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왼쪽 편마비 장애가 있어 걸을 때 균형을 잡기 어렵고, 이 때문에 자주 넘어지곤 한다.
“화장실 문턱에 걸려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졌습니다. 집수리를 신청하려 했더니 경증 장애인이라 안 되고, 전세로 사는 집이라 또 안 된다고 합니다. 결국 저는 어디에서 안전해야 합니까?”
이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경기도에는 장애인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복지 예산과 여러 사업이 존재한다. 제도의 목적도 분명하다. 장애인이 자신의 집에서 보다 안전하고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만나는 장애인의 삶은 제도의 설명만큼 단순하지 않다. 지원 기준과 실제 생활 사이에는 적지 않은 틈이 존재한다. 그 틈에 빠진 사람에게 화장실 문턱 하나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골절과 입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다.
장애인의 주거 사각지대는 그렇게 일상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구체적이고 때로는 치명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첫째, 임대인의 거부와 ‘원상복구’라는 이중 장벽
전·월세로 거주하는 저소득 장애인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벽 가운데 하나는 ‘집주인의 동의’다.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거나 욕실 벽에 안전손잡이를 설치하려면 주택에 일정한 공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임대인이 “집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거나 “다음 세입자를 구하기 어렵다”며 동의를 거부하면 공사는 시작조차 하기 어렵다.
설령 임대인의 동의를 얻는다 해도 또 다른 문제가 남는다. 퇴거할 때 원상복구를 요구받을 수 있다는 부담이다. 수백만 원에 이르는 공사비와 복구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저소득 장애인에게 이는 사실상 지원을 포기하게 만드는 장벽이 될 수 있다.
결국 위험한 문턱과 미끄러운 욕실을 그대로 둔 채 생활하는 경우가 생긴다. 집을 장애인의 몸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위험한 집에 자신의 몸을 맞추며 살아가야 하는 셈이다.
거주기간 조건도 현실과 충돌한다. 일부 주택개조 사업은 일정 기간 이상 거주할 것을 요구하지만, 임차인은 계약 갱신 여부에 따라 2년마다 거처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주거가 불안정할수록 지원이 더 절실한데, 오히려 그 불안정성 때문에 지원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둘째, 장애 정도와 소득 기준 사이에 놓인 사람들
두 번째 문제는 행정상의 기준과 실제 생활에서의 위험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원 사업은 한정된 예산 안에서 대상을 선정해야 하기 때문에 장애 정도와 소득 수준 등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한다. 문제는 그 기준 밖에 있는 사람의 위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법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장애 정도가 가볍게 분류되더라도 편마비나 하체 근력 저하 등으로 일상적인 보행이 불안정한 장애인은 욕실이나 현관 문턱에서 심각한 낙상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지인의 사례가 그렇다. 행정상 분류에서는 우선지원 대상이 아닐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화장실 문턱 하나 때문에 갈비뼈가 부러졌다.
소득 기준도 비슷한 문제를 낳는다.
기준중위소득 등 일정한 기준을 조금 넘었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더라도 장애인가구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소득까지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휠체어와 보조기기 유지비, 간병비, 치료비와 약제비 등이 지속적으로 지출되면 장부상의 소득과 실제 생활 형편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숫자로는 기준 밖에 있지만 생활에서는 빈곤과 위험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복지의 기준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기준이 사람의 실제 위험을 가리는 벽이 돼서는 안 된다.
셋째, 서류에 갇힌 복지...찾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세 번째 문제는 지원 체계가 여러 부서와 사업으로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주택 개보수는 주거·건축 부서, 에너지 지원은 환경·에너지 부서, 장애인 편의시설과 복지서비스는 장애인복지 부서가 담당하는 식으로 사업이 나뉘어 있다.
행정기관의 입장에서는 업무분장이지만 장애인 당사자에게는 각각 다른 문을 찾아다녀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된다.
특히 거동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이나 혼자 생활하는 발달장애인, 정보 접근이 어려운 고령 장애인의 경우 어떤 사업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지원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신청할 수 있는 사람만 신청하는 복지는 결국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놓칠 가능성이 있다.
실태조사 역시 서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곰팡이가 핀 방, 새는 수도관, 손잡이 하나 없는 욕실, 엘리베이터가 없어 사실상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장애인의 삶은 몇 장의 설문지만으로 모두 드러나지 않는다.
주거복지는 집의 상태만 조사해서도 안 된다. 그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몸과 생활을 함께 살펴야 한다.
문턱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편마비 장애인에게 그 문턱은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위험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장애인 주거복지의 기준은 ‘얼마나 크게 고칠 것인가’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 ‘이 사람이 이 집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임차주택이라는 이유로, 장애 정도가 지원 기준에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득이 기준선을 조금 넘었다는 이유로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주거개선조차 받지 못한다면 제도의 빈틈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 지인이 던진 질문은 한 사람만의 질문이 아니다.
“결국 저는 어디에서 안전해야 합니까?”
주거복지가 답해야 할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장애인에게 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다. 가장 오래 머무르는 생활공간이자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마지막 장소다.
복지는 예산이 편성돼 있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실제로 문턱을 넘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제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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