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8월 24일 오전 11시 성균관 대성전 앞마당에서 서울 문묘 성균관 대성전 수리공사 준공식을 개최했다.
한국전통문화의 본류를 형성하는 유교문화의 상징이자 공자를 비롯한 중국 유학 성인 21인과 우리나라 명현 18인 등 총 39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서울 문묘 성균관 대성전에 대한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의 지난 2021년 정기 점검에서 동북 방향 추녀의 처짐이 확인됨에 따라 2023년 9월부터 국가유산청의 주도로 시작된 수리공사는 올해 8월까지 35개월에 걸쳐 약 77억 원의 국비가 투입되어 진행됐다.
부식 및 파손된 목재를 교체하고, 과거의 자료를 고증하여 기와 단청 등을 보수한 이번 공사에서는 기둥 1본(本), 추녀 2본, 도리 2본을 교체하고, 기둥을 덧대는 동바리 이음 방식과 철물 보강 및 보존처리 등을 실시하되 최대한 기존 부재를 재사용하였으며, 기와는 가벼운 전통수제기와로 모두 교체하여 목구조에 가해지는 하중 부담을 줄였다.
아울러 과거에 촬영된 사진 자료를 분석하여 변형된 취두(鷲頭, 용마루 양쪽 끝머리에 얹는 장식 기와)와 잡상(雜像, 궁전이나 전각의 지붕 위 네 귀에 여러 가지 형상을 새겨 얹는 장식 기와) 형태를 바로 잡았으며, 단청(丹靑, 옛날식 집의 벽, 기둥, 천장 따위에 여러 가지 빛깔로 그림이나 무늬를 그림)은 전통안료를 사용하여 전통 기법을 계승하고 남아 있는 흔적을 분석하여 채색하되 특히 청색 띠가 있는 주근도배(柱根塗褙, 제례 건축에서 기둥 하부를 흰색 및 청색 도배지로 장식하는 기법) 형태를 복원하여 대성전의 옛 모습을 구현했다.
공사 과정에서 건축 역사를 규명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유적도 발견됐다.
첫째, 중앙 종도리(서까래 밑에 가로로 길게 놓이는 도리 부재 중 제일 높은 곳에 놓이는 부재)에서 상량묵서(上梁墨書)가 처음으로 발견되어 공개됐는데 당시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보도자료에서 1602년이라고 설명했으나 본지는 인터넷판과 지면신문(제1121호(2024.8.15.) 1면) 기사에서 ‘만력이십구년시월이십육일상량목수편수김순억김몽송강향(萬曆二十九年十月二十六日上樑木手邊首金順億金夢松姜香)’이라는 종도리의 글자로 볼 때에 그 뜻은 ‘(중국 명나라 제13대 황제 만력제(萬曆帝, 재위 1572-1620)의 연호인) 만력 29년(1601, ※즉위한 해를 곧바로 1년으로 간주하지 않는 전통에 따라 1573년부터 만력 1년이므로 1601년이 만력 29년임) (음력) 10월26일 상량함. 목수 편수(邊首, 원래의 음은 ’변수‘이지만 이런 경우에는 ’편수‘로 읽음, 공장(工匠, 수공업 종사 장인)의 우두머리) 김순억·김몽송·강향’이라고 보도하며 국가유산청의 보도 내용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여기에서 언급된 주요 작업자들에 대한 설명은 국가유산청 보도자료에 전혀 없었으나 본지는 조선왕조의 귀중서가 다수 보관되어 있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원장 정긍식) 홈페이지 검색을 통해 김순억(金順億)은 광해군 즉위년인 1608년 작성된 『선조소경대왕 국장도감의궤(宣宗昭敬大王 國葬都監儀軌)』, 김몽송(金夢松)과 강향(姜香)은 『의인왕후산릉도감의궤(懿仁王后山陵都監儀軌)』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하여 이들이 국왕과 왕비의 능을 조성하는 데도 투입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던 당대 최고의 목수들로서 국가의 통치이념이자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체계였던 유교를 상징하는 서울 문묘 성균관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대성전을 새로 만드는데 투입된 것은 당연했을 것임을 설명했다.
그리고 1592년의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성균관을 다시 짓는 문제에 대해 전쟁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조정에서 논의가 계속되었고, 특히 성균관 유생들이 지방 유생들에게서 쌀과 베 등의 물건을 거두어 모으고(『선조실록』 권75, 선조 29년(1596) 5월 20일), 모아둔 쌀과 베 등이 조선에 머무는 명나라 군대에게 전용되는 것을 재고해달라는 상소를 올렸던 모습(『선조실록』 권90, 선조 30년(1597) 7월 8일) 등을 밝히며 어려운 와중에도 유교 이념의 보존을 위해 노력했던 선배유림의 노력을 부각시켰다.
둘째, 반자(反爪, 천장) 상부에서 1704년(숙종 30) 이전 시기에 채색된 것으로 추정되는 긋기단청(부재에 바탕칠을 한 후 먹선, 분선, 색선을 그어 마무리하는 방법으로 주로 향교, 서원, 사찰 등의 부속 건물 등에 사용됨) 형식이 확인되어 조선 초기 단청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확보했다.
또한 반자를 구성하는 반자청판(斑子廳板) 도배지에서는 왕실에서 쓰이는 귀한 청색 능화지와 기타 청염색지 등이 발견되었는데 여러 겹으로 구성된 반자청판 도배지는 향후 중요 연구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셋째, 단일 부재로는 국내에서 가장 긴 18.8m의 평고대(平高臺)가 확인되었다.
한옥의 부드러운 처마 곡선을 만들기 위해 서까래 끝에 덧대는 부재인 평고대는 발견된 4본(本) 중 2본은 원래대로 사용하고, 재사용이 부적합한 상태인 2본은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로 이관되어 연구 및 교육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국가유산청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올해 상반기(1-6월) 대한민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1,071만 명과 지방에서 서울을 방문하는 많은 내국인 관광객이 유교가 국가통치 이념이자 사회운영 원리였던 조선왕조의 모습을 보기 위해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까지는 들르고 있으나 정작 유교문화의 중심이자 조선왕조의 모든 왕세자가 입학했고, 퇴계 이황·율곡 이이 등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선배유림이 공부하며 석전(釋奠), 삭(朔)·망(望) 분향(焚香) 등의 의례를 봉행했던 서울 문묘 성균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은 매우 드문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관람 유인 계획은 여전히 전무(全無)하여 관계 당국 및 유교 종단 중앙기관 성균관의 대오각성(大悟覺醒)이 필요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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