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아바나 항의 늙은 어부는 84일 동안 별다른 고기를 낚지 못했다. 85일째 날 새벽 에너지가 돼줄 커피를 마신 후 바다로 나섰다. 평소처럼 도시락 대신 뱃전에 놓인 하루 마실 물병이 그가 먹을 전부였다. 먼 바다로 나간 노인은 먼저 다랑어 한 마리를 낚았다. 뒤이어 노인이 탄 배보다 큰 청새치가 걸려들었다. 그는 낚싯줄을 끊음으로써 자신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청새치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대신 2박 3일 동안 먼저 잡았던 다랑어를 식량 삼아 청새치와 대결을 택했다.
3일째 되던 날 노인은 마침내 힘이 빠진 청새치를 끌고 귀항을 서둘렀다. 그러나 이때 피 냄새를 맡고 달려온 상어 두 마리가 배 주위를 돌며 청새치를 공격했다. 지친 노인은 청새치를 지키기 위해 또다시 상어와 최후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노인은 그날 밤늦게서야 항구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소년 마놀린이 끌어올린 낚시에는 상어에게 뜯겨서 머리와 뼈만 남은 청새치가 남아 있었다.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노인인가, 청년인가? 그는 노인이 아니라 ‘나이 든 청년’이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노를 들어 상어를 내리치며 그는 소리쳤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파멸당할 수는 있겠지.”
새천년이 열리던 2000년 8월 31일, 목포 남서쪽 150km 지점의 국토 남서쪽 끝 가거도에 기상관측 이래 최강 태풍 프라피룬이 초속 58.3m의 강풍에 15m가 넘는 파도를 몰고 달려들었다. 섬 어부들은 태풍이 가거도를 비켜 갈 것이란 일기예보에 어선 34척을 흑산도항으로 피신시키는 대신 방파제 안과 육지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프라피룬은 가거도를 정면으로 육박했다. 그대로 상륙한다면 가거도는 육지고 방파제고 초토화될 것이 뻔했다.
아침 8시, 프라피룬이 서서히 가거도로 다가오자 3t짜리 목선 해두호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63세 고흥산 선장은 차라리 배를 몰고 바다에 나가 태풍과 대결하기로 결단했다. 선장은 엔진 출력을 최대로 올린 후 프라피룬을 정면으로 치고 들어갔다. 뱃머리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30초 넘게 하늘로 솟구쳤다가 다시 그 시간만큼 수직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10시간 동안 선장은 배를 살리기 위해 태풍과 사투를 벌였다. 그새 방파제 안과 육지로 피신시켰던 배들은 태풍에 날려 산산조각이 났다. 마침내 오후 6시, 태풍이 가거도를 지나가자 선장은 배를 몰고 항구로 되돌아왔다. 태풍에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태풍과 싸우는 고흥산 선장을 응원하며 바닷가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어부들은 그의 생환에 얼싸안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가거도의 어부 고흥산 선장은 노인인가, 청년인가? 그 역시 노인이 아니라 나이 든 청년이다. 거대한 프라피룬 앞에서 그는 소리쳤다. “차라리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가자. 내가 죽으면 배도 죽을 것이고 내가 살면 배도 살 것이다!”
『삼국지』 최후의 승자 사마중달이 조조 가문에 40년 납작 엎드려 있다가 결정적 기회를 잡아 집권해 진나라 초석을 다졌을 때 나이 70이었다. 그는 ‘무릇 사람은 물러날 때와 나아갈 때를 알아야 한다’는 유훈을 남겼다. 여섯 살 때 인질로 잡혀갔다가 20세에 풀려났던 인내의 화신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결정적 기회가 올 때까지 40년을 납작 엎드려 있다가 이후로 264년에 걸치는 에도 막부 시대를 열었다.
요새 나라에, 정치권에 무늬만 청년인 꾼들이 너무 많다. 그들에게 무럭무럭 새파란 노인들이 한마디 전한다. 기회는 나이를 묻지 않고, 나이 역시 기회를 묻지 않는다고. 젊다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정정당당하고 올바른 자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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