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이낙연 대선 경쟁 거치며 의정활동까지 ‘진영의 언어’로 재단
집행부와 지방의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지방의회법 서둘러야”
배지 떼고 초선의원 가르치는 신정현 “다른 의원이 잘하는 것도 내 정치”
민선 9기 지방자치단체들의 임기가 시작된 지 44일이 지났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인수위원회 활동을 마감하고 본격적인 민선 9기 업무에 들어갔다. 우리나라 지방의회는 1991년 부활해 올해로 35년이 됐다. 지방자치단체장 주민직선제가 시작된 것은 1995년이다.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를 그때부터 계산하면 이제 30년을 넘어 한 세대가 지났다. 제도는 한 세대를 넘겼다. 그러나 지방정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여기 경기도의원으로 지난 4년간 일하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출마를 접어야 했던 젊은 정치인이 있다. 그와의 인터뷰를 따라가면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지방의회까지 잠식한 진영간 대결 정치, 단체장과 같은 당 소속이라는 이유로 집행부 비판을 삼가야 하는 문화. 당내 선거때마다 정파로 갈려 ‘원수’처럼 싸우는 당내 정치. 최근 벌어지는 거대 양당의 당권 ‘활극’의 뿌리이자 피해자이다. 신정현 모두를위한정치연구소 대표를 홍대입구역 인근 그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도의원이 되자 팀장·과장·국장이 나를 찾아왔다”
신정현 대표는 제도권 정치인이 되기 전 활동가였다. 공익적 가치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이미 정치를 해왔던 셈이다. 그는 사회문제를 현장에서 접할수록 정치권을 향한 의문도 커졌다. ‘왜 정치인은 이 문제를 풀지 못할까. 왜 이것을 공론화하지 않을까.’ 그러던 중 출마 제안을 받았고, 2018년 경기도의원이 됐다.
신 대표가 경기도 의회에 들어간 뒤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지방의원이 가진 힘이었다. 활동가일 때는 담당 팀장 한 명을 만나기 위해 한 달 반, 두 달을 연락해도 만나지 못한 적이 있었다. 도의원이 된 뒤에는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문제를 하나 지적했더니 담당 팀장부터 과장, 국장까지 저를 찾아오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이게 공적인 권력, 제도권 정치인의 힘이구나,"
그는 청년·노동·평화·여성 등 자신이 현장에서 만났던 문제들을 다시 꺼냈다. 관련 단체와 당사자들을 만나 간담회와 토론회를 열고 정책과 조례, 예산을 검토했다. 신 대표는 “꿈길을 걷는 것 같았다”고 했다. 5분 자유발언과 도정질의도 한 회기 빠지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욕심 좀 그만 내라”고 했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제가 만난 사람이 많으면 대변해야 할 목소리도 많은 거잖아요. 그분들의 눈물을 닦아줄 기회를 그냥 넘길 수 없었습니다,”
정책 만드는 일보다 어려웠던 ‘같은 편 견제’
즐거움과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신 대표는 새로운 정책을 만드는 것과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고 했다. "정책은 아이디어를 발굴해 사람들의 동의를 얻으면 된다. 그러나 잘못된 일을 드러내는 순간 정치가 개입한다"고 그는 말했다.
신 대표는 행정사무감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활동을 할 때 자료의 숫자 하나까지 반복해서 확인했다. 세 번씩 검토한 뒤 “정말 문제라고 확신하는 것”만 질의했다고 한다. 문제가 확인되면 예산을 삭감하거나 정책을 조정했다. 보람은 컸다. 그런데 그때부터 정치적 질문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왜 같은 당 도의원이 같은 당 도지사를 그렇게 비판하느냐’고.
당시 경기도의원 142명 가운데 135명이 민주당이었다. 신 대표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95%가 넘는 민주당 의원들이 침묵해 버리면 그건 이재명 도정의 성공을 돕는 게 아니라고 봤어요. 거대한 관료집단의 태만이나 부패를 방관하는 것이죠. 장기적으로는 도정의 실패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입만 다물면 원하는 것 다 해주겠다”는 말까지
신 대표가 기억하는 압박은 구체적이다. 신 대표에 따르면 동료 도의원뿐 아니라 국회의원들로부터도 ‘그만하라’는 연락이 왔다. 도당 쪽에서는 “네 입만 다물면 네가 원하는 것은 다 해주겠다”는 취지의 말까지 들었다.
그에게도 편한 길은 있었다. 지역구는 민주당 지지가 강했다. 지역 주민들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지역위원장 등 당내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면 재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가만히만 있으면 재선까지 갈 수 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었죠. 그런데 재선을 위해 정치를 시작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것은 ‘편한 길’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길’이었다. 정치 선배의 조언도 아직 기억한다. “정현아. 때로는 삼진도 먹고 플라이 아웃도 해도 돼. 홈런은 1년에 한 번, 아니 4년에 한 번 쳐도 된다. 재선이 중요하다. 너처럼 매 순간 홈런을 치려고 달려들면 결국 이 리그에서 사라진다.”
신 대표는 그 말을 자신을 걱정한 진심 어린 조언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럴수는 없었다. “그런 지혜는 3선쯤 되면 발휘하겠습니다. 초선은 초선다워야죠.” 그는 매번 이번 임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의정활동을 했다고 했다. “눈에 보이는 부조리와 약자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3선을 한들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2년 걸린 ‘경계선 지능인 조례’…길 위 현수막 보고 울었다
그가 4년의 의정활동에서 가장 애틋하게 기억하는 것은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조례다. 시작부터 반대가 컸다. 공무원들이 반대했고 의회 내 공감대도 부족했다. 경계선 지능이라는 개념 자체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다. 신 대표가 만난 한 가족의 말이 그의 심장에 불을 지폈다. “내가 죽더라도 우리 아이가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신 대표는 그 말을 “목숨을 내놓고 울부짖는 목소리처럼 들었다”고 했다. 자료를 만들고 전문가를 모았다. 의사들의 의견도 정리했다. 공무원과 의원들을 계속 설득했다. 2년 만에, 임기 마지막 회기에 조례가 통과됐다. 재선하지 못한 뒤에 미안함이 컸다. 조례를 보건복지와 교육 분야까지 더 확장하고 싶었지만 직접 마무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들을 태우고 가다 신호에 걸렸는데 길 위에 현수막 하나가 걸려 있었다. ‘경기도 경계선 지능인 평생학습 공모사업’
“그걸 보는 순간 눈물이 확 쏟아졌어요. 나는 떠났지만 내가 만든 조례가 계속 일을 하고 있었구나. 내가 미안해했던 분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고 있었구나." 그는 차를 세워놓고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그래서 저는 정치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대선 경선이 시작되자 ‘의원의 견제’가 ‘진영 공격’이 됐다
같은 당 도지사를 비판한다고 처음부터 당내에서 배척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의정활동 초기에는 응원을 받았다. “3선 의원들이 저를 찾아와 ‘미안하다. 신 의원처럼 하는 게 맞다. 우리는 3선이라 그렇게 못한다. 응원한다’고도 했어요.”
공기가 달라진 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었다.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총리가 경쟁하면서 민주당 안에서 세력 간 갈등이 격화됐다. 그전까지 ‘의원이라면 저렇게 해야 한다’고 평가받던 행동이 갑자기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너 의도가 있었구나. 대선 후보인 이재명 지사를 끌어내리고 싶은 것이구나’라는 오해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집행부 비판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침묵하려고 의원 하는 건 아니잖아요.” 신 대표는 후보가 정해지기 전까지 어느 대선 캠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도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특정 후보를 위한 정치적 행동으로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진영 간 경쟁이 격렬해지자 개인의 행동보다 ‘어느 편인가’가 먼저 읽히기 시작했다. “선거에서는 내 편이 이겨야 하기 때문에 상대편을 깎아내릴 수단이 필요해져요. 그때는 상식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이 잘 안 됩니다.” 그리고 한 번 ‘상대편’으로 분류되면 행동의 의도 자체가 의심받는다. 그가 지방의회에서 경험한 진영정치의 현실이다.
“민주주의 아니라 패거리 싸움”…당내 경쟁이 남긴 상처
신 대표는 최근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서 벌어지는 충돌을 낯설게 보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그 뿌리는 이미 수년 전부터 자라고 있었다. “상대 자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정치가 당내에서 싹트고 있었습니다.” 한 번 주류 경쟁에서 밀려난 정치인이 다시 정치적으로 재기하기 어려워지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저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더 심각하게 보는 것은 이런 경험이 축적되면서 당내 선거의 패배를 단순한 패배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번에 지면 다음 공천도 없다.’ 그 공포가 커질수록 당내 선거는 경쟁이 아니라 전쟁이 된다. 선거가 끝난 뒤 ‘이제 다시 하나가 되자’는 말도 공허해진다. “밀려나면 다 죽는다고 생각하는데 선거가 끝났다고 손잡고 같이 갈 수 있을까요. 정당은 이러면 안 됩니다.”
신 대표는 진영이 상대를 존재 자체로 부정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집단 패거리 싸움”이 된다고 말한다.
“선거 전엔 시민, 당선 뒤엔 공천권자를 본다”
신 대표에게 우리나라 지방자치가 잘되고 있느냐고 물었다. 답은 단호했다. “잘되고 있지 않죠.” 그가 꼽은 첫 번째 이유는 공천이다.
“지금의 지방자치는 선거 직전까지는 시민을 보고 일하지만 당선 직후부터는 공천권자를 보고 일하게 되는 시스템입니다.”
그는 지방의원은 활동가적 태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정무적 판단보다 지역의 골목을 다니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지금 지방자치는 공천권자 혹은 진영의 논리에 완전히 속박돼 있습니다.” 그는 지방의원이 가진 능력을 100이라고 하면 “60~70을 공천과 진영 문제에 허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공천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지방자치를 통해 시민이 느끼는 정치적 효능감도 높아지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단체장은 뛰는데 의회는 뒤따라간다
정당 정치 문화만이 문제는 아니다. 지방의회가 집행부를 실질적으로 견제하기 어려운 제도적 한계도 크다고 했다. 단체장은 한 사람이 판단하고 결정한다. 지방의회는 합의제다. 정보에서도 집행부를 따라가기 어렵다. 행정은 이미 움직였는데 의회가 뒤늦게 결과를 통보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가끔은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수단은 예산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 사업의 예산을 삭감하면 주민의 시선이 집행부가 아니라 의회를 향하기도 한다. ‘시장이 일하려는데 의회가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다. “권한이 없는 겁니다.”
그는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관계를 “철저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규정했다. 해법으로는 지방의회법 제정을 제시했다. 인사권뿐 아니라 예산과 정보, 집행부 견제 기능까지 의회가 독립적인 기관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제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배지는 떼었지만 ‘지방의원을 세우는 정치’ 시작
신 대표는 지금 경기도 의회에 없다. 대신 전국 지방의회를 찾는다. 초선 지방의원들에게 행정사무감사와 예산 심의 방법을 가르친다. 1년 차부터 4년 차까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처음부터 계획한 일은 아니었다. 우연한 기회에 지방의원 대상 강의를 대신 맡았다. 강의가 끝난 뒤 의원들의 반응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이제 내가 뭘 해야 할지 알겠다’고 하는 겁니다. 저는 웬만한 의원이면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자신도 초선 때 겪었던 두려움이었다. “의회에 들어가면 다들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내가 모른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요.” 신 대표는 자신이 의정활동을 하면서 시행착오 끝에 얻은 기술과 경험을 “공공재”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다른 의원에게 넘겨주고 싶다고 했다.
최근에는 제주에서 7개 시·군의회 의원을 대상으로 강의했다. 이후 한 의원에게 전화가 왔다. ‘가슴이 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다.’ 신 전 의원은 그 말을 듣는 것이 보람이라고 했다.
그가 초선의원에게 가장 강조하는 말은 의외로 기술이 아니다. “지금 내가 쥐고 있는 권한과 역할의 무게를 항상 감각하십시오.” 그는 지방의원이 가진 작은 권한 하나를 기다리는 시민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그 손길을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의원이 가진 권한으로 내일 삶을 마치고 싶을 만큼 괴로운 시민을 살릴 수도 있어요.” 권한의 무게를 알아야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짜 어려운 것은 배지를 떼고 난 뒤”
정치인의 삶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따라붙는다. 돈이다. 신 대표는 도의원 시절에는 세비가 오히려 많게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활동가 시절 밤에 대리운전을 해 10만~12만원을 벌어 다음날 활동을 이어갔던 그에게 매달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세비가 낯설었다.
하지만 모든 지방의원의 형편이 같지는 않다고 했다. 지역에서 쓰는 돈도 많다. 경조사비가 한 달 100만~150만원씩 나가는 경우도 있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원이라면 경제적 부담은 더 커진다.
그 틈을 파고드는 유혹이 있다. 그래서 그는 공공재로 살고자 하는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소비와 욕심을 통제하는 훈련부터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지방의원에게도 후원회 제도가 허용된 만큼 적법한 정치활동 비용은 제도를 활용하고, 조직관리 등을 명분으로 불법적인 지출을 하는 관행은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 정치인으로서 가장 힘든 시기는 의원일 때가 아니다. 지금이다. “진짜 어려운 건 그때가 아니에요. 지금이죠. 배지를 떼고 있을 때 어떻게 버틸 것인가.” 정치라는 꿈을 포기하고 생계에 집중하는 평범한 일상인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배지가 없어도 ‘공공재로서의 나’라는 정체성을 붙잡고 공공의 이익에 복무할 것인가.
그는 아직 그 질문 안에 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비록 지금 신정현의 제도권 정치는 멈춰 있지만 제가 가르친 의원들의 정치가 각 현장에서 뿌리내리고 빛난다면, 저 혼자 잘하는 것보다 대한민국 정치 발전에 더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신 대표가 지방의원들에게 인터뷰 말미에 전한 말은 이것이었다. “내가 지금 쥐고 있는 권한과 역할의 무게를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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