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정의 출발점인 제헌국회의 활동과 정부 수립 초기 정치사를 보여주는 기록물 539점이 국회기록원으로 이관됐다. 제헌회관에 흩어져 있던 기록들이 국회가 보관해 온 제헌국회 속기록과 78년 만에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국회기록원은 제78주년 제헌절을 맞아 제헌국회의원유족회의 협조를 받아 제헌회관에 보관돼 있던 제헌국회 관련 기록물 539점을 수집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확보된 기록물은 제헌국회의원들이 남긴 사진과 문서, 친필 자료 등으로 구성됐다.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가 태동하던 시기의 정치적 고민과 제헌의원들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주요 기록물에는 송봉해 제헌국회의원의 친필 진언서와 1948년 5월 촬영된 제헌국회의원 기념사진, 1974년 발간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정원문서』 등이 포함됐다.
광복 이후 미군정 시기 군정장관을 지낸 굿펠로의 송별기념 사진과 1960년 서울특별시장·도지사 선거 당시 민주당 공천후보자추천회의 보고 문서 양식, 제헌국회의원동지회 초대 회장을 지낸 이인 의원의 사진을 비롯한 제헌의원 사진 20여 점도 수집됐다.
정치사적으로 주목되는 기록은 송봉해 의원이 1964년 1월 국회에 제출한 17장 분량의 친필 진언서다. 송 의원은 전남 해남군 갑 지역을 대표한 제헌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진언서에는 1965년 한일협정 체결을 앞두고 진행된 한일회담과 대일 청구권 협상에 대한 송 의원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송 의원은 일본에 정당한 청구권을 충분히 요구하지 않은 채 무상원조와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데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적국에게 원조를 받는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라는 문장은 당시 한일협정을 둘러싼 정치권과 사회의 논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식민지배 책임과 피해 배상, 경제협력을 어떤 관점에서 다뤄야 하는지를 놓고 벌어진 시대적 갈등이 친필 문서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번 수집은 제헌국회의 기록을 단순히 과거의 유물로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제헌의원들이 국가의 기틀을 세우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를 고민했고, 당시 정치권이 외교·선거·민주주의 제도를 놓고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를 국민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제헌회관은 제헌국회의원들이 생존 당시 사무실과 교류 공간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2016년 개보수를 거쳐 현재는 제헌국회의 역사와 업적을 소개하는 제헌국회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옥 형태를 간직한 제헌회관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출발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국회기록원은 확보한 기록물에 대한 상태 점검과 보존처리를 진행한 뒤 디지털화할 계획이다. 정리 작업이 완료되면 국민과 연구자들이 기록물을 열람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고, 국회와 제헌 역사 관련 전시·교육 프로그램에도 활용할 방침이다.
곽건홍 국회기록원장은 “대한민국 헌정의 출발을 상징하는 제헌회관에서 오랫동안 보관돼 온 기록을 수집하게 돼 뜻깊다”며 “이번 기록물은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증언하는 소중한 기록유산”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의정활동 기록물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안전하게 보존해 국민 누구나 대한민국 헌정의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기록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역사는 기록을 통해 기억되고, 기록은 현재의 정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로 제헌의원들의 고민과 선택을 돌아보는 일은 오늘날 국회가 국민의 신뢰와 헌법적 책임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묻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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