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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닭고기 담합’의 청구서…하림, 526억 과징금 법정서도 졌다 [법정문답]

서울고법, 하림지주·올품·한강식품 과징금 취소청구 기각
‘정부 수급조절에 따른 생산 조정’ 항변 배척…하림 “대법원 상고 검토”
사조원 이어 공정위 연승…1758억 원대 육계 담합 소송 향방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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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닭고기 기업인 하림그룹이 12년에 걸친 육계 신선육 담합으로 부과받은 500억 원대 과징금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3일 하림지주와 올품, 한강식품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번 재판의 대상이 된 과징금은 하림지주·올품·한강식품 등 하림그룹 계열 3개 회사에 부과된 총 526억7900만 원이다. 2022년 공정위 처분 이후 약 4년간 이어진 법정 다툼에서 재판부는 공정위 제재를 뒤집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림 측은 판결문을 송달받는 대로 구체적인 판단 내용을 검토한 뒤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처분 취소소송은 서울고법이 사실상 1심을 담당하고 대법원이 최종심을 맡는다.

 

◇ 12년간 45차례…시장 77% 차지한 업체들의 합의

 

이번 사건은 2022년 3월 공정위가 발표한 육계 신선육 가격·물량 담합 사건에서 비롯됐다.

 

공정위 조사 결과 하림지주와 하림, 올품, 한강식품을 비롯해 동우팜투테이블·참프레·마니커·체리부로·사조원 등 16개 제조·판매업체는 2005년 11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약 12년 동안 육계 신선육의 판매가격과 생산량, 출고량, 생닭 구매량 등을 합의했다.

 

공정위가 확인한 합의는 모두 45차례였다. 담합에 참여한 업체들의 도계량은 국내 육계 신선육 시장의 약 77%에 달했다.

 

시장 대부분을 차지한 주요 사업자들이 장기간 가격과 공급량을 함께 조정하면서 정상적인 가격 경쟁과 소비자의 선택권이 훼손됐다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었다.

 

논의 창구로는 한국육계협회 산하 대표이사급 회합인 이른바 ‘통합경영분과위원회’가 활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업체들은 이 회의 등을 통해 판매가격 인상과 할인 폭 축소, 생산량·출고량 조정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이들 16개 업체에 시정명령과 함께 총 1758억여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번 판결에 나온 526억7900만 원은 전체 과징금 가운데 하림 계열 3개 회사의 몫이다.

 

◇ 가격만 맞춘 것이 아니었다…병아리 3000만 마리 폐기

 

담합 방식은 판매가격을 직접 합의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업체들은 닭고기 공급량을 줄여 시장가격을 유지하거나 끌어올리기 위해 종란과 병아리를 폐기하고, 생닭 구매량과 도계량, 냉동 비축 물량 등을 조절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수급조절 명목으로 폐기된 병아리는 수년간 3000만 마리를 넘어섰다. 살아 있는 생명을 시장가격 조절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공정거래법상 문제를 넘어 윤리적 비판도 제기됐다.

 

닭고기는 가정식과 외식, 학교급식에 두루 사용되는 대표적인 서민 먹거리다. 시장 지배력이 높은 업체들이 공급량과 판매가격을 장기간 함께 조정했다면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특히 공정위가 2006년에도 일부 육계 사업자의 가격 담합을 적발해 시정명령을 내렸는데도 유사한 공동행위가 반복됐다는 점은 이번 사건을 일회성 일탈로 보기 어렵게 한다.

 

◇ 법정 쟁점은 ‘수급조절’…하림 측 항변 받아들여지지 않아

 

법정에서 가장 첨예하게 맞선 쟁점은 업체들의 생산량·출고량 조절을 정부 정책에 따른 수급조절로 볼 수 있는지였다.

 

하림을 비롯한 육계 업체들은 닭고기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폭락과 농가 피해를 막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의 행정지도에 따라 수급을 조절했을 뿐, 사업자들이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한 담합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육계 산업은 사육 기간이 짧고 공급량 변동에 따라 가격이 크게 오르내리는 특성이 있다. 정부와 생산자단체, 업체가 시장 안정을 위한 수급조절 방안을 협의해 온 만큼 이를 곧바로 사업자 간 담합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다.

 

공정위는 업체들이 정부의 구체적인 명령이나 승인 범위를 넘어 판매가격과 생산량, 출고량을 독자적으로 합의했다고 맞섰다.

 

정부 정책에 협조한 것이 아니라 사업자들이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공급을 줄이고 판매조건을 맞춘 것이므로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서울고법은 하림 계열사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체적인 판결 이유는 판결문을 통해 확인해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재판부는 업체들이 내세운 정부 수급조절 논리보다 공정위가 제시한 합의 증거와 경쟁 제한 효과에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 사조원 이어 두 번째 패소…다른 업체 소송에도 영향

 

이번 판결은 같은 육계 신선육 담합 사건과 관련한 개별 업체의 과징금 취소소송에서 나온 두 번째 주요 판단이다.

 

앞서 서울고법은 약 5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사조원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취소소송에서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사조원에 이어 하림 계열사들까지 패소하면서 공정위가 판단한 담합 구조와 과징금 처분이 법원에서 연이어 인정되는 흐름이 형성됐다.

 

같은 사건으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인 동우팜투테이블과 마니커 등 다른 업체들의 재판에도 이번 판결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각 업체의 담합 참여 기간과 구체적인 행위, 과징금 산정 기준에는 차이가 있어 이번 판결이 다른 사건의 결론을 곧바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이 공정위의 조사 결과와 ‘수급조절’ 항변에 대해 일관된 판단을 이어갈 가능성은 커졌다.

 

대법원에서는 사업자들의 공동행위가 정부의 행정지도 범위 안에 있었는지, 가격과 물량 합의가 시장 경쟁을 어느 정도 제한했는지, 과징금 산정 과정이 적법했는지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 담합 사건에 등장한 ‘올품’…승계 논란도 다시 수면 위로

 

이번 소송의 원고 중 하나인 올품은 하림그룹의 지배구조와 승계 과정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회사다.

 

올품은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장남 김준영 씨가 지분 100%를 보유한 기업이다. 김 회장은 2012년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던 올품 지분 전량을 장남에게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림그룹은 올품에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다는 사익편취 사건으로도 공정위 제재를 받았다. 서울고법은 2024년 7월 이 사건에서도 공정위 처분이 정당하다며 하림 측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당 사건은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육계 신선육 담합과 올품 부당지원 사건은 별개의 사건이다. 이번 판결이 담합을 통해 얻은 이익이 오너 일가의 승계 재원으로 직접 사용됐다고 인정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담합에 참여한 계열사가 그룹 승계 구조의 핵심 회사라는 점은 하림의 경영윤리와 내부통제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문제를 남긴다.

 

시장 경쟁을 제한한 계열사의 이익과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대가 어떤 관계에 놓여 있었는지, 이사회와 준법경영 체계는 장기간 이어진 공동행위를 왜 막지 못했는지도 기업이 설명해야 할 부분이다.

 

◇ 대법원으로 향하는 526억 원…법리 밖에 남은 소비자의 손해

 

하림이 상고하면 526억7900만 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게 된다.

 

상고심에서는 사실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심리하기보다 서울고법이 법리를 올바르게 적용했는지가 주로 검토된다. 하림 측은 정부 수급정책과 업계 공동행위의 관계, 공정위가 인정한 합의의 성격, 과징금 산정의 적정성 등을 다툴 것으로 예상된다.

 

사법절차와 별개로 장기간 담합으로 소비자가 실제 얼마의 손해를 입었는지는 이번 과징금 취소소송에서 직접 판단되지 않았다.

 

닭고기 가격이 담합이 없었을 때보다 얼마나 높게 형성됐는지, 공급 축소로 소비자가 추가로 부담한 비용은 얼마인지도 명확하게 산정돼 있지 않다.

 

과징금은 국가가 경쟁질서를 훼손한 기업에 부과하는 행정제재다. 소비자가 과거에 더 지불한 닭고기값을 직접 돌려받는 절차는 아니다.

 

대법원이 공정위 처분을 최종 확정하더라도 소비자의 손해와 시장 신뢰가 자동으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 국민 밥상 앞에서 지켜야 할 信義

 

닭고기는 국민 다수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식재료다. 그 가격과 공급량을 시장 대부분을 차지한 기업들이 12년간 함께 조정했다는 공정위 판단은 기업의 이익과 국민의 밥상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다.

 

옛 상도는 이익에 앞서 信義(신의)를 세웠다. 이문을 남기더라도 소비자를 속이지 않고, 시장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장사의 기본적인 염치였다.

 

공정한 경쟁을 피하고 공급을 줄여 가격을 떠받친 자리에는 신의가 설 수 없다. 살아 있는 병아리를 폐기하면서까지 시장 물량을 조절했다면 법적 책임과 함께 생명과 소비자를 대하는 기업의 태도도 물어야 한다.

 

하림이 상고심에서 다퉈야 할 것은 공정위 처분의 법리와 과징금 산정의 적정성이다.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것은 12년간 이어진 공동행위를 내부통제 체계가 왜 막지 못했는지, 무너진 소비자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다.

 

하림 측은 "과징금을 이미 납부한 상태"로, 납부를 회피하거나 늦추기 위한 소송이 아니라 "공정위 처분의 적법성과 법리적 판단을 구하는 절차"라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법정의 최종 결론은 대법원이 내린다. 그럼에도 기업의 신의를 판단하는 또 하나의 법정은 국민의 밥상 앞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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