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이 극단적 상황에 놓였는데도 공공 자살예방 서비스 이용을 거부당했다는 현장 증언이 나왔다. 국가가 "누구나 전화하라"고 홍보해 온 위기 대응 체계가 정작 가장 취약한 집단 앞에서 문을 닫고 있다는 지적이다.
장애인 지원기관에서 상담 업무를 담당하는 A씨는 최근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지적장애인 이용자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그가 직전 휴일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문적 위기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A씨는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 자살예방팀에 연계를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지적장애인은 지원 대상이 아니다"라는 한마디였다고 A씨는 전했다. A씨는 "장애라는 조건 하나로 생명의 무게를 다르게 다는 것"이라며 "'장애에 대한 이해 부족'을 이유로 업무를 미루는 행태는 차별을 넘어선 사회적 폭력"이라고 말했다.
일선의 거부인가, 설계도의 공백인가
이 같은 대응은 개별 기관의 판단 착오로만 보기 어렵다. 국가 계획 단계에서부터 장애인이 자살예방 정책 대상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2023년 공개한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2023~2027)은 '맞춤형 자살예방' 대상으로 아동·청소년, 초·중·고등학생, 청년, 여성, 군인, 근로자, 중년남성, 노인, 경제위기군을 제시했으나 장애인은 포함하지 않았다. 당시 장애계에서는 "주무부처인 복지부 안에서조차 장애인 사안을 장애인정책국으로 미루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런 구도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 5월 국무회의에서 논의한 '9대 분야별 자살예방 대책'은 학생청소년, 자살 긴급대응, 자살 장소 관리, 경제적 실패자, 고립위기가족, 돌봄·간병 부담, 미디어·온라인, 특수직군 집단보호, 범죄피해자 회복지원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도 장애인 항목은 없다.
기관 연계 체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확정된 '2025 국가자살예방전략'은 고위험군 조기 발굴을 위해 자살예방센터를 중심으로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고용복지+센터,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청소년상담복지센터·가족센터, 위(Wee)센터 등을 연결하도록 했다. 그러나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나 발달장애인지원센터는 협업 대상에 명시되지 않았다.
사망률은 5.3배, 대책은 '전무’
정작 지표는 정반대를 가리킨다. 국립재활원이 발표한 장애인 건강보건통계에 따르면 2022년 장애인 조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3885.4명으로 전체 인구(727.6명)의 5.3배였다. 10대에서는 격차가 17.3배까지 벌어졌다. 우울과 불안장애를 겪는 비율도 비장애인의 각각 2.6배, 2.2배로 나타났다.
학계에서도 장애로 인한 차별 경험이 자살생각과 유의미하게 연관돼 있으며, 자살을 장애인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 인식을 개선하고 자살예방센터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연구가 이어져 왔다.
옹호기관도 "형식적 인원으로 광역 담당“
위기 상황에서 당사자를 대변해야 할 지역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역시 여력이 없다는 것이 현장의 진단이다.
한 지역 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계자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형식적인 인원으로 넓은 지자체를 지원하다 보니 사건이 발생해도 신속하게 조사하고 분리 조치하는 과정이 매우 어렵다"며 "인력 충원이 몇 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고 밝혔다. 학대피해장애인쉼터는 서울·경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시·도에 한 곳뿐으로, 전국을 통틀어 19개소에 그친다.
지역별 격차 문제는 이미 2023년 한국장애인권익옹호기관협회 설립 당시에도 제기됐다. 협회는 지역별 인력·예산 편차가 커 대응과 사후 지원의 질이 달라진다는 점을 설립 배경으로 밝힌 바 있다.
"장애 이유로 한 서비스 거부는 차별" 판단 잇따라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를 이유로 한 서비스 거부를 반복적으로 차별로 판단해 왔다.
인권위는 2022년 청각장애인이 상담을 위해 의료기관을 찾았으나 병원이 청각장애를 이유로 상담·진료를 거부한 사안에서, 개별 건강상태 등을 확인하지 않은 채 장애만을 이유로 거부한 것은 정당한 사유 없는 차별이라고 결정했다. 같은 해 자폐성 장애인의 특별교통수단 보조석 탑승을 제한한 건에 대해서도 "발달장애인이라도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며, 전체를 일반화해 제한하는 것은 부정적 편견에 기초한 조치"라고 봤다.
반면 인권위는 2022년 4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삶을 비관하는 문자를 보낸 뒤 연락이 닿지 않는 이용자를 응급입원 조치한 사안에 대해서는 생명권 보호 의무 이행으로 보고 진정을 기각했다. 비장애인에 대해서는 강제 개입까지 정당화되는 체계가, 지적장애인에게는 상담 연계조차 거부하는 셈이다.
"간판이 아니라 개입이 필요하다“
장애계는 개별 사건을 넘어선 체계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앞서 국회는 2022년 발달장애인 가족의 잇단 참사를 국가의 돌봄·권리옹호 서비스 부족과 지원체계 부재로 발생한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여야 의원 178명의 동참으로 통과시킨 바 있다. 개별 비극을 국가 책임으로 재정의한 선례다.
A씨는 "기관이 존재하는 이유는 건물을 세우고 직원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위급한 순간 한 사람의 존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함"이라며 "지역 장애인 옹호기관과 공공 복지 시스템이 초기 위기 인지 단계부터 적극 개입해 당사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대변할 수 있도록 전면적인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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