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을 찾은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풍경을 기억한다. 사자봉 정상에 횃불처럼 서 있는 전망대와 바다를 향해 뾰족하게 뻗은 삼각뿔 모양의 땅끝탑이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북위 34도 17분 32초’라는 숫자를 확인한다. 다도해 너머로 시선을 던진 뒤에는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간다.
그런데 땅끝점 표지석 옆에는 관광객의 시선이 좀처럼 머물지 않는 석상 하나가 서 있다. 나이 든 여인의 모습이다. 안내판을 읽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치기 쉽고, 읽더라도 그 사연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 석상의 주인공은 갈두마을 사람들이 오랜 세월 ‘당할머니’라고 부르며 모셔 온 마을의 수호신, 칡머리 당할머니다.
갈두, 칡이 우거진 땅의 이름
땅끝마을의 본래 이름은 갈두(葛頭)다. 한자를 그대로 풀면 ‘칡 머리’라는 뜻이다.
갈두산 일대에 칡이 무성해 주민들이 예부터 이곳을 ‘칡머리’라고 불렀고, 이를 한자로 옮겨 갈두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지역에서 난 칡이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이었다는 말도 내려온다.
바닷가임에도 마실 물이 귀해 본래 갈수리(渴水里)라고 불렀으나, 이름의 뜻이 좋지 않아 갈두리로 바꿨다는 설명도 있다. 어느 이야기가 먼저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두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칡뿌리를 캐어 허기를 달래고, 귀한 물을 아껴 마시며 거친 바다로 나가야 했던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갈두라는 이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 낸 사람들의 기억이다.
흰옷의 노파가 지켜 준 바다
마을에 전해 오는 당할머니 이야기는 풍랑에서 시작된다.
먼 옛날 갈두 앞바다는 파도가 거세기로 이름났다. 풍랑에 배가 뒤집히고, 고기잡이를 나간 사람이 돌아오지 못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흰옷을 입은 노파가 마을 사람들의 꿈에 나타났다. 노파는 자신을 산마루에 모시면 바다와 마을을 지켜 주겠다고 했다. 주민들은 그 뜻을 받들어 산 위에 당집을 짓고 노파를 당할머니로 모셨다.
이후 바다가 잔잔해지고 고기가 잘 잡혔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마을 사람들은 배를 띄우기 전 당할머니에게 무사 항해와 풍어를 빌었다.
남해에서 서해로 조업하러 가던 외지 뱃사람들도 갈두 앞바다에 배를 멈췄다. 징과 북을 울리며 바닷길의 안전을 기원했다고 한다. 당할머니에게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믿음도 이때부터 전해 내려왔다.
당할머니를 단순한 전설 속 인물로만 바라보면 이 이야기의 절반을 놓치게 된다. 당할머니 신앙이 자리 잡은 배경에는 땅끝의 지리적 특성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주민들의 절박함이 함께 놓여 있다.
국토의 끝을 지킨 민중의 마음
조선시대 갈두에는 갈두진(葛頭鎭)이라는 수군진이 설치돼 있었다. 제주 백성에게 보낼 구휼미를 나주 제민창에서 운송하기에는 뱃길이 너무 멀어, 가까운 갈두로 운송 거점을 옮기면서 1710년 무렵 수군진이 들어섰다고 전한다.
갈두산 정상에는 서남해로 접근하는 왜구의 움직임을 살피던 봉수대도 있었다.
갈두는 한적한 어촌에 그치지 않았다. 제주를 오가는 뱃길이 지나고 남해와 서해의 물길이 만나는 곳이자, 나라의 남쪽 끝을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오가는 배가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풍랑과 죽음의 위험을 마주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할머니는 바다를 떠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두려움을 이겨 내기 위해 세운 믿음이었다.
해남 서남부 해안 마을의 제의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주민들은 당할머니를 모시는 한편 바다에서 숨진 임자 없는 넋을 달랬다. 용왕과 ‘물아래 김서방’이라 불린 도깨비에게도 제사를 올렸다.
제의는 유교식 절차를 따르면서도 ‘군고’라고 부르는 풍물 가락과 어우러졌다. 여러 믿음이 뒤섞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한 가지 마음이 있었다. 바다로 나간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고, 마을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공동체의 염원이었다.
관광의 빛 뒤로 밀려난 이야기
아쉬운 것은 오늘날 당할머니의 자리가 지나치게 좁아졌다는 점이다.
1987년 땅끝탑이 세워지고 전망대와 모노레일이 들어서는 동안, 갈두마을을 지켜 온 당할머니의 이야기는 관광지 뒤편으로 밀려났다. 당제가 언제까지 이어졌는지, 당집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기록도 충분하지 않다.
해남지역의 마을신앙을 정리한 자료에서도 갈두 당제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을 찾기는 쉽지 않다. 땅끝을 대표할 만한 공동체 신앙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채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다.
바닷가 마을마다 당제와 전설이 있으니 특별할 것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바닷가가 아니라 ‘땅끝’이다.
국토의 끝이자 또 다른 시작이라는 상징을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그 자리를 오랜 세월 지켜 온 존재가 권력자나 장군이 아니라 흰옷을 입은 할머니였다는 사실은 충분히 들려줄 가치가 있다.
당할머니의 자리를 되찾아 줄 때
갈두마을에서는 해마다 연말연시 해넘이·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한 해의 액운을 보내는 행사를 하고, 새해 아침에는 소원을 담은 띠배를 바다에 띄운다. 주민들은 떡국을 끓여 관광객과 나눈다.
액을 보내고 복을 맞으려는 마음은 당할머니에게 무사 항해를 빌었던 옛사람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축제의 한 자락에 당할머니 이야기를 정식으로 담는 것은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잊힌 주인에게 원래의 자리를 돌려주는 일이다.
올해 1월에는 모노레일 승강장에서 땅끝탑까지 계단 없이 이동할 수 있는 산책길도 조성됐다. 스카이워크 지점부터 약 450m의 데크길이 바다를 따라 이어진다. 유모차를 밀거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도 땅끝에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됐다.
그 길의 끝에 당할머니가 서 있다. 사람들은 이미 그곳을 걷고 있지만, 정작 길 위에서 들려줄 이야기는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
당할머니 신앙을 관광상품으로 소비하자는 뜻은 아니다. 먼저 전승 자료를 수집하고 당제와 당집의 흔적을 기록해야 한다. 주민들의 증언을 남기고 안내판과 문화해설에도 당할머니의 유래와 의미를 제대로 담을 필요가 있다.
해마다 2월 중순과 10월 하순 무렵이면 갈두항 앞 두 개의 맴섬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그 장면을 담으려는 사진가들이 전국에서 몰려든다.
사람들이 바다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동안, 그 뒤편에서는 흰옷의 할머니가 여전히 같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수백 년 동안 그래 왔듯이 말이다.
다음에 땅끝에 가거든 탑 앞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서지 않았으면 한다. 옆에 선 당할머니 석상 앞에도 잠시 머물러 보기를 권한다.
소원 하나쯤 빌어도 좋겠다. 예부터 이곳에서 정성을 다해 빈 소원은 이뤄진다고 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그 짧은 걸음이 땅끝을 지켜 온 사람들의 삶과 믿음을 다시 기억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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