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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칼럼】 ‘세상아, 니가 내게 맞춰라’…시혜를 넘어 선제적 투자가 권리와 미래의 행복으로

 

◇ 대한민국에서 장애 당사자로 산다는 것

 

세계는 대한민국을 선진국이라 부르고, 세상이 참 많이 좋아졌다고들 말한다. 빌딩숲은 화려해졌고 디지털 기술은 세계 최고를 달린다. 하지만 그 화려한 풍경 뒤에서, 여전히 누군가의 삶은 지독하게 고달프다. 바로 대한민국에서 장애 당사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여전히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없고, 하고 싶은 것은 으레 참아야만 하는 것. 그것이 2026년 오늘을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마주한 서글픈 현실이다.

 

필자의 삶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2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방위산업체에서 묵묵히 직장 생활을 했던 시기, 그리고 이른바 ‘장판(장애인 인권 운동 판)’에 들어와 장애인 활동가로 살아온 지난 10여 년의 세월이다. 

 

돌이켜보면 전자의 삶은 ‘세상에 나를 맞추며’ 숨죽여 살았던 시기였다면, 후자의 삶은 “세상아, 니가 내게 맞춰라!”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투쟁의 연속이었다. 


이 외침은 이기적인 요구가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선언이다. 수많은 장애 동지들의 피와 땀, 눈물 섞인 외침 덕분에 세상이 조금은 변했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장애 당사자들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가장 기본적인 이동권과 접근권을 부르짖고 있다.

 

◇  왜 우리는 여전히 거리 위에 있어야만 하는가?

 

배려와 시혜라는 ‘앙상한 논리’를 넘어 이제는 우리의 생각 자체를 통째로 바꿔야 한다. 국민적 의식과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아스팔트 위의 거친 투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의식의 전환’이란 명확하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시선을 ‘배려’나 ‘시혜’가 아닌 ‘권리’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장애를 단순히 개인이나 가족이 짊어져야 할 불행 혹은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회와 국가, 그리고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공적 영역의 과제다.

 

만약 이러한 기본적인 의식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정치는 또다시 차가운 ‘경제적 논리’와 ‘효율성’을 앞세워 사회 구조를 짜 맞출 것이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늘 뒤로 밀리고, 사건이 터지면 그제야 허겁지겁 구멍 난 곳을 메우는 소모적인 복지의 역사가 되풀이될 뿐이다. 맹목적인 사후 약방문식 복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  선제적 복지 투자가 바꾸는 미래, 초고령사회의 해법

 

이제 대한민국 복지는 ‘지출’이나 ‘비용’이 아닌, ‘선제적 투자’의 개념으로 패러다임을 대전환해야 한다. 장애인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저상버스를 늘리고, 휠체어가 문턱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도시의 물리적 장벽을 허무는 universal design(보편적 설계)은 단순히 장애인만을 위한 시혜적 조치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그 어떤 나라보다 빠르게 ‘초고속 노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오늘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겪는 장벽은, 내일 유모차를 이끄는 젊은 부모와 지팡이에 의지해 걸을 우리의 부모님,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노인이 될 우리 모두가 마주할 장벽이다.

 

처음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선제적 투자’는, 훗날 노령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막대한 의료비, 돌봄 비용, 사회적 단절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가장 지혜로운 경제적 해법이다. 사후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며 복지 예산을 쏟아붓는 악순환을 끊어내는 유일한 열쇠이기도 하다.

 

◇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마지막 다짐

 

“세상아, 니가 내게 맞춰라”라는 외침은 결국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상생의 제안이다. 장애인이 살기 좋은 도시는 노인도, 아이도, 그 어떤 약자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도시다.

 

아스팔트 위의 투쟁이 멈추는 날은, 국가가 시혜의 장부를 덮고 ‘선제적 투자’라는 미래의 문을 열 때 비로소 찾아올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선제적 복지 투자를 통해 다가올 초고령사회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예방하고, 모두가 존엄하게 공존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거리에 서서 끊임없이 외치는 이유이자, 이 사회에 던지는 엄중한 이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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