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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작품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 SNS 시대, ‘보는 사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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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프·프리즈 서울 기간, 삼청나잇을 맞아 갤러리현대에서 김보희 작가의 개인전 《TOWARDS: There Was Light》을 보았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먼저 화면의 크기와 깊이에 마음이 갔다. 40여 년 동안 자연을 바라보고 그 시간을 회화 안에 축적해온 작가의 작업이었다. 한국화의 전통적 재료와 조형 감각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을 캔버스와 대형 화면, 현대적인 회화의 언어로 확장해온 궤적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대규모 회화 〈The Days〉를 비롯해 제주 정원과 바다, 꽃과 열매 등 오랫동안 바라본 자연을 담은 작품들이 펼쳐져 있었다.


마침 나 역시 최근 동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지금의 내 회화 안에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실험하고 있던 참이었다. 서양화의 캔버스 위에 동양의 시간성과 여백, 스며듦과 중첩의 감각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게 할 것인가. 그래서였는지 김보희 작가의 화면 앞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되었다.


특히 전시 제목인 ‘TOWARDS’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오랫동안 내 작업을 ‘Eternal Becoming’, 영원한 되어감이라는 말로 설명해왔다. ‘Becoming’이 어떤 완결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 생성되고 변화하는 존재의 방식이라면, ‘Towards’는 아직 도달하지 않은 무엇인가를 향해 가는 움직임이다.

 

되어감과 향해감


서로 다른 말인데도 이상하리만큼 가까웠다. 하나의 완성을 선언하기보다 다음 화면으로, 다음 시간으로 계속 나아가는 일. 어쩌면 오랜 시간 그림을 그려온 작가들에게 작업이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대작 앞에 서 있는데, 또 하나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작품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 것은 이제 너무나 자연스러운 전시 풍경이다. 나 역시 전시장에서 사진을 찍고 SNS에 기록한다. 좋은 작품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SNS는 미술관과 갤러리의 문턱을 낮췄고, 예술을 훨씬 많은 사람의 일상 가까이 가져왔다.


그런데 유독 큰 작품 앞에서는 다른 장면이 자주 생긴다.


누군가 화면 한가운데에 서서 포즈를 취한다. 한 장을 찍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위치를 바꾸고, 자세를 바꾸고, 다시 찍는다. 뒤에서는 작품을 보려는 사람들이 기다린다. 때로는 작품 자체보다 작품 앞에 선 사람이 더 오래 화면의 중심을 차지한다.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질문이 생겼다.


우리는 작품을 보러 온 것일까? 아니면 작품을 보고 있는 ‘나’를 보여주러 온 것일까?


화가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한다.


대작은 사람을 끌어당긴다. 거대한 화면 앞에 서면 자신의 몸과 작품의 크기를 비교해보고 싶어진다. 아름다운 색과 이미지 속에 자신의 모습을 함께 남기고 싶은 욕망도 자연스럽다. 작품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경험 자체가 한 사람에게는 미술을 기억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단순히 ‘요즘 관람객들은 예의가 없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더 궁금한 것은 우리가 점점 무엇을 ‘보는가’보다 무엇을 ‘남기는가’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마트폰을 들면 우리는 순식간에 구도를 찾는다. 사진이 잘 나오는 위치를 고르고, 화면 속 자신을 확인한다. 그 순간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작품보다 휴대전화 안의 이미지가 먼저 중요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회화는 사진과는 다른 시간을 요구한다.


특히 대작은 멀리서 한 번 보고 끝나는 이미지가 아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붓질과 물감의 층이 보이고, 다시 몇 걸음 물러나면 그 작은 흔적들이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된다. 나는 대작을 그리는 화가이기 때문에 큰 화면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작가의 몸을 상상한다. 어느 부분에서 팔을 뻗었을지, 어디에서 멈췄을지, 몇 번 덧칠하고 다시 지웠을지, 얼마의 시간이 이 화면에 축적되었을지를 생각한다.


김보희 작가 역시 분채와 물, 아교 등을 여러 차례 입히고 말리며 화면을 만들어왔다. 한 화면에는 자연을 바라본 시간과 그것을 기억한 시간, 다시 그림으로 옮긴 시간이 겹쳐져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개월 혹은 수년의 시간을 우리가 몇 초 만에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관람예절은 ‘사진을 찍지 말자’는 금지의 규칙과는 조금 다르다.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보자는 것이다.

 

한동안 작품 앞에 서보는 것. 가까이 가보고 다시 물러나 보는 것. 화면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그리고 나에게 어떤 감각이 일어나는지를 잠시 기다려보는 것


사진을 찍었다면 다음 사람에게도 그 시간을 내어주는 것


누군가의 시야를 오랫동안 막지 않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


미술관과 갤러리는 조용히 작품만 바라보아야 하는 엄숙한 성전일 필요는 없다.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미술은 더 많은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다만 그 모든 행동보다 먼저 있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작품을 보는 일이다.


SNS 시대에 우리는 이전 어느 세대보다 많은 이미지를 본다. 하루에도 수백 장의 그림과 사진이 손가락 끝을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한 이미지를 오래 바라보는 능력은 점점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날 미술관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경험은 어쩌면 ‘새로운 이미지’가 아니라 한 대상을 오래 바라보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그날 김보희 작가의 그림 앞에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Towards’, 어디론가 향해가는 것


그리고 내가 오랫동안 이야기해온 ‘Becoming’, 계속 되어가는 것


작품도 그렇게 만들어지고, 작가도 그렇게 변해간다


관람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좋은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정답을 알아내는 일이 아니라, 그 앞에 잠시 머물며 이전과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경험이다.


그래서 다음 전시장에서 우리는 사진 한 장을 덜 찍어도 좋겠다. 대신 몇 초만 더 바라보았으면 한다.


작품을 배경으로 나를 남기기 전에, 그 작품이 내 안에 무엇을 남기는지 바라보는 것. 나는 그것이 SNS 시대에 우리가 새롭게 생각해볼 ‘작품 보기’의 예절이라고 생각한다.

 

글쓴이=성희승 | 화가·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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