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한의대 전 기획예산팀장 G 씨와 전 시설팀장 B 씨에 대한 대학 측의 징계 움직임이 있자 G 씨의 동료 직원과 교수들은 2009년 8월 전임 기획처장 L 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당시 L 씨는 안식년에 들어가 대학에 나가지 않고 있었다. 도움 요청을 받은 L 씨는 고민 끝에 안식년을 취소하고 대학에 복귀했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었지만 진실을 알고 있던 L 씨는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L 씨가 대학에 복귀한 후 교내 인트라넷을 통해 사실 관계를 밝히고 G 씨와 B 씨에 대해 징계를 추진하던 대학 보직자들을 비판하자 대학 측은 G 씨와 B 씨에 대한 징계사유를 그대로 적용해 교수인 L 씨까지도 징계했다.
이들 세 사람은 민사소송으로 사건이 종결되었다면 평생 누명을 벗을 수 없었겠지만 형사소송으로까지 이어지면서 3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비로소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G 씨는 세상을 떠났고 L 씨는 평생 쌓아왔던 것을 모두 잃었다.

G 씨가 변정환 씨의 지시를 받은 발전기금 관련 사항을 보고한 업무노트 내용이다.
G 씨의 2007년 7월18일자 업무노트 기록을 보면 발전기금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이 기록은 G 씨가 당시 총장 변정환 씨의 지시를 받고 ‘학생생활관 및 강의·연구동’ 건립 양해각서를 체결한 A건설을 방문해 발전기금을 협의한 후 보고한 내용이다.
당시 대구한의대 대학부속병원은 경영 악화로 최악의 사태에 직면해 있었다. G 씨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한 해 전부터 미지급된 병원 직원 인건비 1억4천여만 원, 외주용역비 등 업체미지급금 2억8천여만 원, 약재와 급식 재료비 등 외상매입 미지급금 2억5천여만 원, 미지급된 시설공사비 3억4천여만 원, 여기에 환자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금 등 사실상 대책이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학부속병원은 우선 교비라도 지원해 달라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부속병원에 대한 교비 지원은 불법이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변정환 씨는 A건설로부터 발전기금을 받아야겠다고 결정하고 기획예산팀장이었던 G 씨로 하여금 이를 추진케 했다.
당시 변정환 씨가 대구한의대 재단인 제한학원 법인계좌로 받은 발전기금은 2007년 10월31일 3억 원, 2008년 1월14일 4억 원, 2008년 7월22일 3억 원 등 모두 10억 원이었다.
애초에 법인계좌로 발전기금이 입금된 것은 2007년 8월2일이었지만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전 발전기금을 받은 것에 부담을 느낀 변정환 씨는 8월8일 발전기금 3억 원을 A건설에 돌려주었다가 10월22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후에 다시 받았다.
대학부속병원은 이 발전기금을 문경요양병원 위탁 신청에 미리 내야 하는 3년치 사용료, 손해배상 배상금, 급식재료비 미지급금 등에 지출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변정환 씨는 G 씨가 무슨 뒷거래를 목적으로 발전기금을 받은 것이라고 하고, 자신이 발전기금을 돌려주라고 했는데 반환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는 설립자이면서 총장인 사람이 일개 팀장을 두고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변정환 씨는 대학부속병원이 문경요양병원 위탁운영자로 선정되자 2008년 2월18일 A건설 회장을 초청한 개원식 자리에서 문경에 분교를 설치하겠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문경 분교 건은 성사되지 않았고, 2013년에는 봉화 ‘DHU 산림특화캠퍼스 설립’ 사건이 불거진다.
변정환 씨가 문경요양병원 개원식에서 발전기금을 기부한 A건설 회장과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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