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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갤러리, 특별한 깨달음의 순간 사진 <고은포토1826 기획전 ‘에피파니’> 전시

지극히 평범하고 매일 사용하는 사물, 어떤 의도 없이 편안하게 나누는 대화, 혹은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순간에 정말 예고 없이 찾아온 '본질이나 근본에 대한 깨달음'을 느껴본 아주 귀한 경험이 있는가요? 모든 예술가가 그러하듯이 사진작가도 평소에는 아무 의미 없던 풍경이나 대상이, 어느 한순간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다가와 영혼이나 내면에 영감과 깨달음의 문을 열어준다.

 

정금희 사진작가가 기획하고 6명의 작가가 깨달음 혹은 영감을 받은 순간을 작품에 담은 고은포토1826 기획전 ‘에피파니: 드러나지 않은 떨림’이 7월 21일부터 8월 6일까지 부산 괴정동의 부산갤러리(관장 김승일)에서 열린다. 더위와 씨름하면서 땀을 흘리며 갤러리를 찾은 관객은 느닷없이 어느 사진 앞에서 몸이 굳어버릴지도 모른다. 특정 작품 앞에서 ‘에피파니’를 체득할 수 있다.

 

에피파니(Epiphany)는 그리스어 ‘에피파네이아(epiphaneia)’에서 유래한 말로, ‘드러남’ 혹은 ‘현현’을 뜻하는데, 종교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신학, 문학에서는 20세기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작품에 드러나 있다.

 

사진에서 에피파니는 작가의 영감이 대상의 표면을 투과하여 그 너머의 의미를 감지하고, 일상의 장면 속에서 숨겨진 존재의 층위가 작가 자신에게 드러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평소에는 감지되지 않던 그 ‘드러나지 않은 떨림’이 작가의 시선과 맞닿는 찰나, 피사체는 비로소 침묵을 깨고 자신을 드러낸다. 우리는 그 경이로운 마주침을 사진적 ‘에피파니’라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 에피파니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강위찬의 〈B컷〉은 정제된 결과물의 이면에 숨겨진, 통제되지 않은 ‘우연의 파편’ 속에서 예기치 못한 정서의 흔적을 발견하는 여정이다. 선택받지 못한 사진들에 남겨진 상상과 애절함은, 완결되지 못한 순간들이 오히려 더 깊은 정서를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버려진 이미지들의 틈새를 응시하며, 완벽하게 구획된 프레임 밖으로 새어 나오는 세계의 내밀한 표정을 포착한다.

 

 

김현숙의 〈시간의 지문〉은 낡은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사물과 공간이 소멸하며 남긴 시간의 잔열을 응시한다. 누군가의 시선과 기억이 겹겹이 퇴적된 낡은 카메라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세계가 된다. 유리 위의 먼지와 희미한 격자선은 풍경을 가리는 결함이 아니라 시간이 남긴 다정한 흔적이 되며, 뷰파인더에 맺힌 부연 이미지는 사라져가는 것들의 미세한 온기를 드러낸다.

 

 

노태욱의 <Eye_Phone>은 지난 10년의 작업 궤적(해운대→허깨비들→#다녀왔어요)이 ‘기기를 든 손’이라는 하나의 장면 안에 응축된 작업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미지를 기록하지만, 정작 자신의 감각과는 점점 멀어진다. 작가는 가상과 현실 사이를 부유하는 시선들을 붙들어 세우며, 기술의 프레임 너머로 밀려난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독을 조용히 드러낸다.

 

 

이둘점의 〈다시 태어나려고 해〉는 어머니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는 개인적 상흔을 통해 ‘모든 생명은 우주의 미립자가 결합하여 이룬 경이로운 재회’라는 과학적 상상력으로 승화시킨다. 시아노타입(Cyanotype)의 푸른 빛은 생과 사의 경계가 흐려지는 심연의 공간을 상징하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자수의 궤적은 다시 태어나기 위해 우주가 움직이는 미세한 진동처럼 번져간다. 작업은 슬픔을 건너 존재들이 서로 다른 형태로 다시 이어지는 순환의 감각을 섬세하게 환기한다.

 

 

최상식의 〈연약하게 떠다니는〉은 디지털 환경 속을 부유하는 비물질적 이미지를 ‘폴라로이드 유제 전사(emulsion lift)’라는 물리적 행위를 통해 다시 붙잡아낸다. 이미지의 얇은 막을 분리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은 단순한 기술적 실험이 아니라, 복제와 소비 속에서 희미해진 이미지의 감각을 복원하려는 수행에 가깝다. 작가는 가상의 흔들림을 다시 물질의 표면 위에 안착시키며, 디지털 시대 이미지가 잃어버린 촉각성과 존재의 밀도를 새롭게 환기한다.

 

 

한미숙의 〈침묵의 수평선-Still Sea〉는 장노출을 통해 파도의 요동과 소리를 지워내고, 그 자리에 남겨진 고요의 질감을 포착한다. 작가는 채움보다 비움을 통해 풍경의 깊은 층위에 다가가며, 수평선 위 구조물의 희미한 흔적들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시간의 흐름이 제거된 바다는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응시하게 만드는 사유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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