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전공한 기획자는 조직과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까.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PR·마케팅 에이전시 라이징팝스(서울플래닝)를 이끄는 김근식 대표를 만났다. "좋은 직장이 아니라 좋은 기획자를 만드는 곳"이라는 다소 낯선 철학으로 자신의 회사를 소개하는 그에게, 그 말에 담긴 진짜 의미와 인문학적 통찰이 녹아든 실제 조직 운영 방식을 물었다.
"좋은 직장"이 아니라 "좋은 기획자를 만드는 직장"이라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복지가 좋다, 워라밸이 좋다, 이런 걸로 사람을 붙잡고 싶지 않아요. PR·기획 일은 결국 사람이 실력이거든요. 저희 회사에 오래 있어도 실력이 안 늘면 그건 직원한테도 손해고 저한테도 손해예요. 그래서 저는 '여기서 몇 년 있으면 확실히 기획자로서 몸값이 오른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거예요. 직장으로서 편한 곳이 아니라, 커리어로서 남는 곳이요"
그렇다면 '좋은 기획자'의 가장 결정적인 자질은?
"바로 '좋은 질문'을 던질 줄 아는 태도입니다. 철학에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産婆術)'을 이야기하잖아요. 산파가 스스로 아이를 낳는 게 아니라 산모가 아이를 잘 낳도록 돕듯이, 기획자도 클라이언트에게 일방적으로 정답을 주입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클라이언트조차 스스로 정립하지 못한 문제의 본질을 찾아내도록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주는 '산파'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클라이언트가 'SNS 채널을 새로 만들고 싶다'고 할 때, 그대로 만들어주는 건 하급 기획이에요. '왜 지금 이 채널이어야 하는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내부적으로 진짜 증명하고 싶어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질문함으로써 클라이언트 스스로도 몰랐던 진짜 니즈를 끄집어내는 것, 그게 바로 좋은 질문이 만드는 좋은 기획의 힘입니다"
MBTI 이야기를 종종 한다고 들었다. 'I(내향형)가 다니기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고 한다는데 그 의미는?
"제가 여러 회사와 일하면서 느낀 건데, E(외향형) 성향한테 잘 맞는 조직문화는 정말 많아요. 아침마다 인사 나누고, 점심 같이 먹고, 워크숍 가서 친목 다지고. 그런데 그게 편한 사람이 있고 힘든 사람이 있거든요. I 성향인 사람들은 그런 문화 속에서 실력과 무관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저는 그게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조용히 자기 일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도 충분히 좋은 기획자가 될 수 있는데, 조직문화가 안 맞아서 일찍 지치는 거죠. 그래서 라이징팝스는 그런 사람들도 오래,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채용과 관련해 인문학 전공자, 특히 철학이나 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PR 에이전시 업무에 적합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고도 들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지식의 '성격' 차이예요. 세상에는 형식지(形式知)와 암묵지(暗默知)가 있잖아요. 형식지는 매뉴얼로, 언어로 정리할 수 있는 지식이고요. 암묵지는 말로 다 옮기기 어려운, 경험과 맥락 속에서만 체득되는 지식입니다. PR 에이전시가 하는 일의 본질은 사실 후자에 훨씬 가까워요. 클라이언트가 주는 브리핑 문서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의도, 조직 내부의 맥락, 정황과 뉘앙스를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한데, 인문학은 텍스트의 행간을 읽고 명시되지 않은 구조를 재구성하는 훈련을 시켜주거든요"
퇴사자에게 추천서를 써주고, 재직 중인 직원에게도 더 좋은 이직 자리가 있으면 소개해주신다고도 라는데, 인재를 '고이' 간직해야 할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 아닌가?
"단기적으로는 손해죠. 사람 뽑고 가르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 더 좋은 자리 있으면 가라고 하니까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관계가 강력한 네트워크가 됩니다. 실제로 제가 직접 추천서를 써줘서 저희 클라이언트 회사로 이직해 성공적으로 정착한 직원도 있고, 다른 회사로 이직한 뒤에 PR 파트너가 필요해지자 다시 라이징팝스를 찾아와 프로젝트를 맡겨준 퇴사자도 있어요. 심지어 퇴사 후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 친구에게는 제 개인 돈을 빌려주며 창업을 응원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억지로 붙잡아 놓는다고 성과가 나오는 건 아니에요. 자기 커리어에 더 좋은 길이 있다면 응원하고 보내주는 게 맞고, 그 인연이 결국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이자 채용 경쟁력으로 돌아옵니다"
잡플래닛이나 블라인드 같은 기업 리뷰 사이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라는데?
"솔직히 말하면 별로 안 좋아해요. 그 플랫폼들이 결국 악성 리뷰, 자극적인 글로 트래픽 장사를 하는 구조라고 봐요. 회사 입장에서는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감정적인 글 하나에 휘둘리게 되고, 구직자 입장에서도 왜곡된 정보로 판단하게 될 위험이 있죠. 저는 그보다는 저희 회사에 대한 정보를 저희가 직접, 최대한 솔직하게 공개하는 방식이 낫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라이징팝스에 지원을 고민하는 분 입사예정자들께 한마디 한다면?
"'평생 다닐 편한 직장'을 찾으신다면 저희 회사는 안 맞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여기서 몇 년 구르면 어디 가서도 통하는 기획자가 되겠다'는 생각이 있으신 분이라면, 그리고 조용히 자기 페이스대로 일하는 걸 선호하시는 분이라면 잘 맞을 거예요. 눈치 보지 않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실력으로만 평가받는 곳. 그게 저희가 만들고 싶은 회사입니다."
라이징팝스(서울플래닝)는 2014년 설립된 강남 소재 PR·마케팅 에이전시로,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언론홍보, SNS 운영, 콘텐츠·영상 제작, 이벤트, 브랜딩 등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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