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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노동자 뒤에 선 정부 4400억 안전망…MBK 김병주 책임은 어디에? [기자수첩]

회생절차 폐지 뒤 고용·납품대금 불안 확산…‘국적 뒤의 책임’보다 먼저 봐야 할 민생의 비용

 

홈플러스 사태는 더 이상 한 대형 유통기업의 회생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회생절차 폐지 결정 이후 노동자는 일터를 걱정하고, 협력업체는 납품대금을 걱정한다. 정부는 협력업체 유동성 공급과 근로자 생계 안정을 위해 4400억원 규모의 안전망을 꺼내 들었다. 이 장면 앞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홈플러스를 인수했던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회장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정부의 4400억원 지원은 홈플러스 법인에 직접 투입되는 공적자금이 아니다. 회생절차 폐지로 발생할 수 있는 협력업체와 근로자 피해를 줄이기 위한 긴급경영안정자금, 특례보증, 생계비 융자, 임금체불 대지급금 등 안전망 성격의 지원이다. 그럼에도 이 지원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사모펀드가 인수한 대형 유통기업의 위기 뒤처리를 결국 정부 보증과 고용안전망이 떠받치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기업을 인수할 때는 시장의 논리를 앞세우고, 위기가 닥쳤을 때는 법률적 책임의 경계만 말한다면 노동자와 협력업체는 어디에 기대야 하는가. 이익을 낼 때는 자본의 자유를 말하고, 손실이 커질 때는 구조의 한계를 말한다면 그 비용은 결국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밀려난다. 지금 홈플러스 현장에서 벌어지는 불안은 바로 그 질문을 보여준다.

 

홈플러스는 단순한 투자 대상이 아니다. 전국 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납품업체와 협력업체, 입점업체, 물류·청소·보안 노동자, 지역 소비자가 얽힌 생활 기반 기업이다. 회생절차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불안에 빠지는 이들은 운용사나 대형 투자자가 아니다. 매장에서 월급을 기다리는 노동자, 납품대금 회수를 걱정하는 협력업체, 내일도 거래가 이어질지 모르는 입점업체다.

 

회생절차, DIP 금융, 상환전환우선주(RCPS), 펀드레이징 같은 말은 현장 노동자에게 낯설다. 하지만 그 결과는 곧바로 생계와 연결된다. 회사가 문을 닫을지, 임금이 제대로 지급될지, 거래가 이어질지가 이들에게는 가장 절박한 문제다. 기업 회생의 실패는 회계장부의 손실로만 끝나지 않는다. 한 가정의 생활비, 협력업체의 자금 흐름, 지역 상권의 소비까지 흔든다.

 

이 대목에서 MBK의 책임론이 나온다. 홈플러스 인수 이후 자산 매각과 차입금 부담, 투자 축소 논란은 꾸준히 따라붙었다. 직원들은 부동산 매각과 이자비용 부담 속에서 회사의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호소해 왔다. MBK 측은 투자자 이익 보호와 기업가치 보전을 위한 합리적 운용 판단이었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법적 다툼과 금융당국 절차에서 따질 부분은 따져야 한다. 문제는 사회적 시선이 그 설명만으로 충분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가 마련한 4400억원 규모 유동성 지원은 협력업체와 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방파제다. 협력업체에는 긴급경영안정자금과 특례보증 등을 통해 자금 숨통을 틔우고, 임금체불 피해 근로자에게는 대지급금과 생계비 융자를 지원한다. 실직자에게는 실업급여와 재취업 지원이 연계된다. 이 모든 장치는 위기의 충격이 민생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공적 안전망이다.

 

그럼에도 이 장면은 불편하다. 이익이 날 때는 사적 자본의 성과로 계산되고, 위기가 닥치자 충격은 협력업체와 노동자, 나아가 국민 부담으로 번지는 구조라면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홈플러스가 정상화되지 못할 경우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투자보고서의 숫자가 아니라 한 달 임금, 납품대금, 점포 주변 상권, 지역 고용이다. 그 빈틈을 메우는 장치가 결국 정부 지원이라면, 책임 있는 대주주와 운용사의 역할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연금 손실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라면 문제는 더 커진다. 국민연금의 홈플러스 관련 투자 손실 가능성이 수천억원대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 지원과 공적 보증까지 더해지면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기업 회생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노후자금과 세금, 노동자의 생계가 동시에 걸린 사회적 책임의 문제다. 손실 규모는 확정된 사안이 아니지만, 국민이 감당해야 할 부담의 방향만큼은 이미 선명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제재 절차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MBK에 대해 직무정지를 포함한 중징계안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쟁점은 홈플러스 투자 과정에서 RCPS 조건 변경이 출자자 이익과 내부통제 원칙에 부합했는지 여부다. 최종 판단은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 절차를 거쳐 확정될 사안이다.

 

이 사안은 단순한 금융기법의 적정성 논쟁에 머물지 않는다. 대형 사모펀드가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의 신뢰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 문제로 번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름 그대로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기관이다. 국민연금이 어떤 운용사에 자금을 맡기는지는 단순한 투자 판단이 아니다. 그 운용사가 법규를 지켰는지, 내부통제가 작동했는지, 투자 대상 기업의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국민의 돈이 국민의 삶을 흔드는 방식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

 

김병주 회장을 둘러싼 국적 논란도 결국 이 책임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 대목에서 한국 사회가 떠올리는 이름이 있다. 유승준이다. 재미교포 출신인 그는 국내 가요계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병역 의무 이행 여부를 둘러싼 관심이 높았던 시기, 그는 2002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고 이후 병역 회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부는 그의 입국을 제한했고, 유승준은 이후 여러 차례 비자 발급 거부 처분을 다투며 법정 공방을 이어왔다.

 

유승준 사안이 20년 넘게 한국 사회의 기억에 남은 이유는 단순히 한 연예인의 입국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대중이 그에게 물었던 것은 국적 선택 자체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명성과 경제적 이익을 얻은 사람이 공동체가 요구하는 의무 앞에서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병역은 대한민국 남성에게 민감한 의무이고, 그 의무를 둘러싼 신뢰가 무너졌다는 인식이 유승준 논란을 오래 끌고 온 배경이었다.

 

미국 시민권자인 김 회장에게 병역 문제를 묻자는 것이 아니다. 유승준 사례를 그대로 대입하자는 것도 아니다. 병역 문제와 기업 경영 문제는 법적 성격이 다르다. 그럼에도 유승준 논란이 남긴 질문은 자본 앞에서도 다시 제기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권리와 이익을 누린 주체가 위기의 순간 공동체의 부담과 책임 앞에서 어디에 서야 하느냐는 물음이다.

 

국적은 법률의 문제일 수 있다. 반면 책임은 공동체의 문제다. 한국 기업을 사고팔며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구조 안에서, 그 이익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납세 의무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법적으로 과세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설명과 별개로, 국민 정서가 묻는 것은 형식적 국적 뒤에 놓인 실질적 책임이다.

 

시민단체 금융감시센터는 과거 MBK파트너스의 오렌지라이프 인수·매각 수익과 관련해 김 회장의 국내 개인소득세 납부 문제를 제기하며 2020년 12월 역외탈세 의혹으로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MBK 측은 김 회장이 해외 국적자이고 국내 체류 요건상 납세 의무가 없다는 취지로 반박해 왔다. 이 사안은 아직 탈세가 사법적으로 확정된 문제가 아니다. 단정은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논란이 남기는 질문은 무겁다. 권리는 어디에서 누렸고, 의무는 어디에서 다했는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MBK는 영풍 측과 함께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에 나서며 장기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고려아연은 제련과 이차전지 소재 등 국가 전략산업과 연결된 기업이다. 이 분쟁의 옳고 그름은 주주총회와 법적 절차, 시장 판단을 통해 가려질 사안이다. 한편 국가 기간산업 성격을 가진 기업의 지배구조가 사모펀드의 투자 회수 전략과 맞물릴 때, 공공성과 장기 산업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유교는 이익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익 앞에 의로움을 세운다.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라는 말은 오늘의 금융자본에도 유효하다. 기업을 사고파는 일이 합법이라고 해서 그 모든 과정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도 사회적 책임은 남는다. 특히 노동자의 일터와 국민의 노후자금, 국가 전략산업이 걸린 사안이라면 더 그렇다.

 

논어 위정편은 “인이무신 부지기가야(人而無信 不知其可也)”라 했다.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자본이 신의를 잃으면 시장은 숫자로 움직일지 몰라도 사회는 버티기 어렵다. 신뢰 없는 자본은 결국 공동체의 비용으로 돌아온다.

 

홈플러스 사태의 결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금융위원회의 최종 제재 판단도 남아 있고, 홈플러스 회생절차의 향방도 지켜봐야 한다. 탈세 의혹 역시 확정된 사안이 아니며, 고려아연 분쟁도 법적·주주 절차가 진행 중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이 사안을 단순히 한 사모펀드의 투자 실패나 경영권 분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 뒤에는 일터를 잃을지 모르는 노동자, 거래대금을 걱정하는 협력업체, 국민의 노후자금을 맡긴 가입자, 국가 전략산업의 미래를 우려하는 시민이 있다. 여기에 정부의 유동성 지원과 고용안전망까지 작동하고 있다면, 이번 사태는 이미 민생의 문제이자 공적 책임의 문제다.

 

한국에서 얻은 이익 앞에 MBK 김병주 회장은 어떤 책임으로 답할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수익률의 언어가 아니라 민생과 노동자 앞에 서는 책임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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