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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성 칼럼】 한국 족보에서 여성은 사라진 적이 없다

족보 속 여성의 자리로 읽는 한국 가족사 600년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구글 검색에서 유교신문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족보라고 하면 흔히 남성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부계혈통을 기록한 책이니, 조선시대 여성은 족보에서 배제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 족보를 수백 년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여성은 족보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다만 시대에 따라 족보 속에서 ‘자리’가 달라졌다. 이 변화는 한국 족보를 세계의 다른 계보 기록과 비교할 때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전기, 딸은 친정 족보의 구성원이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족보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부계 중심 족보와 모습이 상당히 다르다. 아들과 딸을 출생순으로 기록하고, 출가한 딸의 경우 사위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서 태어난 외손과 그 후손까지 이어서 기록한 사례가 나타난다. 특히 여성의 실명을 직접 기록하지 않고 사위의 이름을 적었다고 해서 여성이 계보에서 제외되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누구를 기록했는가이다. 사위가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가 아니라, 그 집안의 딸에게서 태어난 자녀를 외손으로 구별하여 기록했다. 결국 계보를 이어주는 혈연상의 연결점은 그 집안의 딸이었다. 즉 조선 전기의 여성은 단순히 ‘누구의 아내’가 아니었다. 한 집안의 딸이면서, 자신의 자녀와 후손을 친정 족보 안으로 계속 연결하는 존재였다. 이것은 당시 한국인의 가족관과 친족관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부계사회가 정착하면서 여성의 자리가 달라졌다

 

그러나 조선 중·후기로 내려오면서 큰 변화가 일어난다. 성리학적 종법질서가 사회 전반에 정착하면서 친족질서는 점차 부계 중심으로 재편된다. 족보 역시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동성 남계혈통을 중심으로 편찬된다.

 

그 과정에서 출가한 딸과 외손을 친정 족보에서 계속 계보화하던 방식은 점차 축소된다. 이제 여성은 친정의 계보를 자신의 후손에게 계속 이어주는 주체라기보다 혼인한 남성의 배우자로서 시댁 족보에 기록되는 존재가 된다. 족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配○○氏”라는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조선 전기와 중·후기의 변화는 단순한 기록 형식의 변화가 아니다. 딸과 외손까지 포괄하던 친족질서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중심으로 계보가 이어지는 부계 친족질서로 한국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이 족보 자체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은 없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다. 부계 중심의 족보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뒤에도 여성 자체를 기록에서 없애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성은 남편의 족보에 ‘配○○氏’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단순히 ‘아내 한 명이 있었다’고 표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느 성씨, 어느 본관 출신인지, 누구의 딸인지 등 친정에 관한 정보도 함께 기록하는 사례가 많다.

 

왜 그랬을까. 부계혈통을 기록하는 족보라 하더라도 다음 세대는 남성 혼자 만들 수 없다. 혼인을 통해 들어온 여성과 그 여성이 낳은 자녀를 통해 부계혈통도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따라서 여성은 부계사회의 중심적인 계승자는 아니었지만 그 부계혈통을 다음 세대로 연결하는 필수적인 존재였다.

 

이 점에서 “조선 후기에 여성은 족보에서 사라졌다”기보다는, 친정의 계보를 이어가는 ‘딸’의 자리에서 시댁의 계보를 이어주는 ‘배우자’의 자리로 이동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중국 족보 관련 연구와 자료를 보면, 이러한 현상이 한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의 전통 족보인 가보(家譜)·족보(族譜) 역시 기본적으로 남계 후손을 중심으로 편찬되었다. 아내를 기록할 때도 한국과 비슷하게 配○氏와 같이 친정 성씨를 적었으며 여성의 개인 이름은 거의 기록하지 않았다. 친정아버지의 이름이나 출신지를 적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딸의 기록에서는 차이가 나타난다. 중국 전통 족보에서는 딸의 기록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으며, 기록하는 경우에도 개인 이름 없이 장녀·차녀 등으로 표시하거나 아들을 먼저 기록한 뒤 딸을 따로 적는 사례가 많았다고 관련 자료는 설명한다.

 

따라서 앞으로 비교해야 할 것은 딸과 아들을 어떤 순서로 기록했는가, 출가한 딸을 어디까지 기록했는가, 외손을 몇 대까지 추적했는가, 며느리의 친정가계는 얼마나 상세하게 기록했는가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이다.

 

일본에서도 여성의 이름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일본의 사례도 흥미롭다. 에도시대 무가의 공적인 가계 기록을 연구한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자료를 보면, 남성 후계자들의 이름은 기록했지만 여성은 주로 혼인 관계가 있을 때 등장했으며 개인 이름 대신 ‘누구의 딸’로 표시되었다. 그런데 같은 집안이 내부적으로 사용한 기록에는 여성의 이름과 나이까지 기록된 경우가 있었다. 즉 일본에서도 기록의 목적에 따라 여성의 모습이 달라졌다.

 

이 사례 역시 우리에게 중요한 점을 알려준다. 옛 기록에서 여성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가 기록되지 않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을 기록했고, 어떤 관계로 기록했으며, 그 여성의 자녀와 후손까지 어디까지 추적했는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서양에서는 여성의 개인 이름도 기록했다. 서양의 경우는 조금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중세 유럽의 기록은 한국의 족보처럼 하나의 문중 계보책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고 토지문서·상속문서·유언장·교회기록 등 여러 종류로 나뉘어 있다. 영국 국립문서보관소가 공개한 중세 문서를 보면 여성의 개인 이름이 직접 기록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12세기 말의 한 토지문서에는 어머니 Pupelina와 딸 Alice, Genevieve의 이름이 각각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서양에서는 여성의 개인 이름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 등 가족관계를 함께 표시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의 개인 이름을 생략하고 성씨·본관·친정 가계와 배우자 관계를 중심으로 기록했던 한국·중국의 족보와는 다른 모습이다. 다만 유럽은 한국 족보와 기록체계 자체가 다르므로 단순한 우열 비교보다는 “각 사회가 여성을 어떤 관계 속에서 기록했는가”를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국 국립문서보관소 역시 중세·근세 가족사를 추적하려면 유언장, 토지상속조사, 토지양도문서 등 여러 기록군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름보다 ‘관계’를 기록했다

 

여기에서 한국 족보를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한 사람을 기록한다면 먼저 이름을 적는다. 그러나 옛 족보에서 여성은 자신의 개인 이름보다 관계를 통해 기록되는 경우가 많았다. 누구의 딸인가, 어느 본관 출신인가, 누구의 배우자인가, 누구를 낳았는가, 그리고 그 자녀는 어느 계보로 이어지는가.

이때 족보는 여성 한 사람을 매개로 서로 다른 두 가문이 어떻게 혼인으로 연결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점은 앞으로 한국 족보의 세계적 가치를 연구하면서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근현대, 여성의 자리가 다시 달라진다. 여성의 실명이 기록되고, 딸과 그 후손을 기록하는 범위도 다시 확대된다. 이것 역시 단순히 ‘여성이 다시 족보에 등장했다’고 설명해서는 안 된다. 여성은 그동안에도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여성이 기록되는 지위와 방식이 다시 변화한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국 족보의 수백 년 여성 기록사는 매우 흥미로운 흐름을 보여준다. 조선 전기에는 딸이 자신의 후손과 함께 친정의 계보 속에 있었다. 부계질서가 정착한 뒤에는 여성의 주된 자리가 남편 집안 족보의 배우자로 이동하였다. 근현대에는 여성 자신의 이름과 그 후손이 다시 보다 적극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여성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여성을 기록하는 사회의 방식이 변해 온 것이다.

 

족보는 가족관의 변화를 기록한 책이다. 바로 이 점에서 족보는 단순한 가문의 명단을 넘어선다. 같은 문중의 조선 전기 족보, 후기 족보, 근대 족보, 현대 족보를 차례로 놓고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누구를 가족이라고 생각했는지, 어떤 혈연과 혼인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는지가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이 한국 족보가 가진 매우 중요한 기록유산적 가치이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를 느낌이나 주장으로 이야기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여러 문중의 족보를 시대별로 조사하여 딸의 기록 여부, 남녀 출생순 기록 여부, 외손의 수록 범위, 배우자의 본관과 친정가계 기록, 여성 실명의 등장 시기 등을 객관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기준으로 중국·일본을 비롯한 세계의 계보기록과 비교해야 한다.

 

그 결과 한국 족보가 여성과 혼인, 외손과 친정 가계를 다른 지역의 계보기록과 비교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기록해 왔는지가 밝혀진다면, 한국 족보의 세계적 특징도 보다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족보의 여성사를 단순히 남녀평등이라는 오늘의 잣대로만 읽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조선 전기라고 해서 오늘날의 의미에서 남녀가 평등한 사회였다고 말할 수 없고, 조선 후기에 여성이 배우자로 기록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기록은 그 시대 사람들이 가족과 혈연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준다. 그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보인다. 한국 족보에서 여성은 사라진 적이 없다.

 

조선 전기에는 딸로서 자신의 후손을 친정 계보 안으로 이어갔고, 부계사회가 정착하면서 그 주된 자리는 남편 집안 족보의 배우자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근현대에는 여성 자신의 이름과 후손이 다시 보다 분명하게 기록되고 있다. 여성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기록되는 자리와 방식이 달라졌던 것이다.

 

족보는 단순히 ‘누가 누구의 후손인가’를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그 속에는 한국인이 가족을 어떻게 생각했고, 여성과 남성, 친정과 시댁, 아들과 딸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했는가 하는 한국 가족사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이 글은 마크 피터슨, 이남희, 권기석, 한상우 등의 족보·친족·여성 관련 선행연구와 FamilySearch의 중국 족보(Jiapu) 연구자료,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젠더연구소의 에도시대 무가 계보 관련 자료, 영국 국립문서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의 중세 가족사 및 문서자료 등을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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