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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한국학중앙연구원·동북아역사재단과 통합

- 정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규모의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 발표
- 4개월 가까이 후임 원장이 임명되지 않는 이례적 상황 속에서 새로운 길 모색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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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한국학 및 한학(漢學) 등의 분야에서 유림과 함께한 한국고전번역원이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과 (가칭)한국학역사고전연구원으로 통합한다.

 

한문을 제대로 아는 실력 있는 어른들이 점점 세상을 떠나고, 사회가 아직 한국학 자료의 소중함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던 시절인 지난 1965년 11월 6일 박종화(朴鍾和), 이병도(李丙燾), 최현배(崔鉉培), 김동리(金東里), 손재형(孫在馨), 신석호(申奭鎬), 이은상(李殷相), 홍이섭(洪以燮), 성낙훈(成樂熏), 이숭녕(李崇寧), 이희승(李熙昇) 등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쟁쟁한 이들이 민족 문화의 보전·전승·계발·연구를 추진하여 민족 문화의 진흥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하고, 문교부 산하 고전국역단체로 등록하며 시작된 민족문화추진회(약칭 ‘민추’)는 설립 다음 해인 1966년 『국역 연려실기술』의 발간을 시작으로 고전국역총서를 출간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문, 국어 공부에 매우 취약하여 한국학 소장 자료를 제대로 보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던 연구자 및 국민들에게 제공했다.

 

1970년 3월 ‘고전의 현대화를 통한 주체와 정통의 확립’을 표방하며 재단법인으로 개편하고 국역자 양성사업에 착수했으며, 1972년에는 『조선왕조실록』 번역을 시작했다. 1974년 5월에는 국역연수원을 열고 성낙훈(成樂熏), 조규철(曺圭喆), 하성재(河性在), 신호열(辛鎬烈), 이병도, 양주동(梁柱東), 조지훈(趙芝薰), 윤남한(尹南漢) 등의 당대를 대표하는 한학자, 교수들을 초빙하여 본격적인 한학 후속 세대를 양성했다.

 

이들 중에서 방은(放隱) 성낙훈(成樂熏, 1911-1977) 선생은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교수로 재임하며 『한국당쟁사(韓國黨爭史)』, 『한국유교사』, 『한국유교사상사』 등의 저술을 펴냈고, 이희승·이병도 선생 등은 한국 유교를 대표하는 언론이자 본지의 전신인 <유림월보>에 여러 차례의 기고를 통해 한국학과 유교 성현들의 가르침을 전파했으며, 본지도 지면의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민족문화추진회에 관한 소식을 게재했다.

 

 

1986년부터는 개인이나 문중 등이 소장하던 주요 문집들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대량 분실 및 소멸되어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연구자도 제대로 보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여 『한국문집총간』 간행 사업을 착수했는데 대표적 인물들의 문집을 학술적 원칙에 따라 선별하고, 팔만대장경 2배 분량의 장대한 규모로 진행되며 검정색 양장본 속에 담긴 한문 원문을 누구나 정확하게 볼 수 있게 했다.

 

 

1994년 1월부터는 조선시대 국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의 주요 기록으로, 1592년의 임진왜란으로 이전 기록이 모두 불타고 광해군 시기부터 남았으나 여전히 2억 2,650만 자가 3,243책이라는 방대한 분량에 담긴 『승정원일기』 번역을 시작했고, 1998년 1월에는 1760년부터 1910년까지 국왕의 동정과 국정에 관한 제반 사항을 수록한 정무 일지로 필사본 2,329책이 남은 『일성록』 번역도 개시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7번지에서 출범한 이후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1986년에 구기터널 입구인 종로구 구기동 125-1번지에 청사를 구입하여 터를 잡았으나 만성적인 재정난, 70-80대 고령 인물 위주의 운영, 비정규직 위주의 불안정한 역자 기반 등이 지속되며 위기감이 고조되자 벽사(碧史) 이우성(李佑成, 재임 2004-2007 : 성균관대 교수·제9대 민족문화추진회장(재임 1994.11.-2002.11. 역임)) 이사장과 소천(小泉) 조순(趙淳, 재임 2002.11-2007.7 : 서울대 교수 역임) 회장 등의 지도부는 청와대, 정부, 국회 관계자들과의 논의를 통해 활로를 모색했다.

 

정부도 달라진 국가 위상에 맞춰 민간이 해왔던 막대한 분량의 한문 고전 번역에 대해 국가 예산을 안정적으로 투입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할 국립 고전번역 전담기관 설립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이었으므로 이해 당사자들의 거듭된 논의 속에서 기존의 민족문화추진회를 해산하고, 권리·의무를 승계하는 법정 기관으로 한국고전번역원을 새롭게 설립함을 골자로 하는 「한국고전번역원법(안)」(법률 제8579호)이 2007년 8월 3일에 제정되고, 그해 11월 4일에 시행되며 박석무 초대 원장(재임 2007.11-2010.11)이 취임했다.

 

교육부 산하의 기타공공기관으로 성격이 바뀌고, 안정적인 사업을 위한 국가의 출연금 및 보조금 지급이 법률에 명시되어 최저 임금도 맞추기 힘들었던 직원들의 처우가 대폭 개선되고 전체 숫자도 크게 증가했으며, 역자도 번역위원으로 정식 위촉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그동안 재정난에 따라 좌지우지되던 사업들이 일정한 계획하에 진행되는 안정적인 모습으로 변모했다.

 

2018년 1월에는 『한국고전총간』 편찬 사업에 착수하고, 그해 8월에는 서울 은평구 은평뉴타운 지역에 신청사를 완공하여 이전하며 그동안 해왔던 사업들뿐 아니라 지역 주민 등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강연회도 지속하는 등 고전을 다루는 다른 기관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들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한편 지난 1968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처음 시작하고, 1972년 민족문화추진회도 추가로 합류한 『조선왕조실록』 번역 사업은 1993년에 총 413권으로 완성되었으나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교시에 따라 국가적인 자원을 대거 투입하여 1975년부터 1991년까지 총 400권 규모의 『리조실록』으로 먼저 출간했던 것에 비해 지나치게 한문투의 번역글이 많고, 잘못 옮긴 부분도 곳곳에 있어 ‘연구자 및 국민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지금의 국어 수준에 맞춰 다시 번역해야 한다’는 여론이 꾸준히 제기되자 지난 2012년부터 재번역에 돌입하여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의 기존 작업물과 함께 번역 및 출간을 지속하고 있다.

 

정부 및 정치권 관계자, 전문 연구자, 기자, 일반 국민 등이 자주 이용하는 「한국고전종합DB」도 한국고전번역원이 운영하는 대표적인 사이트인데 민족문화추진회 시절부터 정리했던 각종 자료뿐만 아니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각 대학의 연구 기관 등에서 작업한 자료들도 원문, 원문 이미지, 번역문이 업로드되며, 지금도 업데이트가 지속되고 있다.

 

다만 방대한 자료를 담다 보니 여전히 예전 한문투의 표현이나 잘못 옮긴 문장, 대충 넘긴 듯한 번역문 등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어 지금처럼 한류와 K-컬처가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주목하는 시대가 된 상황에서는 좀 더 정확한 표현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지난 5월 28일의 김언종 제6대 원장 이임 이후 4개월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관할 부서인 교육부에서 후임 원장을 임명하지 않는 이례적 상황 및 현 정부 주요 인사들과의 이념적 차이로 인해 퇴진 분위기가 강한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 재임하는 가운데 한국고전번역원을 비롯한 세 기관이 ‘유사한 영역으로 인해 합치는 것이 낫다’는 평가를 받은 셈이라 앞으로의 통합 작업이 어떤 방향과 사업, 지도부를 중심으로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9월 3일의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 정부 발표 이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하며 판교테크노밸리 옆의 대규모 부지를 소유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리가 주택 공급 부지로 매우 적절하다는 언론 보도가 거듭되고 있고, 서울 은평뉴타운의 한국고전번역원 자리도 용도 변경만 하면 얼마든지 아파트를 지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며,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동북아역사재단은 애초에 임대로 입주한 상태라 언제든 옮길 수 있으므로 이번 발표에서 이전 지역까지 담지는 않았으나 세 기관의 통합과 함께 지방으로의 이전도 유력하게 거론된다.

 

성낙훈, 이우성, 이명학, 신승운, 임형택 등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이들이 주요 직위를 맡으며 적극 관여했고, 이상은 원주전통문화교육원 동양고전 전임교수(상지대 명예교수) 등의 국역연수원 졸업생이 전국 곳곳에서 한국학, 한학, 유교문화 전파에 앞장서는 가운데 ‘유사 기능·업무를 가진 기관들을 합친다’ ‘수도권 잔류를 최소화한다’ ‘대규모 주택 공급 부지로의 전환을 염두에 둔다’는 정부 기조 속에서 한국고전번역원이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기록유산이 다수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고전 기록물에 대한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우려가 함께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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