 육아는 정말 인문학적인 과정이다. 요즘 많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불안해하고, 그 불안 때문에 아이를 끊임없이 푸시(Push)한다. 나는 그 부분에서 부모들이 먼저 반성해야 할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스토옙스키가 말하는 연민은 단순히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것을 의미한다. 육아 역시 아이의 삶과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모가 인문학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중심을 잡으면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펼치게 되어 있다. 부모가 아이의 길을 대신 정해주려 하기보다, 아이가 자기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는 일이 중요하다.
Q.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불안하지는 않았나?
진짜로 공부하라는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이미 오래 살았기 때문에 내 그릇의 크기를 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자신의 크기를 모른다. 아이들의 가능성은 우리가 인터뷰를 진행하는 이 방의 크기일 수도 있고, 전 세계의 크기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고작 눈에 보이는 그릇만 한 내가 아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세 아이를 키워보니 똑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어도 성향이 다 너무 다르다. 아이들 중에는 나중에 꽃을 피우는 ‘레이트 블루머(Late Bloomer)’도 있다. 그래서 부모가 믿고 기다려줘야 한다.
부모가 불안해하며 길을 제시하려 하기보다, 성실하고 착하게 사는 모범을 보이는 것 자체가 가장 큰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사랑을 주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Q. 불안해하는 부모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
부모는 아이에게 넓은 판을 짜주고, 그 안에서 아이가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놔둬야 한다.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고 사랑을 듬뿍 주면 아이는 언젠가 올바른 곳에 가 있다. 그리고 설령 남들이 말하는 성공의 자리에 가지 못하면 또 어떠한가.
우리 막내가 어느 날 누나들이 변호사로 잘 나가니까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나중에 붕어빵 장사가 되어도 나를 자랑스러워할 거야?”라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그렇게 말했다.
“네가 붕어빵밖에 못 만들어서 ‘내 인생 왜 이래’ 하고 한탄하면 부끄럽겠지만, 오늘은 이런 붕어빵을 만들고 내일은 저런 붕어빵을 만들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붕어빵을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면 엄마는 네가 너무 자랑스러울 거야. 엄마가 매일 그 가게로 디저트를 먹으러 갈게.”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다. 삶에 대한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Q. 잔소리 대신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꼭 해준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아이들이 자랄 때 학교 리딩 리스트, 그러니까 추천 도서 목록에 나오는 책들을 내가 다 읽었다. 아이들과 세대를 넘어 소통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책을 읽고 나면 아이에게 절대 먼저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이게 무슨 내용이야?”라고 물어봤다. 아이가 어릴 때는 말도 안 되게 중구난방으로 이야기한다. 그럴 때 “나는 이 캐릭터가 좋던데 왜 네 이야기에는 빠져 있어?” 하고 질문을 던져준다. 그러면 아이가 스스로 줄거리를 찾아가며 다시 설명하더라.
이게 쌓이니까 초등학교 3학년만 돼도 나보다 요약을 더 잘했다. 중·고등학교에 가서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책의 내용을 합해서 에세이를 너무나 잘 쓰게 됐다. 부모와 아이의 머릿속 일부분을 공유하기 위해 시작한 독서 커뮤니케이션이 아이에게 최고의 선물이 된 셈이다.
Q. 일상에서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삶의 철학은 무엇인가?
딱 세 가지다. 첫째,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너의 최고의 행복을 추구할 것. 둘째, 약간은 손해를 보면서 살 것. 내가 살아보니까 베푼 것은 돌고 돌아 결국 나에게 더 큰 행복으로 돌아오더라. 셋째, 대학 또는 대학원까지 공부를 마친 후에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독립할 것.
큰딸이 대학교를 졸업할 때 나에게 “엄마가 푸시하지 않는 엄마여서 너무 감사했다”고 말해줬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 내 교육의 목표는 자식의 인생에서 부모의 영향력이 0에 수렴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이 둥지를 떠나 마음껏 날아가게 해주되, 힘들거나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따뜻한 공간으로 남겨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도 인간에게는 자신이 돌아갈 수 있는 공간과,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그 존재, 그 공간 중 하나가 부모였으면 한다.
Q. 아이의 올바른 세계관 정립을 위해 학교와 치열하게 싸운 일화도 유명하다.
막내아들이 제주도의 한 국제학교에 다닐 때였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아이가 유기정학 이틀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이유는 너무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방학이 끝나고 제주도로 돌아가기 전에 나와 마지막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많은 집회가 있는 광화문 지역에서 32분간 카레를 먹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외국인 학교의 정학 기록은 죽는 날까지 영구적이다. 사춘기도 모르고 지나갈 정도로 순한 아이가 너무 억울해했다. 대학 신청을 목전에 두고 있어 더욱 황망했다. 아이에게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끝까지 싸우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네가 싸우겠다고 하면 엄마가 대신 싸워줄게” 하고 나섰다.
변호사인 아이 아빠를 포함해 주변 모두가 상대가 너무 크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나는 변호사 비용도 내가 낼 것이고, 아이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관심도 갖지 말고 묻지도 말라고 선언했다.
학교가 계속해서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해서 정말 힘겨운 싸움이었다. 내가 싸운 건 고작 이틀의 정학 처분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이의 올바른 세계관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상대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참아야 한다면, 앞으로 인생에서 마주할 수많은 부조리 앞에서 아이가 무서워서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당시 학교가 교육청에 낸 답변서의 번역 오류와 위증 문제를 번역가로서의 역량을 총동원해 하나하나 다 잡아냈다. 한국어로 된 학칙이 없어 그 학교 학칙 전체를 번역해가며 대응했고, 3년 만에 결국 3심까지 모두 이겼다.
아무리 상대가 거대해도 결국 정의가 이긴다는 것을 아이에게 몸소 보여준 것이다. 올바른 세계관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면 부모는 기꺼이 아이의 대리인이 되어 싸워야 한다. 부서진 세계관 안에서는 올바른 성인으로 자라기가 힘들다.
Q.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아날로그적인 만남과 대화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AI 시대가 오면서 사람들은 언어를 왜 배우느냐고 하지만,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할 때 전달되는 눈빛, 제스처, 어조 같은 비언어적 표현은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다. 인간 대 인간의 접촉이 중요해지는 시대일수록 깊이 있는 언어와 인문학적 소양이 힘을 발휘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하루에 수백 번씩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살을 맞대는 스킨십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나는 지금도 다 큰 아이들이 집에 와 있을 때는 “사랑해요”를 반복하고, 지나칠 때마다 머리든 어깨든 얼굴이든 쓰다듬고 보듬는다.
그리고 저녁 약속은 일절 하지 않고, 저녁에는 늘 집에 있었다. 부모가 늘 그 자리에 있어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안정감과 지지대가 되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가진 거대한 잠재력을 믿고, 부모의 작은 틀 안에 아이를 가두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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