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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교만할 자격은 있는가? [기자수첩]

돌려차기 피해자 참석 간담회서 농담…정몽규 ‘배려 문자’·원내대표 멱살까지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농담의 소재가 아니다. 피해자가 살아남기 위해 견딘 시간을 웃음거리로 바꾸는 순간, 정치는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잃는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보완수사권 폐지, 지옥문이 열렸다’ 간담회는 범죄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형사사법제도의 허점을 따져 묻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도 참석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은 맞은편에 앉은 진종오 의원에게 말했다.

 

“진종오 의원님, 돌려차기 한판 하지?”

 

진 의원은 자신은 발보다 손을 더 잘 쓴다는 취지로 맞장구쳤다고 한다. 피해자는 현장에서 이 말을 듣지 못하고 뒤늦게 접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고 문제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듣고 있을 때만 조심하는 태도를 우리는 예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유가에서는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를 삼가는 ‘신독(愼獨)’을 군자의 근본으로 삼았다. 피해자가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면 문제는 오히려 더 무겁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여긴 순간에 드러난 말이 그 사람의 평소 품격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자리는 ‘돌려차기’라는 범죄로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은 피해자가 용기를 내 참석한 자리였다. 피해자의 고통을 말하겠다며 모인 국회의원들이 그 고통의 이름을 농담으로 소비했다.

 

그 순간 피해자는 정책 논의의 주체가 아니라 정치인들의 말장난을 위한 소재로 전락했다. 단순한 실언이라고 넘길 수 없는 이유다.

 

두 의원은 곧바로 사과했다. 서 의원은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라며 피해자가 허락한다면 직접 찾아가 사죄하겠다고 했다. 진 의원도 피해자와 국민에게 사과했다.

 

사과가 빨랐다는 사실은 위안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말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는지를 보여준다.

 

국민의힘은 지금 사과문이 부족한 정당이 아니다. 사과문을 필요로 하는 행동이 너무 자주 나오는 정당이다.

 

공자는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라고 했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잘못이라는 뜻이다. 사과문을 낸 뒤 비슷한 잘못이 되풀이된다면 사과는 반성이 아니라 위기를 넘기기 위한 문서에 그친다.

 

정몽규에게 먼저 숙인 청문위원

 

불과 닷새 전인 지난달 30일에는 대한축구협회 청문회가 열렸다.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과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증인석에 앉았다.

 

국민을 대신해 증인을 추궁해야 할 윤용근 국민의힘 의원은 정 전 회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제 정 선배님한테 연락받았습니다. 더 잘 배려해 드려야 하는데 송구합니다”

 

정 전 회장은 곧바로 신경 써줘서 감사하다는 취지로 답했다. 문자에 등장한 ‘정 선배’는 정진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확인됐다. 정 전 회장도 청문회에서 정 전 실장에게 의원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물었다는 취지로 답했다.

 

윤 의원은 자신이 말한 배려는 청문회에서 편의를 봐주겠다는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오전 질의에서 배려할 수 없었던 점에 대해 사적으로 미안함을 표시했다는 취지였다.

 

그 해명도 본질을 바꾸지 못한다. 청문위원이 왜 증인에게 사적인 미안함을 설명해야 하는가.

 

청문회는 친분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한으로 증언의 진실성을 따지고 공적 책임을 묻는 자리다. 청문위원이 증인에게 먼저 몸을 낮추는 순간, 국민의 질문은 뒷전으로 밀린다.

 

오후 질의를 세게 했다는 해명 역시 궁색하다. 공개된 자리에서는 질책하고, 휴대전화 안에서는 배려하지 못해 송구하다고 말한다면 국민은 어느 쪽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공직은 사사로운 친분을 앞세우는 자리가 아니다. 자신의 감정과 관계를 이기고 공적인 예로 돌아가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필요한 자리다. 국민의 질문을 대신해야 할 청문위원이 증인의 마음부터 살폈다면, 그가 지켜야 할 예의 대상이 누구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멱살은 잡았지만 당적은 놓지 않겠다

 

지난달 23일에는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이 상임위원회 배정에 불만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정점식 원내대표의 멱살을 잡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말리던 다른 의원에게도 물리력을 행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권 의원은 이튿날 자신의 잘못이라며 사과했다. 정 원내대표와 동료 의원, 당원과 국민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여기까지였다면 순간적인 분노를 통제하지 못한 정치인의 잘못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자진 탈당을 권유하자 태도는 달라졌다. 권 의원은 지난 1일 합당한 징계는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스스로 탈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멱살을 잡은 것은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탈당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충분히 생각한 뒤 내놓은 말이다.

 

사과는 했지만 책임의 범위는 자신이 정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잘못은 인정하되 자리는 지키겠다는 정치인의 사과가 국민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예(禮)는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갖추는 복종의 형식이 아니다. 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욕망과 분노를 절제하기 위해 세운 공적 질서다. 상임위원회 자리 하나를 두고 동료의 멱살을 잡았다면, 이는 단순한 감정 폭발이 아니라 공적 질서를 가볍게 여긴 행위다.

 

잘못을 인정한다면 책임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말로만 고개를 숙이고 지위는 한 치도 내놓지 않겠다는 태도는 사과가 아니라 자리 보전의 기술에 가깝다.

 

심판자마저 흔들리는 윤리위원회

 

당 중앙윤리위원회는 권 의원과 함께 조경태·진종오 의원에 대한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조 의원은 윤리위를 장동혁 대표의 ‘사설 아바타 위원회’라고 비판했고, 진 의원은 사당화를 위한 징계라면 맞서겠다고 반발했다.

 

정작 윤리위원회 내부에서도 위원장의 입장이 윤리위 전체의 공식 입장처럼 발표됐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윤리위 부위원장이 공개 사과와 정정 보도자료를 요구하는 등 심판기구 내부의 갈등까지 밖으로 터져 나왔다.

 

당의 기강을 세우겠다며 의원들을 심판대에 올렸지만, 심판기구부터 공정성과 절차를 의심받고 있다. 징계를 받는 쪽도, 징계를 하는 쪽도 서로를 믿지 못한다.

 

남을 바로잡으려면 먼저 자신을 바로 세워야 한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은 자신을 닦은 뒤에야 남을 다스릴 수 있다는 유가 정치의 기본이다.

 

회의 절차와 공정성조차 의심받는 윤리위원회가 다른 의원의 윤리를 재단한다면 권위가 설 리 없다. 심판자가 스스로의 절차를 지키지 못하면서 징계를 말하는 것은 예법을 논하면서 정작 제 옷깃은 여미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의 현재를 이보다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도 드물다.

 

이는 몇몇 의원의 말실수와 돌발행동을 모아놓은 사건 목록이 아니다. 국민의힘이 국민과 권력을 대하는 기본 감각을 잃고 있다는 경고음이다.

 

범죄 피해자를 말하면서 피해의 이름으로 농담한다. 청문회에서 증인을 추궁하면서 뒤로는 배려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낸다. 당내 민주주의와 기강을 말하면서 원내대표의 멱살을 잡는다.

 

말과 행동이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언행이 따로 노는 정치는 신뢰를 만들 수 없다.

 

여당이 흔들려도 대안이 되지 못하는 야당

 

정치적 교만에는 대개 힘이라는 배경이 있다. 선거에서 이겼거나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믿을 때 정치인은 자신의 언행을 가볍게 여기기 시작한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에 그런 힘이 있는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조사한 결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 평가는 취임 후 가장 낮은 45.9%를 기록했다. 부정 평가는 50.5%로 처음 50%를 넘었다.

 

정부·여당에 악재가 불거졌다면 야당에는 반사이익을 얻을 기회였다.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은 45.1%로 3.8%포인트 올랐지만 국민의힘은 37.7%로 2.9%포인트 하락했다. 적어도 이 조사에서 유권자는 국민의힘을 정부·여당의 대안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는 전국 18세 이상 2,508명을 대상으로 무선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3.8%,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다. 정당 지지도 조사는 1,002명을 대상으로 했으며 응답률은 3.3%, 표본오차는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당이 흔들리는데 야당도 함께 가라앉고 있다. 국민의힘이 정부의 실책을 비판할 능력은 있어도 국가 운영을 맡길 만한 대안으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정치는 결국 신뢰로 선다. 공자는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 했다.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뜻이다. 정당도 다르지 않다. 국민의 믿음을 얻지 못한 정당은 의석이 많아도 바로 설 수 없고, 상대 정당이 흔들려도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 피해자 참석 행사에서의 농담이고, 증인에게 보낸 배려 문자이며, 원내대표를 향해 뻗은 손이다.

 

교만할 힘도, 자격도 없다

 

교만은 이긴 자의 병이라고 한다. 승리의 기억이 길어지면 자신을 향한 비판을 하찮게 여기고, 주변 사람의 고통에도 무뎌진다.

 

지금 국민의힘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그보다 더 심각하다. 힘은 잃었는데 권력자의 습관만 남았다.

 

국민에게 평가받아야 하는 처지에서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피해자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농담이 어떤 상처를 더할지 생각하지 않는다. 공적인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사적인 인연부터 챙긴다.

 

이것은 단순한 교만이 아니다. 정치적 둔감이다.

 

소수 야당의 가장 큰 자산은 의석수도, 목소리의 크기도 아니다. 명분이다. 명분은 현수막 문구나 논평의 강한 표현에서 생기지 않는다.

 

피해자 앞에서 입을 다물 줄 아는 절제, 증인 앞에서 허리를 세우는 원칙, 동료의 멱살 대신 책임을 붙드는 처신에서 나온다.

 

돌려차기 피해자는 두 의원의 사과를 받을 생각이 없다며 범죄 피해의 엄중함이라는 본래 쟁점에 집중해 달라는 뜻을 밝혔다. 정치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피해자는 다시 정치인들의 사과를 받아주는 역할까지 떠맡을 이유가 없다.

 

국민의힘에 필요한 것은 더 잘 다듬어진 사과문이 아니다.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는 정치다.

 

피해자의 고통을 농담하지 않고, 증인보다 국민을 먼저 배려하며, 자리를 얻지 못했다고 동료의 멱살을 잡지 않는 정치다.

 

《예기》는 “오불가장(傲不可長)”이라 했다. 교만은 길러서는 안 된다는 경계다.

 

더구나 국민의 신뢰도, 대안으로서의 힘도 충분히 얻지 못한 야당이 권력자의 습관부터 앞세운다면 그것은 교만을 넘어 착각이다.

 

교만할 자격은 없다. 사실 그런 자격은 어떤 권력에도 없다.

 

신독하지 못하고, 자신을 이기지 못하며, 잘못을 고치지 않는 정당은 국민의 신뢰 위에 설 수 없다.

 

국민의힘이 먼저 되찾아야 할 것은 권력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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