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년 만에 이뤄진 성균관 대성전 보수공사가 35개월 만에 잘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국 유림의 정신적 고향이자 한국인들의 생활 전반에 깃들어 있는 의식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유교문화의 정수(精髓)로 불리는 곳이 그동안의 시간 변화에 따라 점점 쇠락해가고 있음을 느껴왔고, 지방의 향교나 서원에서도 종종 시행되는 보수공사가 왜 성균관에서는 이뤄지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던 참에 이렇게라도 진행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여기에는 문화재를 소중히 여기며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알뜰히 살펴온 국가유산청 및 종로구청, 협의를 통해 시작을 위한 준비를 진행했던 손진우 원임 성균관장, 장기간의 공사에 여러 가지로 보조를 맞춰준 현재의 최종수 성균관장을 비롯한 직원들의 수고가 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각종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성균관은 단순한 건물이나 시설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유적이자 자랑이었기에 여러 번의 소실(燒失) 속에서도 다시 중건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 유생들을 비롯한 선배유림들의 재화(財貨)와 노력이 함께 했음을 알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런 과정을 통해 모아진 자금이 공사에 직접 사용되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 것같다.
그리고 미천한 실력으로나마 옛 자료를 조금 살펴보니 위패 이안(移安)과 환안(還安) 시에도 좀 더 위엄있고, 신중한 방법이 사용되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 선배유림들이 했던 모습대로는 재연되지 못한 모양이다.
아울러 불교는 연등회 행진 등의 각종 이벤트를 통해 주요 정치인 및 정부 관계자들을 비롯한 인사들이 참석하고, 국민과 관광객들이 앞다투어 사진을 찍을 정도의 볼거리를 제공하며, 그 자체가 언론의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곤 하는데 우리 유교도 앞으로는 이런 방향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3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많은 위패를 별도의 장소에 보관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그랬던 것같긴 하지만 조선시대의 관찬 기록에서는 이렇게 대성전을 수리할 경우에 위패를 명륜당에 모셨다가 다시 옮겼던 것 같은데 지난 2023년에 공사 시작을 앞두고 비천당으로 옮긴 부분도 마음에 걸렸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성균관의 서쪽에 위치한 비천당(丕闡堂)의 건립 내력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지은 「비천당기(丕闡堂記)」 등에도 실려 있듯이 1661년(현종 2) 국왕 현종의 어명으로 도성 안의 자수원(慈壽院)·인수원(仁壽院) 등 두 곳의 비구니 사찰을 철거하고,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제안으로 그 목재들을 사용하여 북학(北學)을 세우기로 했던 사실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기근 등으로 백성들이 고통받는 상황에서의 건축 사업은 온당하지 못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몇 년을 기다리다가 노봉 민정중 선생의 상소를 계기로 하여 자수원·인수원의 목재들을 성균관으로 옮겨 명륜당 서쪽에는 비천당, 그 동쪽에는 일양재(一兩齋), 남쪽에는 벽입재(闢入齋)를 건립했는데 세 곳 모두의 이름은 우암 선생이 지었다고 한다.
이렇듯 비천당은 조선 왕조가 한양을 도성으로 정하고, 각종 궁궐을 비롯하여 성균관을 지을 때에 함께 건립되었던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등의 건물들처럼 원래부터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불교의 유산을 활용하여 지어서인지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여러 번의 대성전 위패 이안 과정에서 명륜당이 아닌 비천당으로 옮긴 경우는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유교가 이제는 더 이상 국가 운영의 통치 원리가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인 다수의 생각과 생활 속에는 유교로 인해 형성된 가치관과 역사적 전통에 대한 인식이 상당한 수준으로 남아 있고, 특히 요즘은 한국 문화에 흠뻑 빠진 외국인들과 우리의 옛것에 대한 멋을 재인식한 젊은이들이 유교문화가 보여주는 엄정함과 격식, 예의범절은 물론이고 고유 명칭과 용어 등이 정해진 이유와 활용된 용례 등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인다.
이런 시절을 살고 있는 우리 유림들은 선배유림이 해왔던 모든 부분을 그대로 지켜나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우나 유교의 종주국을 자부하다가 문화대혁명 등의 과정을 통해 상당 부분의 자료와 모습을 잃어버린 중국 등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 고유의 유교문화는 되도록 원형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그 누가 하겠는가.
근본을 지키면서 그 속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유교 종단, 성균관, 유림이라야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바가 아니던가.
끝으로 성균관의 생생한 모습을 「반중잡영(泮中雜詠)」에 담았던 무명자 윤기 선생의 이안(移安)·환안(還安)에 관한 시 한 수(首)를 덧붙인다.
(대성전) 기와를 바꿀 때에 (위패를) 옮겨 모셨다가 돌아와 모심(改瓦時移安還安)
장마 겪은 대성전에 물이 새어 수리해야 하니(經霖聖殿漏宜修)
봉심하고 (공사) 기간 전에 제사하여 사유 아뢰네(奉審前期祭告由)
명륜당에 (위패를) 함께 옮겨 모셨다가(明倫堂上移安竝)
훗날 돌아와 모실 때도 예를 같이 하네(後日還安禮亦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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