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13일 렛츠런파크 영천이 문을 연다. 2009년 후보지로 선정된 뒤 무려 17년 만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경마장이 들어선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영천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취재를 하면서 한 가지 질문이 자꾸 남았다.
영천시는 경마공원을 유치하기 위해 약 300억 원의 부지매입비를 부담했다. 인구 9만 명 안팎의 지방도시가 하나의 사업을 위해 내놓은 돈으로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시민의 세금으로 이만한 투자를 했다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그래서 영천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영천시 담당자의 설명은 의외로 담담했다. 지금까지 지역에서 피부로 느낄 만한 효과를 굳이 꼽는다면 공사 현장에서 일한 사람들이 영천에서 밥을 먹으며 생긴 소비 정도라는 취지였다.
300억 원을 들여 유치한 사업의 1단계 공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지역에서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경제효과가 ‘공사 인력의 식사비’라면 그냥 지나칠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마사회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공사 과정에서 대구·경북 업체를 80% 이상 활용했다는 것이다.
숫자만 보면 지역업체 참여가 상당했던 것처럼 들린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지역’이 영천이 아니라 대구와 경북 전체라는 점이다.
경마장은 영천에 들어선다. 영천시 담당자에 따르면 "부지매입비 약 300억 원도 영천시가 부담"했다. 그렇다면 영천시민이 궁금한 것은 대구와 경북 전체 업체가 얼마나 공사에 참여했는지가 아니라, 영천 업체가 몇 곳 참여했고 얼마를 수주했으며 그 과정에서 영천 사람에게 몇 개의 일자리가 돌아갔느냐일 것이다.
대구 업체가 공사를 하고 경북 다른 지역 업체가 수주한 실적까지 모두 영천경마공원의 지역상생 성과로 설명한다면 영천 시민 입장에서는 고개가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영천이 잔칫상을 차렸는데 정작 음식은 다른 곳에서 나눠 먹은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고용도 마찬가지다. 개장을 앞두고 경마지원직과 시설관리 인력을 새로 뽑았지만 실제 채용자 가운데 영천시민이 몇 명인지, 그중 상시 일자리는 얼마나 되는지 아직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경마공원에서 100명이 일하는 것과 영천시민 100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지역상생을 말하려면 적어도 이 둘은 구분해서 설명해야 한다.
말산업은 더 중요하다.
경주는 영천에서 열리지만 경주마와 관련 인력이 부산경남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순회경마 구조가 이어진다면 조련과 수의, 장제, 사료, 마필관리처럼 말 한 마리를 따라 움직이는 산업도 상당 부분 기존 지역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
경마장이 들어온다고 곧바로 말산업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말이 머물러야 사람이 머물고, 사람이 머물러야 병원과 사료업체, 장제업체와 훈련시설이 따라온다. 경주가 끝날 때마다 말과 사람이 다시 다른 지역으로 돌아간다면 영천에는 거대한 시설은 있어도 산업은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비슷한 고민은 강원랜드를 품은 정선에서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선은 강원랜드를 통해 지방세뿐 아니라 배당금과 폐광지역개발기금이라는 지역환원 통로를 확보했다. 정선군은 2025년 재정운용 전망에서도 강원랜드 정상영업에 따른 지방세 증가와 폐광지역개발기금·배당금 증가를 주요 세입 요인으로 제시했고, 같은 해 추가경정예산에는 강원랜드 배당금 102억4,000만 원이 반영됐다.
카지노가 들어온 뒤 돈이 지역으로 돌아오는 최소한의 구조는 만들어진 셈이다.
그럼에도 정선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정선군의회에서는 사북·고한 지역을 중심으로 강원랜드 직원 가운데 정선 관내 거주자가 30%를 밑돈다는 지적이 나왔다. 좋은 일자리가 생겨도 직원이 지역에 살지 않으면 임금이 주거와 소비, 교육을 통해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정선군이 사북역 일대에 431억 원 규모의 별빛광장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업목적에 아예 ‘강원랜드 방문객의 사북읍 시가지 유입’을 명시한 것도 같은 고민을 보여준다. 카지노에 사람이 몰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사람과 돈을 지역 상권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강원랜드 역시 비카지노 부문을 키우고 신규 고용과 방문객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정선군의회 자료에는 비카지노 매출 비중 30%, 신규고용 3,400명, 연간 방문객 1,200만 명을 목표로 한 사업계획이 언급돼 있다. 카지노가 문을 연 지 20년이 넘은 지금도 ‘카지노 다음의 지역경제’를 고민하고 있는 셈이다.
정선의 사례가 영천에 던지는 메시지는 의외로 단순하다.
시설 하나를 유치했다고 지역경제가 저절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돈이 지역으로 돌아오는 통로를 만들고, 일하는 사람이 지역에 살게 하고, 방문객의 소비가 지역 상권으로 흘러가도록 설계해야 비로소 유치 효과가 남는다.
정선은 적어도 배당과 폐광기금이라는 환원 장치를 가지고 출발했는데도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역 정착과 상권 확산을 고민하고 있다.
영천은 이제 출발선에 섰다.
영천시와 한국마사회는 아직 2단계 사업이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 체류형 관광시설과 말산업 관련 시설이 들어서면 지금보다 지역경제 효과가 커질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그렇다면 1단계에서 부족했던 것을 2단계에서는 처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영천업체가 참여할 몫을 정하고, 영천시민 고용 목표를 세우고, 말과 전문인력이 영천에 머물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경마장을 찾은 사람들이 영천에서 밥을 먹고 자고 소비하도록 지역 상권과 연결하는 설계도 필요하다.
‘대구·경북 업체를 많이 썼다’는 넓은 숫자만으로는 부족하다.
영천이 알고 싶은 것은 결국 하나다. "영천에 무엇이 남느냐"는 질문이다.
300억 원은 인구 9만 도시가 가볍게 내놓을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시민의 세금으로 부지를 마련했다면 그만큼 기업과 일자리, 세수와 산업이 지역에 남도록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마장이 영천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영천이 경마공원의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돈은 영천이 냈는데 공사는 다른 지역 업체가 하고, 새 일자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며, 경주가 끝난 뒤 말과 전문인력까지 다른 지역으로 돌아간다면 영천은 경마장을 품고도 정작 실속을 챙기지 못한 ‘핫바지’가 될 수 있다.
정선의 20여 년이 보여주듯 대형 시설의 유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첫 경주의 함성은 하루면 끝난다. 그 뒤에도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은 영천의 기업이고, 영천 사람의 일자리이며, 지역에서 다시 쓰이는 돈과 이곳에 뿌리내린 말산업이다.
17년을 기다린 영천이라면, 2단계 사업에서는 적어도 그 몫부터 분명하게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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