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스시 오마카세 시장이 화려한 식재료와 시각적 연출을 앞세운 경쟁에서 벗어나 재료의 본질과 기본기를 다시 들여다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청담동 스시 오마카세 ‘하시라’를 이끄는 윤주환 셰프는 전복과 안키모, 제철 어패류의 개성을 과하게 변형하지 않고 숙성 정도와 샤리의 온도, 산미, 식감을 조율하는 방식에서 자신의 요리 방향을 찾고 있다.
최근 닛카 위스키와 진행한 페어링 세션을 계기로 윤 셰프를 만나 도쿄에서 배운 에도마에 스시의 기본과 서울 일식의 변화, 하시라가 추구하는 요리의 방향을 들었다.
Q. 도쿄 스시 카네사카에서 7년을 보냈다. 그 시간이 지금의 요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에도마에 스시는 기술보다 태도를 먼저 배우는 곳입니다. 재료를 어떻게 다루고, 어떤 순서로 손을 쓰는지, 그 기본기를 몸에 익히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도 그때 배운 태도가 요리의 기준이 됩니다”
에도마에 스시는 냉장·운송 기술이 발달하기 전 생선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절이거나 숙성하고, 간장에 담그거나 익혀 사용하는 방식에서 출발했다. 오늘날에는 단순한 보존 기술을 넘어 재료의 수분과 감칠맛, 식감이 가장 적절한 상태에 이르도록 조절하는 조리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윤 셰프가 도쿄에서 배운 것도 특정 조리법 하나가 아니었다. 칼을 쓰는 순서와 재료를 만지는 시간, 샤리를 쥐는 힘, 손님에게 음식을 내는 흐름을 반복하며 몸에 익힌 태도였다.
최근 서울에서는 일본 현지 스시야와 가이세키 업장에서 수련한 뒤 독립 업장을 여는 셰프들이 늘고 있다. 일본에서 배운 조리법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국내 식재료와 손님의 취향에 맞춰 다시 구성하는 흐름이다.
Q. 하시라의 코스는 숙성회와 츠마미, 니기리로 이어진다. 재료를 다루는 원칙이 있다면?
“전복이나 안키모, 제철 어패류를 다룰 때 원물의 개성을 과하게 변형하지 않으려 합니다. 샤리의 온도와 산미, 식감을 조율하는 것도 결국 네타의 풍미를 자연스럽게 살리기 위한 과정이에요. 화려한 기교보다 재료의 본질과 균형에 집중하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일식의 출발점입니다”
하시라의 코스는 숙성회와 술안주 성격의 츠마미, 초밥인 니기리 순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구성을 따른다. 코스의 순서를 크게 변형하기보다 각 재료의 숙성 상태와 샤리의 온도, 산미를 조절해 차이를 만드는 방식이다.
스시에서 ‘네타’가 밥 위에 올라가는 생선과 해산물을 뜻한다면, ‘샤리’는 식초로 간을 맞춘 밥을 의미한다. 같은 생선을 사용하더라도 샤리의 온도와 산미, 밥알의 수분감에 따라 입안에서 느껴지는 향과 식감은 달라진다.
지난 몇 년간 서울 오마카세 시장에서는 희소 어종과 트러플, 캐비아 등 고가 식재료가 차별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음식의 외형과 촬영 장면을 중시하는 소비문화도 코스 구성에 영향을 미쳤다.
반면 윤 셰프가 강조하는 숙성 시간과 샤리의 온도, 산미는 사진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요소다. 눈에 보이는 장식보다 손님의 입안에서 완성되는 맛과 질감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Q. 이번 세션에서는 닛카 위스키의 미야기쿄 싱글 몰트와 코스를 함께 선보였다. 페어링을 어떻게 봤나?
“미야기쿄는 음식의 풍미를 덮지 않으면서 숙성회와 샤리, 제철 어패류의 맛을 받쳐주는 위스키입니다. 일식이 추구하는 절제된 감칠맛과 결이 맞는다고 느꼈어요"
일식 코스와 함께하는 주류는 오랫동안 사케가 중심을 이뤘다. 최근에는 재패니즈 위스키와 와인, 전통주 등으로 선택지가 넓어지고 있다.
위스키는 높은 도수와 강한 향 때문에 섬세한 생선 요리와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인식도 있다. 이에 숙성회가 가진 감칠맛과 지방감, 샤리의 산미를 고려해 위스키의 향과 질감을 맞추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세션에서 사용된 미야기쿄 싱글 몰트는 음식의 맛을 압도하기보다 숙성회와 제철 어패류의 풍미를 받쳐주는 방향으로 코스에 배치됐다. 사케 중심이던 일식 주류 페어링이 위스키로 확장되는 흐름을 보여준 사례다.
Q. 닛카 위스키 창립자 타케츠루 마사타카의 철학과 일식 사이에서 공통점을 느끼는지.
“재료와 숙성, 온도와 손끝의 감각을 다듬는 일식 셰프의 태도와 타케츠루의 철학이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스코틀랜드에서 배운 것을 일본으로 가져와 자신의 방식으로 완성한 것처럼, 저도 도쿄에서 배운 것을 서울에서 제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타케츠루 마사타카는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제조법을 익힌 뒤 일본의 기후와 재료에 맞는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독자적인 방식을 구축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윤 셰프는 외국에서 배운 기술을 그대로 복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일하는 지역의 재료와 환경, 손님의 취향에 맞게 다시 구성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경험과 닮았다고 설명했다.
도쿄에서 익힌 에도마에 스시의 기본을 서울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는 일본 현지 수련을 거친 국내 셰프들이 공통으로 마주한 문제이기도 하다. 같은 조리법을 사용하더라도 생선의 유통환경과 쌀, 식초, 계절, 손님의 미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Q. 이번 세션에는 서울의 여러 일식 셰프와 업계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우루후, 무니, 하쿠시, 스시사이토 쥬욘, 가겐, 산로, 히노츠키 등 일식 업계 관계자들이 참여했습니다. 서울의 젊은 일식 셰프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일식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이런 자리가 서로의 방향성을 확인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각자의 업장을 운영하는 셰프들이 한 공간에 모여 음식과 주류의 조합을 살펴보고 서울에서 구현할 수 있는 일식의 방향을 공유했다는 점도 이번 세션의 특징이다.
서울의 일식 시장은 과거 특급호텔 일식당과 일부 유명 업장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단계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수련 배경과 조리 철학을 가진 셰프들이 각자의 업장을 구축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같은 에도마에 스시를 표방하더라도 생선의 숙성 방식과 샤리의 산미, 코스의 속도, 접객 방식, 주류 구성에 따라 업장마다 서로 다른 색깔이 나타난다. 개별 업장의 경쟁이 하나의 일식 문화와 시장을 만드는 단계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Q. 앞으로 하시라가 나아가려는 방향은?
“외식산업이 빠르고 자극적인 경험을 향해 움직이는 흐름 속에서도, 한 명의 손님을 위해 재료를 고르고 시간을 들여 숙성하는 방식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그 방식이 결국 하시라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외식시장은 짧은 시간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음식과 빠른 유행, 높은 회전율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반면 스시 오마카세는 제한된 좌석과 긴 준비시간, 재료별 숙성 과정이 필요하다.
같은 생선도 계절과 온도, 지방의 정도에 따라 숙성 시간을 달리해야 한다. 손님에게 초밥 한 점을 내는 순간보다 그 이전의 손질과 보관, 숙성 과정에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음식이다.
윤 셰프가 말하는 ‘정직한 요리’는 새로운 기교를 계속 더하는 것보다 재료가 가진 성질을 이해하고 필요한 만큼만 손을 대는 방식에 가깝다.
이번 인터뷰는 닛카 위스키 페어링 세션을 계기로 진행됐다. 특정 주류와 음식의 조합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쿄에서 수련한 셰프들이 서울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일식의 방향과 재료를 대하는 태도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화려한 식재료와 시각적 연출이 넘쳐나는 외식시장에서 기본과 절제, 숙성에 집중하려는 움직임이 서울 일식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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