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전 경기도의회에서 경기환경운동연합 주최로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을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 토론회가 열렸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을 둘러싼 재검토론이 시민·환경단체와 전문가 그룹을 중심으로 공개 제기된 자리였다.
눈여겨볼 대목은 문제 제기의 방향이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을 향한 비판은 보수 야당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진보 성향 시민사회와 환경단체, 반도체 전문가를 자처한 발제자들이 절차와 입지, 전력과 물 문제를 앞세워 재검토를 요구했다. 민주당이 집권 후 용인 반도체 산단을 둘러싼 압박이 오히려 진보 진영 안에서 터져 나온 셈이다.
발제에 나선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윤석열 정부 시절 추진된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지정 과정에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진상 조사와 전면 재검토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 대표는 2023년 3월 선정된 15개 국가산단 가운데 14개는 지방정부 요청과 전문가 서면검토, 현장실사, 종합평가 등을 거쳤지만 용인 산단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요청에 따라 결정됐다는 취지로 문제를 제기했다.
하 대표는 같은 해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공모 과정도 쟁점으로 들었다. 전남·광주가 ‘최고 수준’ 평가를 받고도 최종 선정에서 제외된 반면, 용인이 특화단지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산업단지 지정 과정에서 공업용수와 전력 공급 가능성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용인 국가산단을 두고 “실패한 대왕고래 사업을 뛰어넘은 의혹 사건”이라고 표현하며 직권 취소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이봉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는 입지 문제를 짚었다. 그는 반도체 팹이 국가 핵심 전략산업인 만큼 재해와 군사적 위험에 대비해 수도권 한 곳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글로벌 반도체 수요 기업과 장비 기업들이 RE100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 산업 분산이 헌법상 균형발전 가치에 부합한다는 점, 반도체 공장이 위험시설인 만큼 주거지와 떨어져야 한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용인 국가산단의 토지 매수와 전력·용수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이날 토론회가 던진 질문은 가볍지 않다. 용인 국가산단은 단순한 산업단지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반도체 경쟁력, 수도권 집중, 지역 균형발전, 전력망, 용수, 주민 수용성, 절차적 정당성이 한꺼번에 얽힌 사안이다. 어느 한쪽의 구호만으로 밀어붙이기에는 쟁점이 무겁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질문에 하나의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용인 반도체를 지키겠다”고 말한다. 중앙에서는 용인과 호남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한다. 시민사회에서는 재검토와 직권 취소까지 거론한다.
지역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지난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반도체를 “일자리이자 먹거리”로 규정하며 용인 국가산단 사수에 무게를 실었다. 당선 이후 꾸린 인수위에도 ‘반도체 초격차 전략 특별위원회’를 뒀다. 경기도민에게 용인 반도체는 지켜야 할 지역 미래라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대통령실과 중앙 정치권의 기류는 결이 다르다. 대통령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난달 관훈토론회에서 호남권 신규 클러스터를 “이전이 아닌 추가”라고 설명하며 균형발전 취지를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용인 산단의 전력·용수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해 왔고, 지난달 27일 사회관계망서비스 엑스(X)에 “2023년 반도체 특화단지 공모에서 전남·광주는 이미 ‘최고 점수’ 평가”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대통령이 직접 절차적 논란의 한 축을 환기한 것이다.
이쯤 되면 경기도민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지키겠다는 것인가, 조정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호남권 신규 클러스터와 병행하겠다는 것인가. 병행이 가능하다면 전력과 물은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 병행이 어렵다면 어느 쪽을 우선할 것인가. 재검토가 필요하다면 지방선거 과정 경기도 지역 출마 후보들이, 왜 ‘사수’를 공약했는가?
각각의 주장에는 명분이 있다. 경기도는 지역경제와 일자리, 국가 반도체 경쟁력을 말한다. 비수도권은 균형발전과 산업 분산을 요구한다. 시민·환경단체는 절차적 정당성과 전력·물 문제를 따진다. 대통령실은 국가 전체의 산업 배치와 인프라 부담을 함께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어느 하나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여러 명분을 나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서로 충돌하는 명분을 정책의 언어로 정리하고, 선택의 기준을 국민 앞에 밝히는 것이 민주당 집권 여당의 책임이다. 경기도민에게는 “지킨다”고 말하고, 호남에는 “추가 조성”을 말하며, 시민사회에는 “재검토”의 여지를 남기는 방식은 오래 갈 수 없다.
국가산단은 선거 구호가 아니다. 산업, 전력, 물, 주민 수용성, 재정 부담이 얽힌 국가 정책이다. “사수”와 “동시 추진”과 “재검토”가 동시에 반복되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부딪치는 약속은 결국 어느 하나도 온전히 지켜지기 어렵다.
가장 어정쩡한 자리에 경기도가 있다. 용인 국가산단 사수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추미애 경기도지사라면, 중앙의 동시 추진론과 시민사회의 재검토 압박, 전력·용수라는 실체적 난제 앞에서 경기도의 입장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지난 8일 토론회는 경기도와 민주당이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을 다시 꺼냈다. 전력망 구축은 가능한가. 용수 확보는 지속 가능한가. 국가산단 지정 과정의 절차적 논란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호남권 신규 클러스터와 용인 국가산단은 실제로 병행 가능한가. 이 질문들에 답하지 않은 채 “용인은 사수”, “호남은 추가”, “문제는 검토”라는 식의 말만 반복한다면 정책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자로편(子路篇)에서 정치의 우선순위를 묻는 제자 자로에게 “반드시 이름을 바로 세우겠다(必也正名乎)”고 답했다. 이름과 실질이 어긋나면 말이 서지 않고, 말이 서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치의 말은 결국 정책의 책임으로 이어져야 한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을 지킬 것인가, 조정할 것인가, 다른 지역과 병행할 것인가. 민주당은 청중과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메시지를 멈추고 하나의 책임 있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 답이 사수라면 전력과 용수의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 답이 조정이라면 경기도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 답이 병행이라면 실현 가능한 근거를 내놓아야 한다.
말은 이미 충분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책임 있는 하나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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