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일 국무회의에서 2027년도 예산안과 2026년~203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의결했다. 내년도 나라살림 규모를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12.8% 증가해 역대 최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총지출 개념이 도입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다만, 내년도 예산안을 단순히 ‘821조원 슈퍼예산’으로만 보기에는 숫자가 보여주는 변화가 훨씬 크다. 정부는 지출을 사상 최대 폭으로 늘리는 동시에 기존 재량지출과 의무지출에서 107조원 넘는 지출효율화를 추진하고, 2100여개 재정사업을 폐지했다. 한쪽에서 돈을 더 쓰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존 지출구조를 대대적으로 걷어낸 셈이다.
먼저, 총수입은 880조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0.4% 증가하고, 관리재정수지는 GDP대비 -0.1%, 국가채무비율은 48.3%로 규모는 1519조8000억원으로 전망됐다. 특히 국세수입은 올해 390조2000억원에서 내년 584조4000억원으로 194조2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 호조 등에 따른 법인세 증가가 세입 급증의 주요 배경이다. 정부는 이 같은 세수 증가분을 모두 일반 지출로 소진하지 않고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해 일부를 별도로 관리하기로 했다.
미래대응기금 가운데 내년에 실제 사업에 투입되는 재원은 45조4000억원이다. 청년 13조3000억원, 성장동력 14조2000억원, 지방 10조3000억원, 교육·인재 7조6000억원 등이다. 나머지 상당 부분은 세수 변동에 대비한 여유자금으로 운용하고, 12조5000억원은 당초 계획보다 국채 발행을 줄이는 데 활용할 예정이다.
정부가 반도체 호황이라는 일시적 세수 증가분을 AI·첨단산업·청년·지방 등에 투자하면서 향후 세수 감소에도 대비하는 일종의 ‘재정 저수지’를 만든 것이다.

정부 정책 증가액 1위는 'K자형 양극화 대응·모두의 성장'
정부가 공개한 핵심 정책군 기준으로 증가액 1위는 'K자형 양극화 대응·모두의 성장'으로, 올해 85조7000억원에서 내년 117조1000억원으로 31조4000억원 늘었다. 이어 '국토 대전환 및 지방주도 성장'이 16조9000억원, '청년 성장단계별 종합 지원'이 15조1000억원, '미래 성장엔진 확충'이 11조6000억원, '3대 메가프로젝트+AI 총력지원'이 10조5000억원 증가했다.
증가율만 놓고 보면 가장 가파른 분야는 '3대 메가프로젝트+AI 총력지원'이다. 관련 예산은 10조8000억원에서 21조3000억원으로 97.2% 급증했다. 또 '청년 성장단계별 종합 지원'은 53.5%, 'K자형 양극화 대응·모두의 성장'은 36.6%, '국민 안전·평화'는 24.8%, '미래 성장엔진 확충'은 22.7% 각각 늘었다. 정부가 성장과 양극화 대응, 청년 지원을 내년 재정운용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세부 재정구조를 보면 보건·복지·고용 분야가 289조원으로 가장 크고, 전체 총지출의 35.2%를 차지한다. 이어 국방 73조3000억원(8.9%), R&D 39조5000억원(4.8%), SOC 28조9000억원(3.5%) 순이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복지안전망을 유지하면서도 국방, 연구개발, 사회간접자본 등에 대한 투자도 병행하겠다는 구상이다.
증가율이 가장 높은 분야는 산업·중소기업·에너지다. 올해 31조8000억원에서 내년 41조2000억원으로 9조4000억원, 29.7% 증가했다. 이어 일반·지방행정이 121조4000억원에서 149조원으로 22.8%,문화·체육·관광이 9조6000억원에서 11조6000억원으로 20.4% 증가했다. R&D는 35조5000억원에서 39조5000억원으로 11.2%, 교육은 99조9000억원에서 110조7000억원으로 10.8% 늘었다. 농림·수산·식품은 9.5%, 보건·복지·고용은 9.3%, 국방은 8.2% 증가했다.
주목할 부분은 예산 총액이 전년보다 감소한 분야가 없다는 점이다. 정부가 107조원 넘는 지출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이를 해당 분야의 총액 삭감보다는 기존 사업을 없애거나 줄여 다른 핵심사업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추진했다는 의미다.

대규모 지출 구조조정 추진_전체 사업 10%넘는 2100여개 사업 폐지
정부는 대규모 지출 구조조정도 동시에 추진한다. 정부는 재량지출 38조6000억원 절감, 의무지출 69조원 구조 개혁을 추진하고, 전체 사업의 10%를 넘는 2100여개 사업을 폐지한다. 여기에 최근 55년간 유지돼 온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연동 구조 개편, 17개 조세감면 사업의 직접 재정지원 전환 등도 함께 제시했다.
특히 중소기업 지원사업에서는 17개 부처 사업을 전면 점검해 유사·중복 사업과 소액·분산 사업을 정리하고 절감 재원을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과 신산업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지원체계를 개편했다. 중기부도 내년도 예산에서 “소액 뿌려주기식 관행적 지원사업의 과감한 폐지”를 명시했다.
신규사업도 적지 않다. 미래대응기금 신설 외에도 2조6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특별회계가 만들어지고, 자원과 공급망 안보를 위한 자원안보기금도 설된다. 산업통상부는 자원안보기금 규모를 1조4000억원으로 제시했다. 의료 분야에서는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 신설된다. 보건복지부 소관 규모만 1조2600억원 수준이다.
국민 체감형 신규사업도 적지 않다. 출생아가 성인이 될 때까지 국가가 자산형성을 돕는 ‘우리아이자립펀드’가 새로 도입된다. 내년도 관련 예산은 1465억원이며, 정부가 소득수준 등에 따라 연 최대 120만원을 지원한다. 청년에게 산업현장 경험을 제공하는 대학생 첫 경력 프로젝트와 청년 취업지원도 확대되고, 지방에는 복지·문화·돌봄·창업·일자리 기능을 한곳에 모은 국민생활편의 복합센터 90개소가 새로 조성된다. 복합센터에는 1조5000억원이 투입된다.
일각에서 이번 구조조정이 단순한 정부지출 축소라기보다는 기존 사업에서 신규 핵심사업으로 재원을 이동시키는 '예산 갈아타기'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많이 쓰는 정부'보다 '돈의 이동'에 주목해야
숫자로 보면 2027년도 예산안에는 상반된 두 흐름이 동시에 존재한다. 정부 지출은 93조원 늘어나 역대 최대 증가율을 기록한다. 반면 기존 재정에서는 107조원 넘는 지출구조를 뜯어고쳤다. 대신 AI·반도체와 첨단산업, 청년, 지방, 교육·인재에는 대규모 신규 재원이 배치됐다. 정부가 예산을 줄였다기보다 과거의 지출구조를 줄이고 새로운 분야로 재정을 이동시킨 것에 가깝다.
그러나 이번 예산안의 가장 큰 변수는 지출보다 오히려 세입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전망한 880조8000억원의 총수입과 584조4000억원의 국세수입 상당 부분은 반도체 호황에 따른 기업 실적과 세수 증가를 전제로 한다. 반도체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하거나 세수 전망에 오차가 발생하면 현재의 대규모 투자구조 역시 압박을 받을 수 있다.
국회 예산심사에서는 따라서 단순히 820조9000억원이라는 총액을 둘러싼 ‘확장재정 논쟁’을 넘어 162조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의 운용과 국회 통제, 2100여개 폐지사업의 적정성, AI·반도체에 집중된 재정투자의 효과, 대규모 세수 전망의 지속가능성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2027년도 예산안의 진짜 특징은 ‘얼마나 많이 쓰느냐’가 아니다. 어디에서 돈을 빼 어리도 옮겼는가, 그리고 그 선택이 대한민국의 성장률과 국민 삶을 실제로 바꿀 수 있느냐가 이번 821조원 예산을 평가할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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