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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태권도의 성지’라면서, 운영의 원칙은 어디에 있나? [기자수첩]

전임 대표 인사·노무 논란, 책임 규명 없이 끝나…신임 대표 선임도 투명성 도마
태권도 발전·국제 위상 높여야 할 법정기관…문체부·진흥재단 감독 책임 무거워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구글 검색에서 유교신문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태권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무예이자 세계인이 함께 수련하는 문화 자산이다. 세계 곳곳의 도장에는 태극기가 걸리고, 수련생들은 우리말 구령에 맞춰 품새와 겨루기를 익힌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린 가장 강력한 문화 자산 가운데 하나다.

 

전북 무주에 조성된 태권도원은 단순한 체육시설이나 관광단지가 아니다. 경기와 수련, 연구, 교육, 교류 기능을 갖춘 세계 유일의 태권도 복합공간이자 국가가 만든 ‘세계 태권도의 성지’다.

 

태권도진흥재단도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태권도원의 효율적인 관리·운영과 태권도의 발전, 국제적 위상 제고가 재단에 주어진 법정 임무다. 태권도의 조사·연구와 보존·보급, 국내외 진흥사업도 수행한다.

 

그렇기에 태권도원을 운영하는 사람과 조직에는 더욱 엄격한 공정성과 책임이 요구된다. 태권도가 가르치는 절제와 예의, 원칙은 경기장 안에서만 지켜야 할 덕목이 아니다. 사람을 임명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지난해 태권도원 노동조합은 당시 서모 대표이사의 인사·노무관리에 문제가 있다며 총파업에 나섰다. 특정 직원과 다른 직원들의 임금 인상률 차이, 채용 문제를 제기한 노조원에 대한 징계, 서 전 대표의 가족과 관련된 승진 과정 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서 전 대표는 인사위원회 검증 등 필요한 절차를 거쳤으며 노조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주장이 충돌했다면 태권도진흥재단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사실관계를 확인했어야 한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 가리고, 문제가 확인됐다면 책임을 물어야 했다. 노조의 주장이 사실과 달랐다면 그 결과 역시 명확히 밝혔어야 한다.

 

노조의 시위는 회사 정문을 넘어 지난해 12월 서울 문체부 청사 앞까지 이어졌다. 주무부처가 몰랐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뒤 무엇이 달라졌는가?

 

문체부와 태권도진흥재단이 노조가 제기한 임금 인상과 징계, 승진 관련 의혹을 조사했는지 명확하게 공개된 내용은 없다. 조사했다면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징계나 문책이 있었는지, 인사·노무관리 제도를 어떻게 개선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남은 것은 대표이사가 바뀌었다는 결과뿐이다.

 

사람을 바꾸는 것과 문제를 바로잡는 것은 다르다. 책임을 묻지 않은 인적 교체는 해결이 아니라 봉합에 가깝다. 문제의 원인을 그대로 둔 채 사람만 바꾸면 같은 논란은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올해 4월 장모 대표가 새로 취임했다. 전임 대표 체제의 갈등을 수습하고 조직을 정상화할 인사였다면 선임 과정부터 투명했어야 한다. 실제 과정은 기대와 달랐다.

 

태권도원은 2020년과 2023년 대표이사를 공개모집으로 선임했지만 올해는 공개모집 공고를 내지 않았다.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임원추천위원회가 후보자를 추천했고, 태권도진흥재단은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해 장 대표를 최종 선임했다.

 

재단은 임원 후보자를 ‘공개모집 등 다양한 방법’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근거로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사를 단순히 규정 위반 여부로만 판단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공개모집을 추천 방식으로 바꾼 이유와 후보군이 만들어진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가 후보자를 추천했고 어떤 경로로 심사 대상이 됐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주무부처인 문체부는 선임 방식이 바뀐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 신임 대표의 경력과 직무수행 능력도 선임 전에 검토하지 않고 결과를 사후에 보고받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문체부 담당자는 본지에 “재단과 자회사 측에서 하는 문제”라며 “재단에서 알아서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임 대표 체제에서는 임금·징계·승진의 공정성이 문제가 됐고, 신임 대표 선임에서는 후보 추천 과정의 투명성이 도마에 올랐다. 겉으로 드러난 내용은 달라도 뿌리는 같다. 인사 과정이 불투명했고, 이를 살펴야 할 재단과 문체부의 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태권도원의 신뢰는 대한민국 태권도의 위상과 맞닿아 있다. 세계 태권도의 성지를 운영하는 기관에서 불투명한 인사와 감독 부실이 반복된다면 훼손되는 것은 자회사 한 곳의 신뢰에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 태권도의 이름과 국가의 공신력까지 함께 흔들린다.

 

조선의 선비들은 공적인 자리를 맡을 때 먼저 ‘거경(居敬)’을 말했다. 몸과 마음을 삼가고 맡은 자리를 경건하게 대한다는 뜻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 자회사 대표 자리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자리가 어떤 기준과 절차로 채워졌는지를 묻는 것은 인사권에 대한 간섭이 아니라 정당한 감시다. 이번에도 사람만 바꾸고 넘어간다면 다음 논란의 씨앗은 이미 뿌려진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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