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둘러싼 의혹에 강제수사로 들어가면서, 2년 가까이 이어진 대한축구협회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6일 충남 천안 대한축구협회와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 등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전력강화위원회와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 관한 자료를 확보하고 관련자들의 진술과 전자정보를 대조하고 있다.
수사의 중심은 2024년 홍 전 감독 선임 과정이다. 정몽규 당시 대한축구협회장과 이임생 당시 기술총괄이사 등 협회 고위 관계자들이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해 전력강화위원회와 이사회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단순히 협회 내부 규정을 지켰느냐를 확인하는 데 그치는 수사가 아니다. 감독 후보를 검토하고 추천하는 과정에서 공식 기구의 권한이 실제로 보장됐는지, 최종 의사결정이 어떤 경로를 거쳐 이뤄졌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에 가깝다.
그 과정까지 오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정 전 회장을 둘러싼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관련 고발은 2024년부터 이어졌다.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을 둘러싼 고발에 이어 같은 해 7월 홍 전 감독 선임 이후에도 관련 고발이 잇따랐고, 사건은 종로경찰서에서 수사가 진행됐다.
수사가 이어지는 동안 축구협회를 둘러싼 논란은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 감사, 법정으로까지 번졌지만 경찰 수사에서는 좀처럼 뚜렷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사건이 지난 7월 1일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로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박주호 전 전력강화위원을 비롯해 당시 전력강화위원과 협회 관계자들이 잇달아 조사를 받았고, 홍 전 감독과 이 전 이사에 대한 조사도 이어졌다. 사건이 이첩된 지 약 5주 만에는 축구협회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이뤄졌다.
종로경찰서 단계에서 오랜 기간 이어진 수사와 서울청 이첩 이후의 진행 속도를 나란히 놓으면 앞선 시간 동안 어떤 수사가 이뤄졌는지 궁금증이 남는다.
경찰은 관련 행정소송이 진행되고 있었던 만큼 재판 과정과 판단을 참고할 필요가 있었고, 그동안에도 관계자 조사와 법리 검토를 진행했다는 취지로 설명해왔다.
관련 재판의 판단을 수사에 참고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강제수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던 이유와 그 기간 동안 어떤 자료를 확보했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질 수 있는 증거를 보전하기 위한 조치는 충분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최근 경찰 조사에서 나온 진술들은 당시 축구협회의 의사결정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박주호 전 전력강화위원은 홍 전 감독이 최종 선임되는 과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축구협회 부회장을 지낸 인사도 이사회가 전력강화위원회의 구체적인 논의 내용을 충분히 공유받지 못한 상태에서 서면 결의를 진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력강화위원회는 대표팀 감독 후보를 검토하는 전문기구다. 이사회는 감독 선임을 최종 승인하는 기구다.
후보 검토에 참여한 위원이 최종 결정 과정을 알지 못했고, 승인에 참여한 이사회 구성원도 후보가 어떤 논의를 거쳐 결정됐는지 충분히 알지 못했다면 공식적인 의사결정 절차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임생 전 이사의 최근 진술도 이 지점과 연결된다.
이 전 이사는 경찰 조사에서 정 전 회장으로부터 홍 전 감독을 포함한 모든 후보자를 선입견 없이 검토하고, 누구와도 계약할 수 있도록 협상을 진행하라는 주문을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회장이 “한국 축구를 위한 이임생 TD의 판단을 믿는다”는 뜻을 전달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홍 전 감독이 대표팀 감독직을 받아들일 뜻을 밝힌 뒤 이를 정 전 회장에게 보고했고, 정 전 회장으로부터 홍 전 감독으로 선임하는 방향의 지시를 받았다는 취지의 주장도 나왔다.
이 내용은 현재까지 이 전 이사의 진술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실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당시 회장의 지시가 통상적인 업무 범위였는지, 전력강화위원회와 이사회의 판단에 부당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경찰이 관련 기록과 다른 관계자들의 진술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정 전 회장의 휴대전화 교체 정황도 이 과정에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정 전 회장이 지난 6월 말 월드컵 일정을 마친 이후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교체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정 전 회장에게 내려졌던 출국금지와 해외 체류 중이던 이 전 이사에 대한 입국 시 통보 조치도 이후 해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분명한 선이 필요하다.
휴대전화를 교체한 것 자체가 범죄를 의미하지 않는다. 현재까지 경찰이 이를 증거인멸로 판단했다는 공식 발표도 확인되지 않았다.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다가 해제됐다는 사실 역시 혐의의 성립 여부와 동일한 의미로 볼 수 없다.
휴대전화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감독 선임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진술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당시 관계자들이 주고받은 메시지와 통화 기록 등이 의사결정 과정을 복원하는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찰이 밝혀야 할 것은 휴대전화 교체 자체의 의미보다 당시 결정이 어떤 경로를 거쳐 내려졌는지다.
누가 후보자를 추렸고, 누가 협상을 지시했으며, 어느 시점에 최종 결정이 내려졌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전력강화위원회와 이사회가 실제로 어느 정도의 권한을 행사했는지도 규명할 필요가 있다.
유교의 정명(正名)은 이름과 그에 따른 역할과 책임이 일치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전력강화위원회라는 이름의 전문기구가 있다면 후보를 검토하고 추천하는 실질적인 역할이 보장돼야 한다. 이사회가 최종 의결기구라면 충분한 정보를 토대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공식 기구는 존재했지만 결정은 다른 곳에서 이뤄지고, 마지막 단계에서 형식적인 의결만 더해졌다면 문제는 감독 한 사람의 선임을 넘어선다. 조직의 의사결정 체계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는 문제로 이어진다.
물론 절차상의 논란과 형사책임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업무방해 혐의가 실제 성립하는지는 수사와 기소, 재판을 거쳐 판단할 일이다. 정 전 회장을 비롯한 모든 관련자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와 별개로 경찰 역시 설명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
오랫동안 결론을 내지 못했던 사건이 서울청으로 넘어간 뒤 관계자 조사가 집중적으로 진행됐고, 약 5주 만에 압수수색까지 이어졌다. 수사를 둘러싼 여건이나 확보된 진술이 달라졌다면 경찰은 무엇이 달라졌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선 수사에서 무엇을 확인했고 무엇을 확인하지 못했는지, 왜 당시에는 강제수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으며 지금은 필요하다고 봤는지까지 밝혀져야 2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의문도 풀릴 수 있다.
유교에서는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이 없으면 바로 설 수 없다고 했다.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불신도 결국 결과보다 과정에서 시작됐다. 대표팀 감독이 누구냐를 넘어 그 감독을 결정하는 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했느냐는 질문에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도 같은 원칙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몽규 전 회장과 축구협회 관계자들이 감독 선임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는지를 사실과 증거로 가리는 것이 먼저다. 동시에 그 사실을 확인하는 데 왜 이토록 오랜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수사기관 스스로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 수사가 한 사람을 겨냥한 의혹으로 끝나지 않는다. 누가 어떤 권한으로 결정했고, 공식적인 절차가 어디까지 지켜졌으며, 그 과정을 밝히는 데 왜 2년이 걸렸는지까지 기록으로 남을 때 비로소 무너진 신뢰를 다시 세울 출발점이 마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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