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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성 칼럼】 한국 민족이 족보에 진심이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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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큼 족보 문화가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한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에도 족보가 있고, 한자 문화권인 일본과 베트남에도 있으며 유럽에도 계보 기록이 존재한다.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것처럼 “A는 B를 낳았고, B는 C를 낳았고…”와 같이 동일한 문장 구조를 반복하며 혈통을 기록한 단순한 계보도는 여러 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문중 구성원을 거의 빠짐없이 동일한 형식과 방식으로 기록하고, 한 가문 전체의 인명록을 데이터베이스처럼 수백 년 동안 지속적으로 갱신하고 보완해 온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족보는 마치 국가의 공적 기록인 주민등록처럼 문중 구성원의 계보와 관계를 체계적으로 담아냈다.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張)으로 공식적으로 신분제가 철폐되고, 1909년 민적법(民籍法)이 시행되면서 성씨와 본관이 행정적으로 등록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족보 편찬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족보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20여 년 동안 조선총독부 출판 허가 건수에서 연속 1위를 차지하였다.

 

족보(族譜)는 성리학적 유교 질서와 그 핵심축인 종법제도(宗法制度)라는 사회 규범을 시각화하고 기록한 문화유산이다. 유교가 강조하는 효(孝)는 부모를 공경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조상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후손에게 전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족보는 바로 이러한 기억과 계승을 가능하게 한 장치였다.

 

족보는 단순한 혈통의 기록이 아니다. 한 사람의 존재가 가족과 문중, 그리고 역사 속에서 어떠한 관계를 맺고 살아왔는지를 담아낸 공동체의 기억이다.

 

종법제도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도 족보가 편찬되었지만, 조선처럼 전국적인 규모로 지속적인 개수(改修)와 간행이 이루어진 사례는 드물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시작된 족보가 조선에 전해져 더욱 화려하게 꽃피운 이유는 무엇일까?

 

한류 열풍으로 다시 보는 가족공동체와 문중공동체

 

무엇보다 문중공동체의 질서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오늘날은 개인의 고립이 심화된 고도의 개인주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종법제도가 공고했던 조선시대에는 가족공동체와 그 확대된 개념인 문중공동체의 질서가 정치·사회·문화는 물론 경제 영역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때 족보는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일제 식민 지배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꽤 오랜 세월 우리의 전통문화, 특히 조선의 역사에 대해 자학적이고 냉소적인 인식이 지배했던 시절이 있었다. 성리학과 유교 문화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게 한 망국의 원흉인 것처럼 폄훼하는 풍조도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성리학적 유교 문화로 대표되는 한국의 전통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국내보다 해외에서 한국의 전통문화에 강한 호기심과 관심을 보이며, 이를 선진적인 문화로 바라보는 풍조도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K-컬처의 확산이다.

 

K-컬처를 주도하는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서양의 사회·문화에서 점차 찾기 어려워진 가족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한국 드라마는 희생과 가정, 효와 책임 같은 가족공동체의 가치와 삶에 대한 겸손한 태도, 순정과 명예의 의미를 세계인들에게 새롭게 환기하고 있다.

 

한국은 기록 문화의 선진국으로 평가받는다.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프랑스와 함께 세계기록유산 보유 수가 세계 4위권에 이르는 나라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2007년부터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본격화했음에도 ‘한국의 족보’를 등재하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수개월의 준비 끝에 2025년 7월 21일 ‘한국족보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추진위원회는 본격적인 대장정에 돌입하였으며, 출범 1주년을 넘기면서 등재 추진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였다.

 

한국만의 독보적인 족보 문화, 방치하면 사라진다

 

우리의 족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족보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문화가 점차 퇴색하면서 결국 잊히고 소멸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족보 자체의 특성에 있다. 새로운 족보를 편찬할 때마다 기존 족보의 내용을 새 족보에 수록하기 때문에 옛 족보는 자연스럽게 활용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러나 구족보에는 편찬 당시의 사회상과 인물, 표기 방식과 기록 관행 등 새로운 족보만으로는 온전히 확인하기 어려운 고유한 정보가 담겨 있다.

 

우리 추진위원회 학술부문 대표인 한국학자 마크 A. 피터슨 교수에 따르면, 서양에서는 ‘패밀리서치’ 등을 통해 가계도를 만들고 출생·사망 기록을 연결하여 조상을 찾는 활동이 대중적인 취미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반해 우리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하고 소중한 전통인 족보가 점점 사라지고 희미해지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마음이 급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우리의 옛 족보는 정부 기관별로, 문중은 문중대로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다. 개인이 소장한 족보도 적지 않다. 최근 족보를 인류의 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일부에서는 족보를 사들이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어 체계적인 조사와 보존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한국의 족보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려는 것은, 족보가 한 사회가 가족과 공동체를 어떻게 기억하고 이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인류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등재를 위한 노력은 단순한 문화재 보존에 그치지 않는다. K-컬처의 뿌리가 된 기록 문화와 가족공동체의 정신을 세계와 함께 나누는 일이다.

 

이는 과거를 무조건 미화하거나 옛 제도를 복원하자는 것이 아니다. 전통에 담긴 보편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재해석하여 미래 세대에게 전하자는 것이다.

 

족보는 과거를 붙드는 기록이 아니라 미래를 잇는 기억이다. 이제는 그 가치를 세계와 함께 공유하고, 인류의 기록유산으로 남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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